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해 봄.

by 김준식


1. 미국 대선


1789년 조지 워싱턴이 초대 미국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 그가 확보한 선거인단 수는 69명(총 124명 중)이었다. 과반을 살짝 넘은 숫자다. 나머지 네 명의 후보가 55명을 나눠 가졌다. 전체 선거인단의 56% 지지를 얻었으니 44%의 의견은 사실상 의미가 없어졌고 그것이 미국식 민주주의라고 역사는 서술한다. 2000년 당시 대선에서 부시는 271명, 엘 고어는 266명으로 부시가 당선되었다. 51%의 지지로 당선된 것이다. 좋지 못한 선례가 되었다.


Condorcet's paradox라는 말이 있다. 프랑스 대 혁명기의 니콜라 드 콩도르세 후작이 다수결의 원리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말한다. 수학자였던 그는 확률과 수학적 공리를 통해 다수결의 맹점을 이야기했다.


다수결이 문제가 있지만 이것을 대체할 방법은 현재까지는 없어 보인다. 그래서인지는 모르지만 민주주의와 다수결의 원리를 학교에서 가르칠 때 항상 강조하는 것이 ‘소수 의견의 존중’이다. 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지켜질 수 없는 약속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가지게 한다. 이를테면 다수결의 원칙의 합리화를 위한 꼼수 같은 말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2020년 미국 대선은 미국이라는 나라의 후진성, 그리고 그들 내부의 신뢰에 대한 배신, 결정적으로 민주주의의 오류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2. 문민통제


본래 의미는 군대에 대한 문민 혹은 시민의 통제를 말한다. 이를테면 좁은 뜻으로 국방부 장관에 군 출신이 아닌 사람을 기용하는 것 등이다. 대한민국은 단 한 번도 군 출신 아닌 사람이 국방부 장관을 한 적이 없다. 이 부분만을 확대해보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도 여전히 후진적이다.


최근 검찰청에 대한 문민통제 이야기가 있었다. 검사 출신 아닌 법무부 장관이 검찰 조직의 수장인 검찰총장을 지휘 감독하는 사태를 두고 빗대어 이야기한 말이다. 법률적인 시시비비를 따지자면 사실 결론이 나지 않을 수 있다. 문민통제라는 틀을 이 사안에 적용하면 문제가 조금 달라 보이기는 한다.


대한민국은 삼권분립을 헌법에 명시하고 있다. 법을 지키는(司) 사법부가 있고 집행(行)하는 행정부가 있다. 현재 법무부 장관은 사법부의 판사 출신이다. (고시 합격 문제는 논외로 한다.) 엄격하게 말해서 법을 집행하는 검찰의 역할에 대한 이해가 검사 출신보다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대통령이 이 사람을 법무부 장관에 임명하였음으로 선거 권력에 의한 합법적 행위로 법무부 장관의 임무가 부여되었다.


대한민국 정부 조직법 제32조(법무부) ② 검사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법무부 장관 소속으로 검찰청을 둔다.로 되어있다. 소속이라는 말이 상명 하복을 뜻하는 말은 아니지만 결코 법무부의 권한과 통제 범위 밖에 있을 수 없음을 법으로 정하고 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문민통제를 생각해 본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관계를 더불어 생각해 본다. 아침 뉴스에 … 검찰청의 압수수색 기사가 나오고 그 밑으로 법무부 장관의 비판 의견이 동시에 등장한다.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해 보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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