惛然若亡而存*(혼연약망이존) 어렴풋하게 존재하지 않는 듯하면서도 실존함.
不知不形遧 (부지불형장)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니 알 수 없지만,
萬物蓄油然 (만물축유연) 만물은 얽매임 없이 키워지는구나.
翩然以古存 (편연이고존) 변화는 오래전부터 있었나니,
浮沈莫故顯 (부침막고현) 성하고 쇠함은 진실로 나타나지 않음이라.
2020년 9월 26일 오전. 산행 중에 우연히 본 기막힌 장면이다. 가을이 깊어지고 있는데 이제 저 여리고 가는 잎이 소나무 껍질 사이로 줄기를 올리고 있다. 인간이 가진 상식으로 분명 이 가을이 끝나고 겨울이 오면 저 여린 잎은 그대로 성장을 멈출 것인데…… 그러나 한 참 걸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에 이른다. 나 따위 인간의 상식으로 오래전부터 있어 온 자연의 질서를 함부로 裁斷하다니…… 무례하고 참으로 아둔하다. 하여 스스로의 생각이 짧음을 반성하면서 다시 한번 거대한 질서 속에 있음을 자각한다.
* 『장자』 ‘知北遊’에 등장하는 이야기를 용사 하다. 知北遊는 내편의 大宗師와 관련이 깊다. ‘知’라는 가공의 인물이 북쪽에서 노닐며 여러 현자들과 나눈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