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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태웅 Jan 31. 2020

AI시대의 교육

3가지 결핍을 생각한다 

 A.I.시대를 맞아 우리 교육은 어떻게 변해야 하는 걸까? 

지난 17일 정부가 '인공지능(AI) 국가전략'을 발표했다. 

https://msit.go.kr/web/msipContents/contentsView.do?cateId=mssw311&artId=2405727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 모든 국민이 AI 교육을 받아 AI를 잘 활용할 수 있도록 교육체계를 혁신하겠다는 것이다. 개별 부처를 넘어 교육부, 고용부, 과기정통부가 협업하겠다고 한 방향은 아주 좋다. 소프트웨어가 세상의 모든 것을 집어 삼키고, A.I.가 전산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이건 과기정통부나 교육부만의 일이 될 순 없기 때문이다. 내년부터 모든 군 장병과 공무원 임용자가 AI 소양교육을 필수로 받게 한 것, 공무원 승진자에게 AI 교육을 진행하고, 중소·벤처기업 재직자, 소상공인, 산단 근로자 등을 대상으로도 업종별 특화된 재직자 AI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 운영하겠다고 하는 방향도 적절해 보인다. AI 기술이 어지간히 발달하면서 쉽게 쓸만한 API와 라이브러리도 나온 게 많다. 각 산업의 도메인 전문가들이 AI와 결합할 수가 있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소프트웨어가 AI와 별개가 아니라는 것, 소프트웨어교육을 제대로 해야 AI를 잘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도 바람직하다. AI가 유행처럼 몰아 닥치면서 자칫 소프트웨어 교육과 디지털전환이 뒷전으로 내몰리고, AI 교육, AI전환만 강조될까 걱정이 있었다.   

  

 IT업계에 오래 발을 걸치고 있는 사람으로서 생각하는 바 몇가지를 적는다. 무엇보다도 우리 교육에서 치명적인 3가지 결핍을 말하고 싶다.   


기본이 없다 - 시속 150km 이상 던지는 투수가 사라진 사회

 

 이승엽 씨는 한 기사에서 중학생들의 야구시합을 보다 깜짝 놀랐던 순간을 얘기한다. 한 투수가 15개 연속 변화구를 던진 것이다. 그는 충격을 받았다. 유소년 시기는 어깨 근력을 키울  있는 골든 타임이다. 이렇게 보내서는 부상 위험은 차치하고라도,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https://sports.v.daum.net/v/20191204065925621

 미국야구협회와 메이저리그의 가이드라인 '피치 스마트'(Pitch Smart)는 커브는 14∼16세 이후, 슬라이더는 16∼18세 이후에 연습하기를 권고한다. 어린나이의 커브 연습은 투수의 팔 통증을 1.6배 증가시키며, 슬라이더를 던지는 투수의 팔꿈치 통증 발생률을 85%나 높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11살에 커브,  12살부터 슬라이더를 배우기 시작해 커브는 13세(23.7%), 슬라이더는 15세(21.5%), 싱커는 16세(25.0%)에 가장 많은 선수가 던지기 시작한다. 

https://www.yna.co.kr/view/AKR20170117131600007

 대구북구 유소년팀의 홍순천 감독은 한국 투수들이 리틀야구에선 세계 최강이다가 성인이 되면 미국, 일본 선수들에 뒤지는 이유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릴 때부터 변화구와 같은 기술을 빨리 사용해 상대를 제압한다. 그러나 기술로 접근하면 본능적으로 하는 동작이 사라진다. 무리하니 부상도 온다. 150㎞ 이상 던지려면 기본적 운동능력이 필요하다. 야구뿐만 아니라  육상수영배드민턴요가와 같은 다양한 종목으로 반응속도근력시각능력을키워야 한다. 무엇보다 아이들은 마음껏 뛰어놀아야 한다. 지도자는 재미있게 끌고 가는게 중요하다.” 

https://sports.v.daum.net/v/20191209083333556


움직임이 없다 

 

 한국 청소년의 운동부족은 세계 최악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2016년 146개국 11~17세 학생을 대상으로 신체 활동량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 청소년의 94%가 운동부족이다. 여학생에 한정하면 무려 97.2%. 한국의 초등학교 1·2학년은 아예 체육수업 자체가 없다. 방과 후 체육 활동에 참여하는학생 비율(42.9%)은 아예 OECD 전체에서 꼴찌다. OECD 평균(66%)보다 20%포인트 이상 낮았다. OECD는 회원국 35개국 외에 중국 등 37개비회원국도 조사했는데, 이 나라들을 포함하면 한국이 72개국 중 꼴찌다.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144&aid=0000643881&fbclid=IwAR0UEq1exC3Wuk7bHhktxmoCubR8g5YmC2uh8YPDjcaLUDQ-mrlkh1hanwk

 2008년 뇌와 체육의 관계를 밝혀낸 책 '운동화 신은 뇌'를 써서 세계적으로 화제를 일으킨 존 레이티(Ratey·71) 하버드의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온종일 앉아만 있는 한국식 교육은 학생들 뇌를 쪼그라들게 만들 수 있다”고 경고한다. "아이들을 좁은 교실에 가둬놓고 몇 시간씩 움직이지 말고 공부하라는 건 뇌를 죽이는 일"이라는 것이다. 

레이티 교수는 '운동이 학생들의 뇌를 활성화해 공부를 더 잘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입증했다. 대표적 사례가 미국 일리노이주 네이퍼빌센트럴고 얘기다. 네이퍼빌 고교에서 학생들에게 수업 전에 운동을 시켰더니 2005~2011년 학생들의 수학 성적이 1년 만에 평균 19.1점 올랐다. 같은 기간운동 안 한 학생들은 9.9점만 올랐다. 이후 '0교시 운동'은 인근 학교들로 퍼져나갔다. 펜실베이니아주 평균 성적에 못 미쳤던 타이터스빌 학군 학생들도체육 수업을 강화하자 학력평가에서 읽기는 평균보다 17%, 수학은 18%씩 높게 나왔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23&aid=0003419418&sid1=001&fbclid=IwAR3BhQvpPSZTIokIlcjBvuoOw06Ma7PVNeMqFy1eDzTzdbMriREBvjZXh8c

 그외에도 30분간 실내자전거를 약간 숨찰 정도로 달린 후 두뇌 4곳과 해마활동도를 비교했더니 두뇌활동도가 2.5배 높아지고 기억력이 좋아졌다거나, 매일1시간씩 5주간 수영한 쥐는 치매유발물질(베타아밀로이드)을 주입해도 치매에 걸리지 않았다는 등 뇌와 신체가 연동한다는 근거는 차고 넘친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639690?fbclid=iwar2t2adjshs1aqsua7y1nrm-szkg221erpbeqgj-knq7hy2kuvtpn_58zmc  


근거(Evidence)가 없다 

 

 어릴 때 운동을 하지 않고 온종일 앉아만 있으면 공부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건 이미 입증이 된, 다시 말해 근거가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한국의 공교육은 청소년들을 세계에서 가장 움직이지 않게 만든다. 특히 소녀들의 경우 무려 97.2%가 운동부족이다. 이 시기의 운동부족은 평생의 체형과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미국 네이퍼빌 고교에서 학생들에게 수업 전에 운동을 시켰더니 수학 성적이 1년 만에 평균 19.1점 오른 것도 마찬가지다. 강남의 어떤 일타 강사가 전교생을 상대로 이런 성과를 낼 수 있겠는가. 하지만 한국의 초등학교 1·2학년은 아예 체육수업 자체가 없다. 

 어릴 때 변화구를 가르치면 커서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것도 입증된 사실이다. 이웃 일본만 해도 구속이 150km를 넘기는 투수가 해마다 등장한다. 어릴 때는 변화구를 익힐 때가 아니라 홍순천 감독의 말처럼 반응속도, 근력, 시각능력을 키워야 할 때다. 변화구는 언제든 익힐 수 있지만, 반응속도와 근력, 시각능력은 이때를 놓치면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의 교육은 여전히 “나는 떡을 썰테니 너는 글씨를 써라”에 머무르고 있는 듯 보인다.  

 얼마전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23세이하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세계 최초로 올림픽 9회 연속출전이라는 위업도 함께 달성했다. 김 감독은 이 중요한 시합에서 매경기 다른 선발로 상대를 공략했다. 11명이 뛰는 경기에 절반이 넘는 대여섯 명을 바꾸는 식이었다. 게다가 단 한 명의 부상 선수도 없었다. 그는 어떻게 이런 성과를 낸 것일까? 높은 스피드로 측면을 공략하는 이동준 선수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스프린트(순간적으로 가속해 빨리 달리기)가 많은 선수다. 감독님이 많이 배려했다. 빠르고 체계적인 회복에 집중했다. 마사지도 마찬가지다. 너무 감사했다. 회복을 잘해서 경기를 잘 뛸 수 있었다.” 왕성한 활동량을 자랑했던 원두재도 마찬가지였다. “식사부터 에어컨까지 모든 걸 세심하게 체계적으로 돌봤다. 그래서 부상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협회 관계자는 “체계적인 관리를 했다. 훈련 뒤에 개별적인 데이터를 뽑아 지침을 했다. 각자 몸 상태에 맞게 훈련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근육 피로 최소화 방안을 고민했다”라고 밝혔다. 즉, 김 감독은 훈련이 끝날 때마다 선수들의 데이터를 뽑아 각자의 몸 상태에 맞는 훈련과 회복프로그램을 준비했던 것이다. 한국 대표팀은 전 경기가 끝날 때까지 단 한 명의 부상 선수도 없었던 거의 유일한 팀이었다. 김 감독의, 근거(Evidence)에 기반한 운영의 결과였다.  

https://sports.v.daum.net/v/20200127140202642?fbclid=IwAR1fvEewxS-i_zd877_rPdmeNYOTyz4antdqbrdYtDOv3iJIdqpZnViwL9U

 한국의 공교육은 여전히 “공부는 엉덩이로 하는 것”이라는 유교풍의 근면, 혹은 “민족 중흥”같은 산업사회의 구호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국어 과목을 설명하는 교육부 고시 제 2015-74호를 보자.  

http://www.law.go.kr/행정규칙/초·중등학교교육과정/(2015-74,20150923)


  “초・중・고 공통 과목인 ‘국어’는 국어를 정확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데 필요한 능력과 태도를 기르고,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국어 사용을 바탕으로 하여 국어 발전과 국어 문화 창달에 이바지하려는 뜻을 세우며, 

가치 있는 국어 활동을 통해 바람직한 인성과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는 과목이다.”  


 국어과목의 목적이 ‘국어 발전과 국어 문화 창달에 이바지하려는 뜻을 세우게 하는’데 있다는 건 본말이 전도된 느낌이다. 아이들이 시와 소설을 즐길 줄 알게 하면 ‘결과적으로’ 국어 발전에 이바지할 대 문호가 나타날 순 있어도, 그게 거꾸로 되진 않을 것이다. 뭔가 회초리를 손에 들고는 ‘좀 더 창의적으로 자유분방하게 하란 말이야’ 고함을 치는 모습을 보는 기분. 

 ‘가치 있는 국어 활동을 통해 바람직한 인성과 공동체 의식을 함양한다’는 것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가치있는 국어 활동’이 무엇이든, 국어 교육이 결국 읽기, 쓰기, 듣기, 말하기 네 가지를 잘 할 수 있게 가르치는 것이라면 실제로 국어 교육이 가져야할 근거는 다른 곳에 있다. 예를 들어 ‘실질문맹률’. OECD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실질문맹률은 세계 최고수준이다.

https://berohj.tistory.com/261

 OECD는 지난 2013년 세계 22개국에서 15만 명 이상을 방문면접조사해 이런 놀라운 결과를 뽑아냈다. 특이한 것은 다른 나라들은 30~35세에 가장 높은 독해력을 나타낸 다음 서서히 떨어지는데, 한국은 20대 초반에 정점을 찍은 뒤 연령이 증가할수록 급격히 감소하는 패턴을 보인다는 것이다. OECD의 연구담당자는 “책을 읽지 않는 채로 나이가 들면 독해력이 크게 떨어진다”라고 설명했다. 너무 어릴 적에 변화구를 익힌 결과 막상 성인이 되어서는 강속구를 던질 수 없게 된 야구의 경우와 흡사하다. 한국의 국어 교육은 ‘실질문맹률’이라는 근거를 가질 수 있다. ‘어릴 적에 책 읽는 습관을 갖게 하자’가 하나의 목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듣기’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오래 사회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이 문제를 절감할 것이다. ‘제대로 듣는’ 사람을 만나기가 정말 어렵다. ‘듣기’가 사라지면 자연스레 대화와 토론도 함께 사라진다. 혼자서 대화를 할 순 없기 때문이다. 상대의 말을 들은 뒤 자신의 언어로 요약해서 들려주고, 제대로 들은 건지 확인을 하는 건 아주 좋은 방법이지만, 실제로 이렇게 하는 사람은 매우 적다. 한국 사회에서 토론이라고 하면 곧바로 ‘말싸움’이 떠오르고, 승패를 묻게 되는 것도, 이런 ‘듣기’ 부재의 공교육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말을 잘하는 사람에게 흔히 ‘말재주’라는 부정적인 표현이 붙는 것도 비슷한 사례다. 실질문맹률을 측정해냈듯 청취이해력도 충분히 측정할 수 있을 것이고, 이것이 또 하나의 근거가 될 수 있다.  


A.I. 교육  


 AI교육이라고 하지만, 초중학교에서 AI 교육은 곧 소프트웨어 교육, 더 정확히 말하면 컴퓨팅적 사고력(Computational thinking)을 길러주는 것이 될 것이다. 논리적 사고력이나 수학적 사고라고 해도 좋겠다.

 컴퓨터는 0과1만을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논리적이지 않으면 컴퓨터는 이해를 하지 못한다. 아주 뛰어난 엔지니어들과 쉽게 합의를 한게 있다. 지금까지 한번도 아니라고 한 사람을 만나지 못했는데, 그것은 프로그래밍을 한마디로 말하면 ‘예외를 처리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논리적인 사고와, 경우의 수를 생각해내는 상상력, 예외를 처리하는 창의성을 기르는게 곧 AI 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프로그래밍 작업의 90% 이상은 협업으로 이뤄진다. ‘경청하기’와 ‘논리적으로 말하기’는 따라서 AI에 필수적인 역량이 된다. 문제를 의식하고 발견해 중요한 오류를 찾는 것(디버깅 debugging),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관찰해 세밀하게 이해하는 것(요구사항명세 Requirement Specification), 있을 수 있는 경우를 생각해 그려보는 것(사용자 시나리오 User Scenario), 반복되는 일들에서 공통점을 찾아내는 것(알고리듬 Algorithm)들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게 말하자면 A.I.교육의 핵심이 된다. 


두 가지를 짚고 글을 마치고자 한다. 

첫째, A.I.를 포함해 한국의 교육이 구체적인 근거(Evidence)를 가지고 이뤄지기를 바란다. 관성으로 이뤄지고 있는 일들이 너무 많은데, 예를 들어 국어 과목의 정의는 시대에 맞게 전면개정하면 좋겠다. 무엇보다 교육을 받는 아이들의 입장에서 서술이 돼야 옳다

둘째, 반드시 피해야 할 것은 이것이 자칫 어려서부터 변화구를 가르치는 일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익혀야 할 것은 변화구가 아니라 기본적 운동능력이다. 좋은 야구선수가 되기 위해선 야구뿐만 아니라  육상, 수영, 배드민턴, 요가와 같은 다양한 종목으로 반응속도, 근력, 시각능력을 키워야 한다. A.I.도 마찬가지다. 컴퓨팅적 사고력과 책읽는 습관, 정성껏 듣고 주의깊게 관찰하고 잘 커뮤니케이션하기, 뇌가 자랄 수 있도록 마음껏 뛰어놀고 평생 즐길 하나의 운동을 갖게 하기, 이것이 참된 A.I.교육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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