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일어나면 잘 살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여행 중에는 몸이 먼저 반응을 했다.
누가 깨우지 않아도 번쩍하고 눈이 떠진다거나 평소엔 꾸지도 않는 이상한 꿈을 꾸다가 잠을 설친다거나.
아이슬란드는 그랬다. 섬 전체가 아침을 맞이해주는 것 같은.
끊임없이 말을 거는 느낌. 그 말은 음성이 아니라 꼭 수어처럼 하나의 몸짓으로 다가왔다.
얼른 일어나서 떠오르는 태양을 보라고. 찬바람에 날리는 하얀 눈발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하늘에 뜬 구름이 어떤 모양을 하고 어느 쪽으로 흐르는지. 놓치지 말고 흐르는 모든 순간을 담아가라고.
한 번 지나간 순간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고. 아이슬란드는 온몸으로 이야기를 하는 듯했다.
하얗게 밝아오는 새벽.
여행 내내 대부분 같은 방을 쓰거나,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잔 작가님은 잠귀가 참 밝았다.
조금만 움직여도 오래전부터 깨어있던 사람처럼 “잘 잤니-”하고 인사를 하셨다.
그때마다 움찔했다.
혹여나 나의 움직임 때문에 선생님이 잠에서 깨어난 게 아닐까, 하는 일말의 죄책감 때문에.
동시에 오래도록 좋아하던 작가가 아침 인사를 내 쪽으로 건넨다는 벅찬 설렘을 동시에 안고서.
잠긴 목소리로 “푹 주무셨어요?” 하고 대답을 했다.
그럼 아무렇지도 않게 “그럼, 잘 잤지.”하고 다정하게 말을 이어주셨다.
방금 막 잠에서 깨어났는데, 다시 꿈을 꾸는 기분.
‘좋아하는 일은 같이하자, 오래 봤으면 해.’
이 문장을 작가님께 2016년도에 처음 선물 받았다.
그 말을 주문처럼 외우며 살았다. 힘이 들 때마다. 어딘가로 떠나고 싶을 때마다. 어딘가로 떠나서도.
떠나서 다시 돌아올 때도.
그 문장 하나로 버틴 날들이 참 많았다.
좋아하는 일을 함께하기 위해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을 알아내야 했고, 오래 보기 위해서는 자주와 가끔의 사이를 맴돌아야 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손을 뻗었을 때 닿을 수 있는 그 거리에 있기 위해. 부르면 언제든 달려갈 수 있는 사정거리 안에 존재하기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살았던 날들도 있었다. 그 모든 노력은 아이슬란드의 새벽에 울려 퍼지는 “잘 잤니.”라는 한 마디로 보상이 되었다. 정말이지 그거면 충분했다.
꿈같은 순간들을 뒤로한 채 간밤에 뭉친 피로들을 덜어내기 위해 기지개를 켜고 냉장고 쪽으로 몸을 움직여 생수를 벌컥벌컥 마시면서 ‘좋은 아침이야.’라는 혼잣말을 자주 했다. 하나의 의식처럼. 그렇게 아침을 시작하면 그날 하루는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았기 때문에.
운동선수들은 본인들이 가진 고유의 루틴이 있다. 루틴이라는 것은 운동 능력을 일정한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습관적으로 하는 일관성 있는 행동들을 말하는데, 그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기 자신에게 최고의 것을 주고 싶은 마음. 실수는 줄이고 기존에 해오던 것들을 무리 없이, 별다른 굴곡 없이 제대로 해내고 싶다는 다짐 같은 것. 그렇게 매일 아침 운동선수가 된 기분으로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그 당시에 우린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게 참 많았다. 아는 거라곤 겉으로 보이는 것과 서로가 서로에게 꺼내어 말해준 것. 딱 그 정도뿐이었다. 하지만 그땐 그걸 몰랐다. 본 것과 들은 것 이상으로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착각했다. 아이슬란드의 마법 때문이었을까. 보이는 것과 들은 것이 전부였으니, 전부가 정말 큰 줄로만 알았다. 그땐 알지 못했던 걸 글을 적고 있는 지금, 우리는 서로의 글을 공유하고 다듬으면서 이전보다 더 많은 부분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됐다. 우리는 의도치 않게 서로를 속이며 여행하고 있었던 걸까.
나의 아침은 매번 그렇게 시작됐다. 하나둘씩 잠에서 깨어나면 부스스한 얼굴로 서로의 밤이 어땠는지 묻고, 눈에 낀 눈곱을 떼면서. 엉킨 머리카락을 풀면서. 한쪽 눈에만 생긴 쌍꺼풀을 펴보려고 노력하면서. 그러다 작가님이 내려주는 커피 향을 맡고, 커피를 마시고. 오늘 하루 동안의 사주를 점치면서.
그때 우리의 목적지는 매일 분명했지만, 앞에 펼쳐진 길은 하나뿐이었기에 다른 선택지 없이 계속해서 달렸다. 그때 우리가 선택할 수 있었던 거라고는 달리는 속도를 조금 늦추거나 목적지에 가닿기 전에 잠시 샛길로 빠져 주변의 경치를 보며 감탄하는 것뿐이었다. 차에서 내려 굳이 고개를 들지 않아도 하늘을 볼 수 있다는 게 조금은 생경했다. 시야를 막고 있는 높은 건물도 없고, 시커먼 매연을 뿜으며 달리는 자동차도 없고. 어디론가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도. 있는 건 우리와, 우리를 둘러싼 자연. 아이슬란드 그 자체였다. 우리는 그 안에서, 섬이 주는 어떤 이름 모를 기운과 누군가 놓고 간 마음들을 발견하면서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그때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의미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