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행동이 다를 때는 행동이 사실을 가리킨다
소련군은 프로호로프카로 진격했다. 프로호로프카는 동부전선 독일군의 교두보였다. 긴 공방속에 보급로가 끊기는 횟수가 잦아지면서 독일군의 탄약과 식량은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었다.
수송기의 엔진 소리가 들린 것은 그믐 밤이었다. 어둠을 향해 대공포가 불을 뿜었다. 새벽 안개속 수송기가 던져놓은 보급상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정확히 양쪽의 가운데 있었다. 독일군은 특공대를 조직했다. 2개 중대가 희생됐다. 간신히 건져온 보급상자들을 열어젖힌 중사의 얼굴이 하얘졌다. 거기에는 브래지어와 팬티, 면양말들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그뒤 몇 차례 수송기의 보급이 이어졌으나, 수백km 밖 사령부가 보내온 것은 여전히 속옷과 양말 나부랭이였다. 부대는 괴멸했다.
2년전인 2011년 8월 마크 안드리센은 “왜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먹어치우고 있나”를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했다. 그는 페이스북, 스카이프, 트위터 등에 투자한 벤처캐피털업체 안드리센-호로비츠의 공동창업자이자, 브라우저 넷스케이프를 만든 탁월한 개발자다.
“오늘날 세계 최대의 도서판매업체인 아마존은 소프트웨어기업이다. 아마존의 핵심역량은 물리적 상점 없이 거의 모든 것을 온라인에서 판매할 수 있게 해주는 놀라운 소프트웨어 엔진이다…회원 기준으로 세계 최대의 영화 및 동영상 판매기업은 소프트웨어업체인 넷플릭스이다…오늘날 최대의 직접 마케팅 플랫폼은 소프트웨어업체인 구글, 현재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통신회사는 소프트웨어업체인 스카이프다. 석유회사는 초기부터 탐사에 핵심적인 슈퍼컴퓨팅과 데이터시각화 및 분석 기술을 혁신해 왔다. 농업에서도 면적당 씨앗선택 소프트웨어 알고리즘에 연결된 토양 위성분석 등 소프트웨어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
2013년 한국사회의 20대 소프트웨어개발자 비중은 10년 전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다. 서울대 컴퓨터공학과와 KAIST 전산과는 수년째 정원조차 채우지 못하고 있다. 2학년 때 전공을 정하는 KAIST의 전산과 선택 비율은 2000년 초 전체 학생 중 22.6%에 이를 만큼 인기를 끌었지만, 2009년 4.9%로 최저를 기록한 뒤 올해도 6.4%다. 다른 대학들도 마찬가지다.
인구고령화는 한국사회가 당면한 가장 심각한 도전 가운데 하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경제활동인구 2천629만1천명중 50세 이상이 36.5%로 사상 최대다. 그만큼 줄어든 노동인구가 늘어나는 노인을 부양한다. 사회적 부양 부담은 갈수록 늘고, 잠재성장률은 떨어진다.
하지만 한국은 조만간 아이 낳을 곳이 없는 나라가 될지도 모른다. 산부인과 의사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2011년 처음 두 자리 수로 내려간 배출 전문의 숫자는 지난해 사상 최저인 90명을 기록했다.
산부인과의 위기는 모성사망률 증가로 이어진다. 통계청에 따르면 출생아 10만명당 모성사망률은 2009년 13.5명, 2010년 15.7명, 2011년 17.2명으로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정치는 ‘자원을 배분하는 일’이다. 자원배분의 요체는 그 사회의 보상체계, 즉 인센티브 시스템을 어떻게 구성하는가에 달려 있다. 인재의 흐름은, 그 보상체계가 파놓은 물길을 따라간다.
소프트웨어가 세상의 모든 것을 먹어치우고 있는 때, 세계 최고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이곳 한국사회의 보상체계와, 그 체계를 주도하는 정부와 의회는 믿을 수 없을 만치 맥락을 잃고 있다.
최고의 인재들은 줄줄이 성형외과, 피부과가 아니면 공무원으로 투입된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니, 과학자, 인문학도, 심지어 의사중에서도 산부인과, 흉부외과 의사가 되려 하기만 해도 보상은 싸늘하게 줄어든다.
한 사회의 보상체계는 그 사회의 현재와 미래의 모습을 결정한다. 인재의 흐름과 사회적자본 즉 사회적 신뢰의 두께를 결정하는 것도 바로 이 보상체계다. 그러므로 ‘지금 사회의 미래를 위해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일들이 무엇인가’에 대한 판단이 따르지 않은 보상체계는 맹목의 폭주기관차가 돼버린다. 지금 한국사회가 받아든 가장 중요한 과제는 이 시대착오적이고 자멸적인 보상체계를 고치는 일이다.
※앞에 든 전투는 픽션이다. 독일군 사령부는 적어도 그만큼 어리석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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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쯤에 내일신문에 실었던 칼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