主流가 되고자 하는 인간들의 욕망은 상상을 초월한다. 주류에서 밀리는 순간이 곧 죽음이라는 위기감이 인간들을 더욱 그렇게 만든 것이다. 따라서 인간들은 주류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주류든 비주류든) 나름의 대비책을 마련한다. 주로 상대의 약점을 찾아서 그 부분을 집중 공격하고 심지어 물고 놓아주지 않는다. 때론 성공하기도 하고 때로 처참하게 짓밟히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비 정상적인 방법 외에는 비주류가 주류를(혹은 주류가 비주류를) 제압할 방법은 딱히 없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비 주류들은 이 마저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비주류의 삶을 살아간다. 사실 나는 살아오면서 주류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언제나 변두리를 빌빌거렸고 다행히도 내가 살아오는 것에는 큰 불편이 없었다. 아마도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모임이나 집회를 가 보아도 언제나 내 눈에는 주류와 비주류들이 확연히 구별되어 보인다. 이념이나 수준, 나이와 삶의 태도까지 비슷하지만 기이하게도 그 속에는 주류와 비주류가 구분된다. 더러는 주류에 편입되려고 애를 쓰는 무리들도 있는데 보기에 안쓰러워 보일 때도 있다. 집단이 커지면 주류와 비주류는 적대적이 되고 더러는 목숨을 걸고 싸우기도 한다. 우리는 역사에서 이러한 싸움을 어렵지 않게 자주 발견한다.
원칙론으로 말하자면 주류가 비주류가 되고 다시 비주류가 주류가 되는 세상이 정상적인 사회의 모습이다. 2020년 지금 우리 사회는 정상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 원인은 수 천 수만 가지가 넘겠지만 가장 분명한 원인은 전체적인 욕망의 강도가 증가했다는 것이다.
조금 엉뚱하지만 어쩌면 조선 왕조 4대 사화 이후 이 땅에서 주류와 비주류는 거의 바뀌지 않고 내려오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제 산청군 시천면에 있는 산천재에서 남명을 생각하며 문득 든 생각이다. 내 생각과 무관하게 산천재의 단풍은 아름답게 물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