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오는 동안 이런저런 경험을 통해 우리는 알게 모르게 어느 정도는 편견을 가지게 된다. 완벽하지 못한 인간의 한계라고 생각한다. 가끔 편견 때문에 비난받거나 혹은 비난하기도 하는 것이 평범한 우리의 일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떤 편견은 그 편견으로 하여 우리의 일상이 침해당하기도 하고, 심지어 특정한 편견은 적극적으로 우리의 삶을 흔들어 놓기도 한다.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일상의 위험은 증가한다. 가끔은 편견이 사회를 지배하여 편견 없는 사람들이 궁지에 몰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문명사회에서 편견은 야만 사회의 편견보다 오히려 더 지독하다. 논리를 가진 편견은 맹독보다 더 치명적이며 논리 없는 편견은 태풍처럼 무차별적이다.
최근 임명된 모 장관이 가진 노동자에 대한, 가난에 대한 편견은 두 종류의 편견이 합쳐진 경우다. 그래서 무섭다. 어떤 상황에서 그 편견이 우리를 위협할지 아무도 모른다. 마치 태풍이 몰고 다니는 홍수와 바람처럼 우리의 삶을 위협할지도 모른다. 이 정부의 인사권자는 누구로부터 그 권력을 위임받았는지 고민해야만 한다.
대통령 5년 단임제 헌법을 가지기 위해 우리는 피를 흘렸다. 우리 헌법에서 민주화의 상징으로 일컬어지는 몇 개의 조항 중 하나가 대통령 5년 단임이다. 그런데 이 대통령 5년 단임이 엄청난 문제를 가지고 올 줄 어찌 알았겠는가? 앞선 정부의 부정부패는 5년 동안 한몫을 챙기겠다는 음험한 세력들의 작품인데 현 정부조차도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듯 보이는 것은 나의 편견일까?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오로지 그가 한 말이나 행동에 시비를 거는 것도 문제이기는 하지만 그가 무슨 정책적 비전을 가졌는지는 아예 말도 꺼내지 못하고 여당의 기립으로 청문회를 통과시킨 것은 5년 단임에서 비롯된 문제, 즉 임기 안에 챙겨주어야 할 인사들이 아직도 많은 듯… 심지어 조선 말 매관매직의 합법화된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장면에서 이제 실망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 잘못된 인사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아예 국민을 무시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하루에 평균 7명이 죽는 이 나라 노동현장의 문제를 법으로 막아보자고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국회에서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데 여당 국회의원은 여러 계층의 의견 수렴 운운하고 있다. 이것이 의견 수렴의 문제인가? 사람이 아침에 출근해서 안전하게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정말 기초적인 것이 위협받는 세상에 살고 있다면 국가는, 복지를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는 이 국가는 법이라도 만들어 노동 현장의 위험을 줄여야 하지 않는가?
이제 다시 우리는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시대를 다시 꿈꾸어야 하는가? 이미 썩은 구태의 야당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현 정부의 반 노동, 반 민중적 태도에 환멸을 느낀다.
그림은 르네 마그리트의 '통찰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