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계급성, 계급화되고 있는 21세기 대한민국

by 김준식


1.


장자 사상은 기본적으로 평민 지식인의 사상 및 중소 생산자(농민, 상인, 공인)의 희망을 대표하며 광대한 평민 계층의 정서를 반영하고 있다. 장자는 송나라(전국 시대의 송나라)의 하급관리로서 비교적 많은 시간을 자연과 접하고 하층 노동자와 더불어 지낼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자였다. 유교의 계급적 정서와는 완전히 다른 부분이다.


장자 스스로 경제적 형편은 곤궁하였으나 이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고 인색하고 교활한 부자에 대해 멸시와 분노를 표출하였다. 또 정치적으로는 통치계급에 비판적이었으며 특히 통치자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자를 더욱 천하게 보았다.(공자를 경멸한다)


반면 하층 노동자나 자유직업 종사자에 대한 장자의 태도는 우호적인데 이들은 장자 전편에 걸쳐 여기저기에서 지혜와 재능, 그리고 고매한 도덕의 상징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장자의 평민 계급의 정치적 태도는 보기에 따라서는 현실이나 통치자들을 비판하는 혁명세력이 될 수도 있고 현실 안주나 자아도취에 빠지는 염세적 보수적 경향을 띌 수도 있는 이중성을 갖는다.


『장자』는 이런 이중성이 내용 전체에 반영된 것으로 현실을 비판, 폭로하고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는 한편 스스로는 안명을 말하면서 정신적 자유를 추구하며 현실을 도피하려는 모순을 스스로 보인다.


장자 철학은 현실에 대한 불만과 개혁 요구를 반영하고 있으나 동시에 현실에 대한 무력감과 연약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마치 오늘날의 우리들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다.


장자는 종종 굴원(전국시대의 정치가이자 비극 시인)과 비교되곤 한다. 이 둘은 역사적으로 비슷한 혼란한 시대에 살면서 회의와 분노로 가득 찼던 지식인으로 파악되는데 굴원과 장자는 똑같이 근심과 걱정을 가득 품고 마음 둘 곳 없는 세상을 살았지만 장자는 이상 세계에서 노닐었고 굴원은 돌을 안고 강에 뛰어들어 죽음으로서 세상이 혼탁해도 홀로 깨어 있겠다는 고귀한 정신을 지닌 지식인이었다.


굴원이 장자보다 현실 정치에 훨씬 적극적이긴 하나 통치계급을 배반하지 못하는 계급적 한계와 전통에 얽매여 있던 것에 비해 장자는 선명한 비판적 색채를 지니며 전통 관념에 대해 훨씬 해방적이다. 지금 우리 시대는 굴원의 한계도, 장자의 선명성도 없는 암울한 시대가 아닌가 싶다.


2.


헌법 상 대한민국은 어떤 계급도 없다. 그러나 계급 없는 사회가 어디 있겠는가? 19세기 사회학자들이 만들어 낸 계층(독. Hierarchie 영, Hierarchy)이란 말도 사실은 계급의 다른 모습 아닌가?


역설적으로 계급이 있어야 사회는 구조적인 안정성이 이루어질 수 있다. 하위 계급이 많아야 그 위에 안정적으로 상위 계급들이 뭔가를 할 수 있다. 이런 구조가 안정적이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다. 다만 인간이 계급에 의해 구별되는 순간 인간성은 궤멸되고 마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러시아 혁명이 여전히 혁명으로서 가치를 가지는 것은 이 계급성을 타파하려는 기치를 내 걸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100년도 전에 이 계급성을 타파한다고 하니 많은 사람들이 지지하였을 것이다. 물론 그 이후 이 정신은 여지없이 오염되었지만.


21세기 대한민국의 계급은 이제 더 이상 유동적이지 않다. 고정된 계급의식이 조선시대를 능가한다. 대한민국의 요소요소에 이 계급의식은 뿌리를 내려 더 이상 회복할 수 없는 계급적 상황을 지속적으로 양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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