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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태웅 Jan 02. 2020

성숙기에 접어든 한국 자본주의

GNP보다는 전체 인구중 중산층이 차지하는 비율을!

 텔레비전을 켜고 멍하니 앉아 있다 보면 이 노래를 듣게 된다. “비비디 바비디 부” 디즈니 만화영화 ‘신데렐라’에 나오는 요정이 불렀다는 이 노래를 장동건이 부르고, 비가 부르고, 루이 암스트롱이 부른다. 누구의 것이 되었든 이 노래를 듣지 않고 텔레비전을 보기란 아주 어렵다. 그 뒤엔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것을 배운 다음, 춤을 추거나 시상대에 서 있는 김현아를 만난다. 좀 더 있으면 LED로 만든 빛의 티비를 만나게 되고, 이어서 현대기아가 아니면 삼성차의 자동차 광고를 본다.
 
 만약 당신이 케이블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있다면 광고의 개수는 조금 더 늘어나, 파격적인 가격의 홈쇼핑 광고를 보고, 즉시 돈을 대준다는 무수한 제2금융권의 대출광고를 본 다음, 사고나 노후에 대비해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는 보험 광고들을 보고, 그래도 죽음을 피할 수 없으니 몇 개의 상조 광고를 보게 된다.


 언제부턴가 텔레비전 광고가, 정확히 말하자면 광고주가 몹시 단조로워졌다는 것을 느낀 적이 없었는가? 어느 요일, 무슨 채널이 되었건 광고 패턴은 늘 같아, 그 광고가 그 광고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는 모든 게임이 결국 ‘세 마리 말이 달리는 경주’가 된다. 그대로 두면 세 마리가 두 마리가 되었다가 이윽고 한 마리만 남기도 한다. 가전을 보자. 삼성과 금성(지금의 엘지전자)외에도 실용적인 대한전선, 화질의 아남, 탱크주의의 대우전자 등 다양한 업체들이 있었다. 지금은 엘지와 삼성이 우뚝 솟아 있을 뿐이다. 그 결과 우리는 더 이상 전자렌지와 같은 보급형 제품의 광고를 TV에서 볼 수 없다. 삼성과 엘지는 오직 최상급 프리미엄제품만 광고한다. 두 회사뿐이니 광고를 하든 않든 제품이 팔리기 때문이다. 몇 남지 않은 광고주들조차 이제는 판매를 위해 광고를 하는게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기도 한다. 포스코나 STX조선해양과 같은 경우는 대표적이다. 시청자들이 포스코에 전화를 걸어 ‘후판 500g만 주세요’ 하거나, STX에다 ‘출퇴근용 배 한 척’을 주문할 리는 없을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정부의 신매체 출범 효과 예측이 번번이 어이없이 빗나가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2001년 위성방송 출범을 앞두고 당시 정보통신부는 2005년까지 30조원의 생산유발, 10만여명의 신규 고용창출 효과를 장담했다. 2008년 방송통신위원회가 낸 ‘방송산업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위성방송업계 총매출액은 3874억원, 종사자 수는 513명이다. 정통부는 2004년에도 ‘IT 839 전략’을 발표해 지상파•위성 디엠비 사업이 2012년까지 5조2000억원과 7만4000명의 생산유발 및 고용창출 효과를 낼 것이라고 밝혔다. 2008년 현재 위성 디엠비 종사자 수는 226명, 지상파 디엠비의 누적적자는 1014억원이다. 한국의 자본주의가 성숙기로 접어들면서 광고주가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는 것, 기왕에 있는 광고에도 이미 거품이 끼어 있다는 것을 놓쳤거나 부러 외면한 결과다.


 어떤 정책이든 그 자체로 선하거나 악한 것은 드물다. 누구를 대상으로, 언제, 어떻게 펼치는가에 따라 그 선악이 결정된다. 예를 들어 고단백, 고칼로리 음식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들이나 운동량이 많은 선수들이 그렇다. 하나, 양쪽 어깨위에 집채만한 스트레스를 얹은 채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 일을 하는 중년의 배 나온 아저씨에게 그런 음식은 차라리 독에 가깝다.


 한국의 자본주의가 이제 성숙기로 접어들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때가 되었다. 성장기 경제에 옳은 일이 성숙기 경제에는 자해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경제를 관리하는 지표도 바꾸는게 옳다. 가령 나이가 서른이 넘은 사람이 매주 키를 재고 있다면 어떻게 보이겠는가? 혈압이나 허리둘레를 재는 편이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좋을 것이다. 이제는 GNP(국민총생산)라는 지표보다는 전체 인구중 중산층이 차지하는 비율을 따지는게 마땅한 이유다.
 
 성장기때는 얼마나 컸나?가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되겠지만, 성숙기에는 얼마나 건강한가?가 핵심지표가 돼야 한다. 젊은 사람들이 얼마나 이 사회가 살만하다고 여기는지를 보여주는 출산율, 비슷한 맥락의 자살율 등이 그런 점에서 역시 한국 사회의 핵심지표가 될 만하다. 이런 지표로 보면 사회안전망 구축이 불필요한 비용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미래를 가를 명줄이 될 투자라는 것도 명백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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