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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oyory Apr 08. 2022

봄빛을 머금은 날들

낮잠에 대하여


창문을 통해 안으로 쏟아지는 빛.

햇살을 머금은 저마다의 모양들.

그 순간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닿은 줄도 모르게 가까이 다가와 서서히 물드는 것들.

오늘 같이 맑은 날엔 계획 없이 떠났던 제주도 여행이 떠오른다.


대부분 낮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예약했다.

비행기를 타고 구름 사이를 가로지르며 푸른 제주의 바다를 보며

아름답게 착륙하면, 그보다 더한 행복은 없다고 생각할 때가 있었으니까.


어떤 계획은 없어도, 가야할 곳은 명확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방황하거나 길을 잃는 일은 없었다.


길을 잃더라도, 바다를 따라 달리다보면 결국 원하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중간중간 부서지는 파도 앞에 차를 세우고, 이어폰을 꽂고 눈을 감고, 다린의 '바닷가'를 들었다.

그럼 모든 걸 용서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마음이 생겼으니까.


하나의 의식처럼.

경건하게.

평온한 마음으로.

감사하면서.


뒷 좌석을 눕히고, 트렁크를 바다쪽을 향해 열어두고 나도 따라 눕는다.

사방이 고요해지면, 정적이 흐르고. 그 정적 안에 나를 던진다.

낮잠으로 빠져들기 직전의 상태.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온 몸에 힘이 스르르 빠지면서

낮잠에 든다.


그 낮잠은 오래 가지 않는다.

길어야 10분, 혹은 15분.

하지만 두 시간 정도를 푹 자고 일어난 것처럼 가뿐해진다.

몸도, 마음도.

내가 자는 동안 바다가 걱정과 염려를 다 데리고 간 것처럼.


제주에 닿지 못한 지 곧 1년이 된다.

1년이 되기 전에, 한 번 더 다녀올 수 있을까.

섬에서 자는 낮잠이라니.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요즘처럼 꽃이 피고, 바람이 살랑이는 때에는 더더욱.


나를 데리고 떠나는 여행을, 꼭 해야지.

해내고 말아야지. 낮잠을, 꼭 자야지.

행복하게, 아름답게. 그렇게 살아야지.


2022년의 주제는 '아름다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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