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병, 추석, 무력감, 나이

by 김준식


1.

추석 전날 오후, 아파트 14층에 있으니 아래층에서 만드는 음식의 종류를 냄새로 거의 맛을 본다. 추석 차례상이 목적일 텐데 이를 테면 죽은 자를 위한 살아 있는 자들의 노력이다. 너무 삭막하다 싶은 이야기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물론 그 속에 포함된 의미는 다를 수 있다. 아니 확실하게 다른 점이 있을 것이다.


제사와 죽음에는 교집합이 있다. 제사라는 것은 죽은 자들에게 올리는 산 자들의 성의다. 그런데 그것을 한 꺼풀 벗겨내면 거기에는 산 자들의 욕망이 은근히 서려 있음을 본다. 조상 숭배와 귀신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더 깊이는 종교적인 상황까지 결국 그 속에는 산 자들의 욕망이 그물처럼 조밀하게 드리워져 있다. 어린 시절 나는 제사를 올리며 나와 가족의 안녕을 빌었던 기억이 있다. 그 뒤에는 그저 관행적으로 제사를 올렸고 지금은 이런저런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제사를 올린다. 제사를 올릴 때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지만 그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이라고 볼 수 있다.


죽음이란 완벽한 끝이 아니라고 사람들은 믿고 싶어 한다. 물론 완전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죽음은 종언(終焉)이다. 더 이상의 어떤 것도 남지 않는 완벽한 끝, 그것이 죽음이다. 다시 한번 밝혀 두지만 완전히 개인적인 의견이다. 좀 더 이야기하자면 죽음은 생명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죽음 역시 생명처럼 받아들여야 한다. 태어남을 당연시하는 것처럼 죽음 또한 이 모든 것의 끝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죽음 이후의 세계를 상정하는 그 모든 종교, 이론은 결국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마음의 위안일 공산이 매우 크다는 것이 나의 분명한 입장이다. 그러니 죽음 이후를 위한 제사를 치러야 하는 이 추석 차례가 문득 의미 없이 느껴지기도 한다.


막상 우리 집은 별 다른 준비도 없이 나물 두어 가지와 여기저기 청소를 했다. 명절이라는 것이 언제부터 이렇게 의미 없어졌나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이와 무관하지 않다. 50대 후반을 넘기면서 그 도가 조금 심해진 느낌이다.


2.

역병 탓에 추석이 고요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것에 대한 판단은 유보한다.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가 융에 이르렀다.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자인 Carl Gustav Jung은 남성의 영혼을 ‘아니마(Anima: Gate of Memories)’라고 불렀다. 융에 의하면 중년의 남성이 겪는 이러한 심리적 공황이나 방황을 밤바다 모험 혹은 여행이라고 지칭했다. 인생에서 밤바다 여행은 여러 번 반복되는데 청소년기에 처음 경험한다. 그리고 3~40대의 청, 장년기에도 이 여행이나 모험을 거의 피하지 못한다. 융에 의하면 50대의 밤바다 여행은 거의 인생에서의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에 남다른 의미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특별히 만들어진 용어가 '중년기'(Middle Age)라는 단어이다.


본래 밤바다 여행(모험) 이야기는 성경의 요나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 요나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성경의 이야기와는 좀 다른 버전이다. 성경에는 물고기의 뱃속에서 3일 만에 나왔다고 되어 있지만 이 이야기의 원형은 상당한 기간을 괴물의 뱃속에서 지내는 걸로 되어있다.)


1. 어떤 영웅이 서쪽에서 물의 괴물(고래나 용)에 의해 삼켜진다. 2. 그 괴물은 그와 함께 동쪽으로 여행한다. 3. 그러는 동안 영웅은 괴물의 뱃속에서 불을 지피고, 배고픔을 느껴 괴물의 심장을 잘라낸다. 4. 뒤이어 곧 그 괴물이 마른땅 위로 올라선 것을 알아챈다. 5. 영웅은 괴물의 배를 가르고(아가리를 벌리고) 빠져나온다. 6. 동물의 내장이 너무 뜨거워서 그의 머리카락은 모두 없어진다. 7. 영웅은 그와 함께 그전에 괴물에 의해 삼켜졌던 모든 사람들을 자유롭게 했다.


여기에는 다양한 은유, 혹은 알레고리가 있을 수 있다.


깊고 캄캄한 괴물의 뱃속에서 지금까지 살아왔던 타성대로 때 묻은 인생을 그대로 유지하며 마감할 것인지, 아니면 머리카락을 온통 태우면서(기존의 것을 없애 버리고) 괴물의 심장을 잘라내고(권위와 절대적인 것에의 도전) 새로운 탄생을 모색할 것인지를 마지막으로 선택해야 하는 시기가 바로 중년이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보니 더욱더 난감해진다. 나는 과연 이 모든 것을 태워버릴 수 있는지? 혹은 내가 저항하는 어떤 권위에 도전할 수 있는지 의심스러워진다. 불가능의 결론을 내리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지만 그 사실을 부정하지 못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니 무력증에서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추석 연휴가 하릴없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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