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시

Metropolitan Museum of Art 그림 여행(4)

by 김준식
Still life violin and music 1888


정물화라고 번역되었지만 사실 靜物은 사물이 움직이지 않는 순간 모두 정물이 된다. 광의로 해석한다면 인물화조차도 정물화가 될 수 있다. 영어로 표시된 Still life의 의미 속에는 ‘한 때는 생명을 가졌으나 이제는 죽어있는’의 의미가 살짝 들어있다. 이를테면 한 때는 살아 있었으나 이제는 생명이 사라진 대상물을 Still life로 표시하고 그것들을 그린 그림을 ‘정물화’라고 불렀다. 우리가 이렇게 부른 것은 아마도 번역된 한자의 영향일 가능성이 짙다. (전혀 아니라는 사람도 있다.)


어쨌거나 이 그림은 정물화이다. 그런데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어서 사진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그림의 제목에 사물의 이름이 아닌 music이 붙어있다. 뭔가 일반적인 정물화는 분명 아닌 듯 보인다.


이탈리아 화가 중에 Jacopo de Barbari(c. 1460/70~1516, 자코포데 바르바리 또는 바르히)라는 사람이 있다. 그가 1504년에 그린 「철 장갑과 자고새가 있는 정물」은 이런 종류의 그림들 중 거의 최초의 시도에 해당한다. 후세의 사람들이 이런 종류의 그림을 불어로 trompe l'oeil(트롱프뢰유 - optical illusion: 착시)라고 불렀다.


착시는 허상을 보는 것이다. 허상은 사물의 그림자와 같다. 그림자 이야기는 장자 속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지적한다. 본질과 허상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장자는 이야기한다.


罔兩(망량)은 아주 희미한 그림자다. 반대로 影(영)은 짙은 그림자다. 그런데 그 희미한 그림자가 짙은 그림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조금 전에는 그대가 걸어가다가 지금은 그대가 멈췄으며, 조금 전에는 그대가 앉아 있다가 지금은 그대가 일어서 있으니, 어찌 그다지도 일정한 지조가 없는가?’


짙은 그림자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무언가 의지하는 것이 있어서 그러한가? 내가 의지하고 있는 것도 또 무언가 의지하고 있는 것이 있어서 그렇게 되는 것인가?'


그나마 그림자가 또렷한 진짜 그림자인 影을 희미해서 구별되지도 않는 희미한 罔兩이 놀리고 있다. 하지만 사물의 실체가 아니라는 점에서는 둘 다 동일하다. 하지만 실체와 그림자는 명확하게 구분되지는 않는다. 실체라고 여기는 것이 사실은 그림자일 수 있다. 그림자라고 믿고 있는 것이 사실은 실체 일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실체와 그림자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은 처음부터 없었는지도 모른다.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미국 작가 William Harnett(1848~1892)이다. 그는 본래 아일랜드 남부 County Cork의 작은 항구 도시 Clonakilty출신이다. 아일랜드 대 기근 시절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와 필라델피아에 정착하였다. 1868년 미국 시민권을 얻은 그는 New York에 있는 Cooper Union and at the National Academy of Design 학교에서 미술공부를 하게 된다. 1874년 그는 정물화로 화단에 데뷔한다.


사실 바이올린과 활, 그리고 피리 그리고 악보는 이 그림에서 중요한 객체가 아닐지도 모른다. 악기들과 악보가 걸려 있는 약간 열린 문, 녹이 슨 자물쇠, 그림에서 너무나 사실적으로 묘사된 못 박은 흔적, 어울리지 않는 말굽 쇠, 캔버스의 프레임마저 그림의 일부로 착각하게 만드는(마치 칼로 긁어서 새긴 듯한 그림의 제작 연도 1888) 사실적이고 정밀한 묘사가 관람자에게 주는 이미지, 그리고 그 너머에 있을 것 같은 암시 등이 작가가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장치들은 트롱프뢰유 기법을 사용한 대부분의 그림들에서 느껴지는데 사물들이 가진 중의(重義)적 의미를 강조하여 관람자로 하여금 그림을 보는 것으로부터 새로운 상상의 세계를 여는 장치로 사용되고 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제목에 들어있는 music에 집중해보자. 그림의 악보는 성 케빈에 대한 찬송으로서 성 케빈은 5세기경 아일랜드 글렌달로그(두 개의 호수가 만나는 계곡이라는 뜻의 지명)의 성인이다. 자신이 출생한 아일랜드의 성인에 대한 찬송을 그림에 넣은 것은 그가 아일랜드를 기억하고 있음일 것이다. 뿐 만 아니라 아일랜드의 슬픔을 기억하는 악기, 아이리쉬 플룻도 걸려 있다. 아이리쉬 플룻의 음색 속에는 아일랜드 역사의 깊은 슬픔이 깃들어 있다. 작가는 사진 같은 정교하게 묘사된 악기와 장치를 통해 우리에게 삶과 음악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자신의 서명은 오른쪽 하단의 작은 종이 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