Tractatus Logico-Philosophicus(논리 철학 논고) - Ludwig Wittgenstein 1922
천재 비트겐슈타인의 책을 읽어야겠다고 다짐한 것은 꽤 오래 전의 일이다. 하지만 좀처럼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그러다가 몇 년 전, 즉 2014년 2월쯤 영어로 된 책을 구매했고 읽는 둥 마는 둥 하다가 한동안 잊혔었다.
올봄 코로나를 겪으면서 이 책 저 책을 들쳐보다가 이 책을 발견하고 약간의 심리적 압박을 느끼게 되었다. 즉, 책을 사놓고 읽지 못하는 불안과 외국어 해독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등이 나를 괴롭혔고 그 상황을 돌파하는 것이 바로 책을 읽는 것이라 판단하고 다시 번역본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나의 영어 실력이 별로인지라 정확하지는 않으나 번역본이 훨씬 더 어렵다고 느껴졌다. (독일어 본을 사서 읽고 싶어 졌다.)
하지만,
책을 펼쳐 읽으면서 내가 느낀 것은 내 평범성의 절감이었다.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세계에 존재하는 천재의 생각에 절망하면서 이 책을 읽기 위해 또 다른 책을 읽어야 하고 다시 또 다른 책을 찾아보아야 하는 무한 루프에 빠지고 말았다.
드디어 오늘 이 책을 마지막 장, Distinction between saying and showing(말할 수 있는 것과 보여지는 것의 구분)의 끝에 도달하였지만 오히려 머릿속은 하얗게 지워질 뿐, 어떤 잔존물도 남아 있지 않음을 밝혀 둔다.
사실 이 책은 장의 구분이 단지 숫자 기호일 뿐이어서 사실은 장 구분에 큰 의미는 없다. 지금 쓰는 이 글은 책 읽는 사이사이 기록에 의존하여 쓰는 글인데 이렇게라도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 극 미량으로 내게 남아있는 이 위대한 천재의 자취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엄청난 건방짐이고 무례지만 내가 생각하는 이 책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즉, “이 책은 철학의 문제들을 다루고 있으며, 또한 그러한 문제들이 제기되는 이유는 우리의 언어가 갖는 논리적 오류에 기인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의 말을 통해 이 책이 가지는 의도와 목적을 알 수 있다. 즉, 『논리․철학 논고』가 말하는 최종 명제인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명제를 내어놓기 위해, 그것에 앞서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을 구별하려는 비트겐슈타인의 노력이 이 책의 과정이다.
사실 이런 노력은 해도 그만 하지 않아도 그만인 노력이다. 누구도 이 상황(말할 수 있는 것, 또는 없는 것)에 대한 설명하기를 요구한 적도 또 요구할 필요도 없지만 비트겐슈타인은 매우 정교하게 이 일을 설명하고 있다. 다만 나의 능력이 따르지 못할 뿐. 이 책의 중요한 부분인 명제(These)의 문제를 읽기 위해 고등학교 1학년 수학책을 찾아보았다. 진리 함수(truth function)라는 용어를 이해하기 위해 수학 및 다른 책들을 찾아보면서 스스로 학문의 얕음을 통탄했다.
『논리․철학 논고』는 언어의 본질 및 그 기능과 구조를 탐구하는 것이며, 논리학의 본질과 언어와 세계의 연관성을 주요 과제로 삼고 있다. 비트겐슈타인이 그의 『논리․철학 논고』에서 다룬 언어관을 언어 그림이론(The picture theory)이라 한다. 그림이론은 두 개의 물음에 대한 해답으로 구성되는데 두 물음이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어떻게 명제를 이해할 수 있는가?' – 명제 그림이론
'명제의 진리 값은 어떻게 결정되는가?'이다. – 명제 진리 함수론
비트겐슈타인에 의하면 명제와 그림에서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림을 봄으로써 우리는 그것이 어떤 상황을 나타내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우리는 그림으로부터 그 상황을 ‘읽어 낼 수’ 있는 것이다. 다른 말로는 그림은 그것이 표현하는 바를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명제를 통해서도 우리는 그것이 나타내는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우리는 명제로부터 그 상황을 읽어 낼 수 있다. 명제도 그 의미를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이다. “명제는 그 의미를 ‘보여 준다’. 명제는 사물이 어떠한가를 말하고 있다.” 이 점에서 명제와 그림은 서로 공통된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명제 그림이론에 대한 설명)
비트겐슈타인은 명제의 진리 값은 사실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한다. 이것은 언어 그림이론의 귀결이기도 하다. 명제가 사실의 그림이면 그 명제가 바른 그림인지 틀린 그림인지는 사실에 의하여 결정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의 진리 값은 사실과의 비교를 통해 결정되는 것이다.(명제 진리 함수론에 대한 설명)
(중략)
비트겐슈타인이 그의 『논리․철학 논고』에서 하고 싶었던 말은 『논리․철학 논고』의 최종 명제인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비트겐슈타인은 책 속에서 끝없이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려 하였으며 ‘말할 수 있는 것’은 언어 그림이론을 통해 증명하려 하였다.
또 ‘말할 수 없는 것’을 내버리지 않고, 말할 수 없는 것을 “보여지는 것(Showing)”이요 “드러나는 것(Expressing)”임을 명백히 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있는 것”의 영역 바깥에, 말할 수는 없지만 “보여지는 것”의 영역이 있음을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은 곧 말할 수 있는 ‘사실’의 영역과, 말할 수 없는 ‘가치’의 영역이 공존하고 있지만 서로 융합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책이 가지는 철학적 함의에 대해 감히 이야기할 수는 없다. 다만 나의 소견으로 볼 때 우리의 삶에서 생겨나는 대부분의 언쟁이나 갈등 등은 결국 사실적이고 진위 판단 가능한 영역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판단적이고 진위 여부를 따질 수 없는 영역에서 기인하고 있다면 이 책의 내용은 매우 실용적이고 적용 가능한 철학적 접근일 수 있다.
21세기는 모든 문제를 과학적 사고로만 접근한다. 그러나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세계는 과학적 사고를 통해서 알 수 있는 세계가 있고 언어적, 예술적, 종교적 사고를 통해서 알 수 있는 세계가 따로 있는데도 과학적인 사고를 통해서만 세계를 설명하려 하고 있다. 20세기 초 위대한 천재 비트겐슈타인은 이러한 미래의 문제를 알았을 리 없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 (나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세계의 이해의 편협성과 논리적 오류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과학적이라는 말로 치환되어 나타나는 수많은 이야기들에 대해 깊은 반성의 계기가 된 것은 틀림없다.
그리하여 마침내 이 명제에 도달한다.
"Whereof one cannot speak, thereof one must be sil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