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 오늘은 3학년 중간고사 관계로 1, 2학년만 철학 수업을 했다.
역병의 창궐로 엉망진창이 된 2020년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제 4 절 우리는 왜 살고 있을까? 까지 이르렀다. 각 절은 3시간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9시간을 ‘나’와 관련된 문제를 탐구하고 논의해 본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별 생각이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아직은 변함없는 나의 의지와 믿음이 이 수업을 유지하는 대 부분이고 가끔 꿈결처럼 또는 오아시스처럼 아이들의 반짝이는 대답이나 변화를 감지할 때마다 이 수업을 참 잘 시작했다고 스스로 감동한다.
I. ‘나’를 찾아서
1절. ‘나’는 누구일까?
2절. 눈에 보이는 것이 다일까?
3절. 세상은 변하지 않을까?
4절. 우리는 왜 살고 있을까?
5절. ‘나’라고 알 수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오늘의 주제는 제 4 절 우리는 왜 살고 있을까? 에서 1. ‘삶’이다.
아이들에게 왜 살고 있을까를 바로 물어본다는 것은 자칫 아이들을 불가지론(사실 아이들은 여전히 아주 애매한 상태에 있기는 하다.)에 빠트릴 수 있는 위험한 질문이 될 수 있다.
아이들과 함께 교재를 천천히 읽으며 조금씩 이야기를 풀어갔다. 교재에 나오는 이 부분에서 아이들은 난감한 표정이 되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살면서도 끝없이 그 삶의 과정에 의문을 가진다. 지금 우리처럼 매우 적극적으로 “왜 살고 있나?”에 대한 생각을 해 보려는 것은 우리의 삶이 우리의 의지와는 거의 무관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태어나고 죽는 큰 영역에서부터 먹고 자고 생활하는 작은 영역까지 사실 우리는 우리의 의지(인식)대로 할 수 있는 부분은 매우 제한적이다. 아이들도 이 부분은 인정한다. 그러면 이렇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우리의 삶을 왜 살고 있는 것일까?
아이들은 이 부분에서 매우 어려워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자신들의 생각대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을 대화를 통해 인지하면서 “그럼 나는 왜 살지?”라는 아주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된 것이다.
대화의 내용 일부
나: 아침에 학교 올 때 오고 싶어서 온 사람?
아이들: …….
나: 그럼 와야 하기 때문에 온 사람?
아이들: 슬그머니 모두 손을 든다.
나: 아침에 밥을 먹고 싶어서 먹은 사람?
아이들: 한 두 명 손을 드는 둥 마는 둥……
나: 그럼 먹어야 하기 때문에 먹은 사람?
아이들: 반쯤 손을 든다.
이런 식이다. 즉,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이든 또는 아니든 삶의 여러 과정은 나에게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고, 나는 내 의지와 무관한 그 일과 과정을 매우 주체적으로 겪어내야만 한다는 사실을 아이들은 드디어 어렴풋이 깨닫는 순간이다.
다음 시간 주제는
2.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