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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태웅 Jan 07. 2020

숭례문 복원하기

실제 일을 하는 사람이 돈을 가져가게 하자

 “숭례문 2층 문루의 동쪽 기둥이 위아래로 1m 이상 길게 갈라져 있다. 다른 기둥의 균열부가 안쪽까지 단청 안료로 채색된 것과 달리 나무의 속이 하얗게 드러나 보인다. 전문가들은 “건조 과정에서가 아니라 단청 채색이 끝난 뒤 갈라지기 시작했다는 증거다. 표면은 말랐지만 안쪽에는 여전히 수분이 많이 남아있어 그 차이로 인해 변형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동남쪽 모퉁이의 추녀와 사래(추녀 끝에 잇댄 짧은 서까래)도 갈라져 안이 보였다. 문루 입구 위쪽의 평고대(처마 끝에 가로로 놓은 오리목)와 개판(널빤지) 사이도 벌어졌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엄선된 나무를 사용하지 않은 게 문제다.” 도편수(공사책임자)로 숭례문 목공을 이끌었던 신응수 대목장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대로 건조되려면 7~10년 걸린다. 그렇게 기다릴 수 없었다. 목재의 수분이 얼마나 있는지(함수율)를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전통 방식의 복구를 하려면 충분한 시간과 예산이 필요하다. 1962년 보수 때는 그랬다. 하지만 이번엔 시간과 예산이 당시의 반에 지나지 않았다.”

보도에 따르면 “정부 노임 단가는 2012년 기준 14만원이지만, 단청공사는 도급 단계를 거치며 훨씬 낮아져 5만원의 저임으로 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14만원중 겨우 36%만 실제 공사에 쓰였다는 것이다.

숭례문 복원공사는 한국의 ‘관급 프로젝트’의 전형이다. 우선 ‘시간과 예산이 모자란다.’ 나무를 말릴 시간도 없었고, 단청공사에 들일 노임도 부족했다.

돈이 왜 모자랐을까? 공사 결산내역’에 따르면 안료 구입에는 전체 복구 예산 242억 원의 0.4%인 1억8백만 원이 쓰였다. 단청 부실의 핵심 원인으로 꼽히는 아교 구입비는 단돈 390만원. 반면 홍보성 사업들, 예컨대 기념행사와 관련 영상물 제작, 숭례문 전시관 보조금 같은 항목엔 24억 원이, 숭례문 주변정비에도 38억 원이 쓰였다.

시간도 모자랐다. 급히 집어넣은 나무기둥은 공사가 끝난 지 반년도 안돼 갈라졌다. 말릴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이 어떻든 관급프로젝트의 데드라인은 늘 ‘누군가의 임기’다. 임기 뒤엔 빛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 좋으라고!”

홍보성 예산은 24억 원이지만 아교 구입비는 390만원인 이유도 마찬가지다. 아교는 빛이 나지 않는다. 누군가의 얼굴에 금칠을 해주지 않는 한 그 예산은 늘 하찮다.


숭례문에서 배울 것이 있다면, 이 문제가 대한민국의 어디에나 있다는 점이다. ‘문화재를 복원하는데 이대로는 곤란하다’거나, ‘전국 주요 문화재의 관리 상황을 철저히 파악하고 장기적이고도 근본적인 개선책을 내놔야 한다’는 것도 물론 옳은 지적이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의 패턴으로 대부분의 ‘관급프로젝트’ 내지 정부 정책들에 스며들어 있다. 우리는 그런 점에서 어쩌면 하나를 고쳐 백을 얻는 귀한 기회를 얻은 것일지도 모른다.


 두 가지를 제대로 해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게 몇 년이 걸릴 일인가?” 를 묻고, 그 기간에 대해 합의하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다. ‘누군가의 임기중에’라는 금단의 영역을 건드리는 것만으로, 어쩌면 믿을 수 없는 변화를 만들 수 있다.

대한민국의 많은 숭례문들이 처음부터 끝을 정해놓고 시작한다. 애초에 나무가 마를 수 없는 기간. 예를 들어, 정부가 최근 내놓은 소프트웨어혁신정책을 보자. 소프트웨어를 창조경제의 실현도구로 키운다지만, 내용을 보면 ‘SW 산업에 인력이 부족하다니 당장 몇 년 안에 10만 명을 추가로 공급하겠다’는 식이다. “SW 전공자 300명에게 전액장학금을 지급하고, 고졸인력들이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도 고급 개발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3개의 SW마이스터고등학교를 설립하고…” 인력이 왜 부족하게 됐을까? 땅이 척박해 풀이 자라지 않고 있다면, 거름을 넣어 땅심을 돋우는게 순서다. 하지만 땅에 거름을 넣는 일은 나무를 말리는 것처럼 시간이 걸리고, 아교를 사는 돈처럼 빛이 나지 않는다.


 두 번째로, 실제 일을 하는 사람이 돈을 가져가게 해야 한다. 단청을 바르는 사람에게 14만원을 주기로 했으면, 그 돈은 정말 그 사람에게 가야 한다. 현실은 9만원이 사라진다. 정부는 대한민국 최대의 수요처다. 관급 프로젝트가 하청-재하청을 제대로 잡는 것은 치명적으로 중요하다. 소프트웨어 인력 육성을 위한 가장 좋은 조처가 이것일지도 모른다. 땅이 비옥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숭례문을 제대로 세우는 일은 이 두 가지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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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12일 <내일신문>에 실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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