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오는 바람에 한 주일을 쉬고(지난주 월요일 태풍이 와서 원격수업으로 대체) 다시 아이들을 만났더니 방학 전으로 다시 되돌아가 있었다. 태풍이 아니었다면 저번 시간에 충분히 설명하고 글을 쓸 수 있었겠지만 아이들은 이번 시간에 빨리 쓰고 끝내기를 바라는 눈치다.
하는 수 없이 글을 쓰기로 했지만 막상 질문지를 받아 든 아이들 표정은 난감 그 자체였다. 글을 쓰기 어려우면 다음 주에 제출하라고 이야기했더니 이번 시간에 쓰겠다고 이야기한다. 숙제가 싫은 것이다. 하지만 이번 시간에 쓰면 글을 쓰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아래의 질문은 중학생이 거의 알 수 없는 문제이다. 사실 이 질문은 다분히 의도된 것이다. 자신들의 지식이나 경험, 인식의 범위를 아무리 확장하여도 도저히 다가갈 수 없는 부분을 특별한 예증(방편)이나 설명 없이 알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사실 이 글을 쓰는 나 지신도 잘 모른다. 목적은 중학교 학생들이 경험할 수 없는(어쩌면 인간이 경험할 수 없는 세계를 자신들의 인식의 틀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한계를 처음으로 슬쩍 보여주고 그 반응을 살펴보는 것이었다. 철학적 사고란 이 한계상황에 대한 인간 인식의 끊임없는 도전인 것이다.
다섯 개의 질문을 아이들에게 주었다.
질문 1: 해마다 벼는 동일 시간에 심고, 익고 또 수확된다. 이렇게 벼를 키우는 것은 근본적으로 온도다. 온도는 지구의 움직임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러면 지구의 움직임은 어디로부터 비롯되는 것일까?
질문 2: 벼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태어나면 반드시 죽는다. 이렇듯 우리의 삶을 통제하고 조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질문 3: 그러면 벼를 키우며 우리의 삶을 조정 통제하는 그 무엇은 같은 것일까? 아니면 다른 것일까?
질문 4: 질문 3의 답이 만약 같은 것이라면 그것을 우리는 무엇이라 부를까?
질문 5: 질문 3의 답이 다르다면 무엇이 다를까?
단어로 써도 되고 문장으로 써도 됨. 정답은 없음. 그러나 개인의 생각은 반드시 기록. 모른다는 답을 쓰는 학생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써야 함.
1번 질문에 단어로 쓴 아이들의 답은 다음과 같다. 태양(태양은 스스로 빛을 낸다. 따라서 살아있다.), 우주, 절대자(하나님인지 하느님인지 모르겠다.), 질서, 아무것도 없다.
2번 질문에 아이들은 역시 1번과 비슷한 답을 내놓았다. 특별한 답은 운명, 팔자, 노력.
3번 답은 대부분 같다고 썼지만 4번 답은 대부분 하지 못했다. 다만 한 아이의 답은 세월이라고 썼다. 그리고 부연해서 시간이 뭉치면 세월이라고 썼다.
5번 답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나름 아이들의 표정에서 당황함과 난처함을 읽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