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스키 크롬로프의 추억

by 김준식

Český Krumlov의 추억


깜깜한 12월, 수능이 끝난 날 밤이다. 분리수거를 하러 나갔다 온 아내의 전언에 따르면 바람이 많이 불어 엄청 춥다고 했다. 나야 당연히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부엌을 정리하고 스마트 폰 뉴스를 보니 괜히 화가 난다. 이럴 땐 글 쓰는 것이 좋다. 컴퓨터를 켜고 우연히 지난 앨범을 이리저리 보다가 2012년 사진 앨범을 본다. 2012년 아내와 나는 동유럽(헝가리로 들어가 프랑스로 나오는 17박 18일의 긴 여행이었다.) 여행 시 체코의 체스키 크룸로프의 사진을 보며 추억을 떠올린다. 언제 다시 가 볼 수 있을까? 아득히 먼 옛날이 그립다.


Český라는 말은 체코어로 〈보헤미아의 것〉을 의미하며, 이와 비교해 Moravia(동·서쪽은 슬로바키아와 보헤미아, 북쪽은 폴란드의 슐레지엔, 남쪽은 오스트리아와 접한다.)에 있는 모라브스키 크룸로프(Moravský Krumlov)와 구별된다. Krumlov라는 말도 강이 휘어진 곳의 준평원을 뜻하는데 Český Krumlov는 보헤미아(체코를 동서로 나누어 동부를 체코명으로 모라바라 부르고, 서부를 체히라고 부르는데, 이 체히를 라틴어로 보헤미아라고 부른다.)의 크룸로프, 즉 서쪽의 크룸로프인 셈이다. 당연히 강은 블타바 강이다. 블타바는 다른 나라로 흐르면 몰다우가 되기도 한다.


체스키에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화가 에곤 쉴레의 갤러리가 있다. 체스키는 쉴레의 외가 동네라는 인연으로 쉴레의 갤러리가 있지만 사실 방문해보면 쉴레의 그림은 습작 몇 점뿐인데 약간의 전시효과를 노린 장사 아치들의 상술로 이해되는 면도 있다.


에곤 쉴레(Egon Schiele, 1890~1918)는 표현주의 회화의 대표적 화가로서 오스트리아 남부 툴른(Tulln) 출신이다. 1909년 또 한 명의 뛰어난 오스트리아 출신의 표현주의 화가 구스타브 클림트(Gustav Klimt)의 초청으로 비엔나의 Kunstschau에 참가한 쉴레는 Edvard Munch, Jan Toorop, Vincent van Gogh의 작품에 매료되었다. 그의 작품에서 보이는 기괴한 선과 갈색 톤의 색채, 그리고 휘고 비틀어진 면들은 이러한 영향으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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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레와 Gustav Klimt 와의 관계는 매우 복잡하다. 거의 서른 살이나 많았던 클림트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선생과 제자로 시작한 관계는 쉴레의 삶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쉴레의 그림 고통(Schmerz 1912)은 두 사람의 관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늙은 사제가 클림트이며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젊은 사제는 쉴레 자신의 모습이라고 쉴레 스스로 이야기했다. 28세의 젊은 나이에 쉴레는 스페인 독감으로 그의 임신한 아내가 죽고 3일 뒤에 죽음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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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키의 중앙 광장 Namesti Svornosti(나므네스티 스보르노스티 영어로 Town Square – 시 중심가 광장)에서 파는 음식은 꽤 맛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특히 이 체코 지역의 특산품 우르켈 맥주와 먹었던 생선 요리는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크룸로프는 199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유명해졌는데 직접 가 본 바에 의하면 세계 문화유산이 될 만한 곳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2002년 블타바 강이 범람하면서 제법 많은 오래된 건물이 무너지는 바람에 우리가 갔을 때는 건물에 사람이 상주하지는 않고 마치 우리나라 용인 민속촌처럼 사람들이 낮에는 있다가 밤이 되면 인근의 자기 집으로 출퇴근을 하기 때문에 실제 사람이 사는 마을의 생동감은 느낄 수 없었다.

언젠가 코로나가 종식되고 여행이 자유로워지면 꼭 다시 한번 체스키를 방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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