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니까
인간이 아픈것은 진화과정에서 나타난 임기응변식
불법 증개축의 위태로운 구조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김난도 교수의 책이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불안하니까 청춘이다.
막막하니까 청춘이다.
흔들리니까 청춘이다.
외로우니까 청춘이다.
두근거리니까 청춘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그러니까 청춘이다.
나는 의사로써 청춘이라는 말 대신 인간이라고 쓰고 싶다.
나는 이렇게 바꿔 말한다.
불안하니까 인간이다.
막막하니까 인간이다.
흔들리니까 인간이다.
외로우니까 청춘이다.
두근거리니까 인간이다.
아프니까 인간이다.
그러니까 인간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아프다면서 내 진료실의 문을 두드린다.
누구는 홀로 또 누구는 가족과 함께.
나를 늘 괴롭히는 정체불명의 편두통
뻐근한 뒷목과 저릿저릿한 손끝
계단이라 내려올라치면 시큰거리는 무릎
운전석에서 밖으로 나올 때 펼 수 없는 허리
새벽녘에 통증으로 더 이상 누워있을 수 없는 허리
자고나면 팅팅 붓는 얼굴 손 발
부위도 다양하고 정도도 제각각인 나의 통증들
이렇게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일상의 평화를 해치지만
지금 당장 응급실에 실려 갈 정도까지는 아 니라는 것.
그래서 두드려 보기도하고 찜질도 해보고
파스를 덕지덕지 발라보기만 하다가
어렵사리 병원 문을 두드려 값비싼 최신의
검사기기로 구석구석 검사를 해보지만
결과는 허탈하기 그지 그지없다.
특별히 문제가 없으니 스트레스 받지 말고
필요하면 소염진통제를 처방해 주겠다는
틀에 박힌 대답만 돌아온다.
뚜렷한 원인을 찾기 어려운 만성통증
내지는 신경성, 심인성 질화이라는 진단결과를
받아들고 돌아서서 이들은 마침내 분통을 터뜨린다.
“해결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 왜 아픈지
그 이유라도 알게 되면 속이 후련하겠다.”
하지만 여기서 한의사들은 자유롭다.
밸런스적 의학관을 가지고있는 한의사들은
비교적 자유롭게 치료에 임할 수 있다.
이들에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아플 수밖에 없다’라는 대답이
위로가 될 수 있을까?
당혹스럽게 들리겠지만 이것은 최선의 답안이다.
우리가 원인조차 불분명한 갖가지 통증에 시달리는
가장 큰 이유는 ‘애초에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이다.
이것은 개개인의 잘못이라기보다
인류라는 집단이 안고 있는 신체 구조적 문제다.
산업화나 문명의 발달과도 상관없이 수십만,
아니 수백만 년 전부터 인류가 안고 태어난 원죄와도 같다.
그 책임은 다름 아닌 ‘진화’에 있다.
진화란 무엇인가?
우들은 흔히 진화란 오늘날의 우리 모습을
있게 한 원동력이자 ‘바람직한 결과’라고 생각하기 쉽다.
사람들은 은연중에 진화의 의미를 '진보’로
잘못 이해하고 일종의 자아도취에 빠지곤 한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형태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종 가운데 가장 진보된
이상형이며 인체는 다른 동물종과 차별화된
독특한 프레임을 갖췄을 거라는 막연한 종족우월주의를 품는다.
그러나 사실 뼈대라는 큰 그림을 놓고 봤을 때
인간은 다른 종에 비해 특별할 게 없다.
인간의 뼈대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포유류
아니 조류의 골격 구조 모두 대동소이하다.
인간 역시 개나 고양이와 닭이나 개구리와 마찬가지로
'머리 하나에 팔다리가 둘’이라는 기본 세팅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
위의 사진은 인간의 골격구조와 조류의 골격구조다.
의학공부를 처음 하면서 비교해부학책에서 보고
심한 충격을 받았다.진화의학에 관심을 갖게한 그림이다.
뷔퐁이나 다윈과 같은 수백 년 전 진화론의 선구자의
지적처럼 인간이라서 진화상의 특혜를 받은 것이 딱히 없다.
포유류는 모두 공통 조상에게서 갈라져 나와
그때그때 주어진 상황에 맞춰 각자 갈 길을 걸어왔을 뿐이다.
인간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살게 된 것은
반복된 우연의 산물일 뿐,
말하자면 생명의 진화란 명확한 설계도 없이
시작된 불법 증개축과 같다.
장기적인 복안이나 치밀한 계획에 맞춰 진행된
시나리오가 아니라 벽에 부딪힐 때마다 아랫돌을 빼서
윗돌 괴기 식으로 대응해온 애드리브에 불과 하다.
오늘날 우리의 아프고 비루한 몸뚱이는
이런 임기응변의 산물이다.
수백만 년 넘게 나무에 매달리고 네발로
기어 다니는 삶에 익숙했던 원숭이와 공동조상이었던
고대 원숭이가 갑작스럽게 두 발로 일어서고
덩달아 거대해진 머리통을 얹고 달리게 되었다.
그것이 인간이다.
겉보기엔 번듯하게(다른 동물들이 보기에는 아닐 수 있지만)
마감되었지만 내부엔 구조적인 한계와 불안요소를
여기저기 감춘 위태로운 불법 증축물일 뿐이다.
그래서 똑 같이 머리 하나에 팔다리 두 개씩을
가진 여타 동물들에 비해 인간은 원죄적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릴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바른 몸이 아름답다] 남세희 박성규에서 차용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