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린 시절 '꼴'을 베다가(소꼴은 쇠꼴이며 쇠꼴은 소의 먹이라는 경상도 방언) 낫에 손이 베이면 우리 할머니께서는 늘 이렇게 말씀하시며 내 등을 토닥이셨다.
“죄 없는 것이라서 빨리 낳는다”
할머니의 이런 말씀을 들을 때마다 누구에게 죄를 짓는다는 것인지 물어보면 할머니께서는 언제나 한결 같이 “하늘!”이라고 말씀하시며 손가락으로 하늘로 가리키셨다.
할머니 말씀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낫에 베여 상처가 덧나거나 아물지 않았던 경험은 없고 지금은 왼손 검지에 흉터가 희미하게 여러 줄로 남아있을 뿐이다.
2.
우리와 중국의 전통사상은 천명사상이다. 그 사상은 우리 상고사에 면면이 흐르고 있고 중국의 요순시대를 그 대표적 예로 볼 수 있다. 이후 수 천년의 전통을 지녀온 우리와 중국의 천명사상은 주로 우리 인간계의 화복과 흥망이 천명에 근거한다는 것이다. [聖帝(성제), 明王(명왕) - 훌륭한 왕]은 천명을 받들어 천하를 다스리고 [庸君(용군 - 졸렬한), 暗主(암주 - 어두운) - 좋지 못한 왕]은 천명을 거스렀으므로 패망했다. 개인의 화복도 그와 같다고 생각한 것이다.
천명은 정치, 윤리, 교육, 형법의 원리가 되었다. 그 원리 밑에서 모든 인간생활과 문물이 전개되고 사회제도로 규정되었다. 특히 요순시대 중국의 춘관은 농경을, 하관은 예교를, 추관은 형정을 맡은 것도 일종의 천명의 질서에 의한 것이다. 그리하여 근면, 성실하게 농경생활에 힘쓰고 인륜과 도의를 중시하며 사회질서를 잘 지키고 예속을 갖추어 갔다. 그 전통이 착실히 이어져 천명사상은 더욱 구체화되고 세속의 원리로 정치, 교화의 이념으로 삼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공자의 사상이다. 중국에서 공자를 金聲玉振(금성옥진)으로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천명사상을 잘 표현 말이 논어 팔일장에 나온다.
王孫賈問曰 與其媚於奧 寧媚於竈 何謂也(왕손가문왈 여기미어오 녕미어조 하위야)
王孫賈가 물었다. “(세속에서 말하기를) ‘奧(近臣)에게 아첨하기보다 차라리 竈(執政)에게 아첨하라.’고 하니, 무슨 뜻입니까?”
子曰 不然 獲罪於天 無所禱也(자왈 부연 획죄어천 무소도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늘에 죄를 얻으면 빌 곳이 없습니다.”
3.
부정과 부패가 판을 치고 있다. 거기에 코로나가 이 판을 더욱 엉망으로 만든다. 혼란스러울 때일수록 부정은 독버섯처럼 성장하고 인간의 예의는 희박해진다. 그것이 천명이라는 권위적인 말이든 또 아니든 그것은 관계없다. 다만 우리가 지키려는 마음의 기준이 흐려지면 그 순간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고 만다.
4.
죄 없이 살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우리 할머니가 말씀하신 “죄 없다”라는 말의 진짜 뜻은 무엇인가? 이 아침 곰곰이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