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생각

by 김준식

René Descartes(르네 데카르트)의 Discourse on the Method(방법 서설, 원전의 완전한 제목은 Discours de la méthode pour bien conduire sa raison, et chercher la verité dans les sciences : 이성을 올바르게 이끌어, 여러 가지 학문에서 진리를 구하기 위한 방법의 서설)라는 긴 제목의 책이 있다. 만약 데카르트가 오래 살아서 서설 뒤에 오는 본론을 다 썼다면 철학의 역사는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을지도 모른다. 다행스럽게도 여러 가지 서설만 쓰고 유명을 달리했지만 그 서설에도 여전히 우리는 다가가지 못한 부분이 많다. 주말은 내내 이런 책들과 함께한다.


데카르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이제 오직 진리 탐구에 전념하려고 하므로, 앞에서 했던 것과는 반대로 조금이라도 의심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전적으로 거짓된 것으로 간주하여 던져 버리고, 이렇게 한 후에도 전혀 의심할 수 없는 것이 내 신념 속에 남아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바로 방법적 회의의 출발이다. 데카르트는 잘못된 생각이나 잘못된 모든 것은 거짓이나 혹은 꿈으로부터 출발한다.(everything and every thought becomes false and illusory)라고 이야기한다.


데카르트의 꿈의 가설은 놀랍게도 동양의 장자가 말한 꿈과 너무나 닮아 있다. 데카르트는 꿈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내가 감각하는 사물들이 정말로 존재하는가? 혹시 이것들이 상상의 산물은 아닌지,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내 감각을 넘어서 물리적 대상들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할 길은 없다.”


동양의 ‘장자’는 이렇게 말한다.


昔者莊周夢爲胡蝶(석자장주몽위호접) : 언젠가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어

栩栩然胡蝶也(허허연호접야) :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가 된 채

自喩適志與(자유적지여) : 유쾌하게 즐기면서도

不知周也(부지주야) : 자기가 장주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俄然覺(아연각) : 그러다가 문득 잠에서 깨어나 보니

則蘧蘧然周也(칙거거연주야) : 자신이 분명히 누워 있는 것이 장주였다네.

不知周之夢爲胡蝶(부지주지몽위호접) : 그가 꿈에서 나비가 된 것인지

胡蝶之夢爲周與(호접지몽위주여) : 나비가 꿈에 그가 된 것인지 몰랐다네.

비슷하지 않은가?!


그러나 데카르트는 여기서 또 다른 방향으로 진전한다. 즉 꿈을 거짓의 범주로 묶고 그 범주의 모든 것을 회의(의심)하는 것으로 방향을 틀어버린다. 여기서 데카르트는 동양의 장자와 결별하는데 모호함을 유지하는 장자적 꿈은 현재에도 여전히 모호한 상태로 우리에게 남아 있지만 데카르트는 이 모호함을 끝내 분석하고 분류해 낸다.(그것이 옳든 또는 틀리는 문제는 논외로 한다.)


그는 “우리가 깨어 있을 때에 갖고 있는 모든 생각은 잠들어 있을 때에도 그대로 나타날 수 있고, 이때 참된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알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정신 속에 들어온 것 중에서 내 꿈의 환영보다 더 참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가정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도 이렇게 생각하는 나는 반드시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존재가 하나의 꿈일 수 있다고 의심한다.


하지만 ‘나’라는 존재가 인격적 자아, 신체적 주체, 몸과 마음의 결합체가 아닌 생각의 주체라는 점에서 반성 능력과 내적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회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데카르트는 판단한다. 여기서 신의 문제가 등장한다. 즉 회의의 대상이 아닌 ‘나’라는 부분을(반성 능력과 내적 능력을 가진) 그는 ‘관념’이라고 상정하는데 결국 이 ‘관념’이 신적인 것이라고 데카르트는 분석한다.


그림은 프란츠 할스의 데카르트 1649년 작 데카르트의 나이 56세 때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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