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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용 Nov 04. 2023

세계 끝의 버섯 _ 애나 로왠하웁트 칭

나에겐 너무 생소한 책이었다. 독서모임이 아니었다면 다 읽지도, 어떤 생각을 정리하지도 못했을 것 같다. 나처럼 벽을 느끼는 독자가 있다면 책 뒤편의 번역가 해제를 먼저 읽어보길 권한다. 마지막 해제를 읽으면 저자의 의도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인본주의에서 벗어난 포스트휴머니즘, 인간과 비인간 존재의 얽힘을 이야기했지만 나는 책을 읽으며 지극히 인간 중심의 사고를 했다. 인간끼리의 만남에서 일어나는 교란과 오염, 거기서 발견되는 패치들은 무엇이 있을지를 자주 상상했다. 나에겐 이런 모임 자체가 교란이자 오염이고 패치의 공간 같았다.


자본주의의 나쁜 특징 중 하나를 단순히 표현하면 '바쁘다'가 아닐까 싶다. 자본주의 사회는 사람들을 너무 바쁘게 만든다. 내 기준에서 바쁨이 만들어내는 나쁨이 아주 많다. 바쁨으로 인해 지나치게 효율을 따지고 나 혹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며 비인간 존재를 외면하거나 파괴한다. 요즘 나는 일에 관심이 많은데, 그런 관점에서 안 바쁘게 일하는 삶을 상상하고 있다. 쉬운 일을 적게 한다기보다는 안 바쁜 마음으로 일과 사람을, 더 나아가서 비인간 존재들을 대하고 싶다.


이 두꺼운 책을 읽고 나니 읽으려고 했으나 덮어두었던 책들을 다시 읽고 싶어 졌다. 필요한 내용만 골라 읽었던 '타이포그래피 천일야화'와 조금 읽다가 만 '만화의 이해', 황정은 작가 추천으로 샀다가 바로 알라딘에 팔았던 '향모를 땋으며'까지. 이 책을 읽으며 느꼈던 어려움 역시 이렇게 독자를 움직이게 하려는 저자의 의도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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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


8

대부분의 학술서와는 달리, 이 책에는 짧지만 다채로운 장들이 펼쳐질 것이다. 나는 그 장들이 비 온 뒤 쑥쑥 올라오는 버섯과 같았으면 했다. 다시 말해서 넘쳐날 만큼 풍부한 것, 탐험을 부르는 것, 언제나 너무 많은 것이 되기를 바랐다. 각 장의 이야기가 모여 만드는 것은 논리적인 기계가 아니라 열린 배치다. 각 장은 그 바깥에 있는,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향해 손짓한다. 각 장은 서로 얽혀 있으면서도 서로를 방해하는데, 그 모양이 내가 서술하려고 하는 세계의 패치성과 닮았다. 아울러 책에 첨부된 사진은 텍스트와 나란히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미리 얘기해두자면 삽화처럼 텍스트를 직접적으로 설명하지는 않는다. 내가 이미지를 사용하는 것은 내가 논하는 장면보다는 내 주장에 깃들어 있는 정신을 나타내기 위해서다. 


9

내 책은 '제3의 자연'을 제안하는데, 그것은 곧 자본주의 속에서도 삶을 살아내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제3의 자연을 깨닫기 위해서라도 미래가 단일한 방향으로 뻗어나간다는 가정을 버려야 한다. 양자장의 가상 입자들처럼 복수의 미래가 수많은 가능성과 함께 출몰한다. 제3의 자연은 이런 시간적 다성음악 안에서 창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보에 관한 이야기들이 우리 눈을 멀게 했다. 이 책은 진보의 이야기 없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삶이 얽혀 있는 방식의 열린 배치를 그려낼 것이다. 이들 열린 배치가 많은 종류의 시간적 리듬과 조화를 이루면서 합쳐지기 때문이다. 나의 형식 실험과 내가 펼치는 주장은 서로를 뒷받침한다. 


22

이 책은 불확정성과 불안정성의 상황, 즉 안정성에 대한 약속이 부재하는 삶을 탐구하기 위해 버섯과 함께 떠난 나의 여행 이야기다. 1991년 소련이 무너지자 갑자기 정부 지원을 못 받게 된 수천 명의 시베리아인이 버섯을 따러 숲으로 달려갔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내가 쫓는 것이 이러한 버섯은 아니지만, 이 이야기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담겨 있다. 바로 우리 것인 줄만 알았던 통제된 세계가 실패했을 때, 통제받지 않는 버섯의 삶이 선물이자 길잡이가 되어준다는 것이다. 


26

송이버섯은 인간이 교란한 숲에 산다. 쥐, 너구리, 바퀴벌레처럼 송이버섯도 인간이 만든 환경 문제의 일부를 기꺼이 참아주고 있다. 하지만 송이버섯은 유해 생물이 아니다. 송이버섯은 귀한 고급 식재료이며, 적어도 일본에서는 높은 가격 때문에 종종 지구상 가장 귀한 버섯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송이버섯은 나무에 영양분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척박한 땅에서도 숲이 조성될 수 있도록 돕는다. 송이버섯을 따라가다 보면 환경 교란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우게 된다. 이것이 환경을 더 훼손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지만, 여하간 송이버섯은 협력적 생존의 한가지 방식을 보여준다. 


47

산업적으로 탈바꿈한다는 것은 생계 터전을 잃고 풍경을 훼손하게 될 물거품 같은 약속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이런 기록에 미쳐 담기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 우리가 이 이야기를 쇠락의 결말로 마친다면 모든 희망을 저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약속과 붕괴가 거듭되는 다른 장소로 눈을 돌리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50

인류세란 인류가 출현하면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풍경과 생태의 광범위한 파괴를 주도한 근대 자본주의가 도래하면서 시작됐다고 보는 것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이런 시기 문제 때문에 접두사 '인류-'는 더 문제가 된다. 자본주의 등장 이후의 인간을 상상해보면 진보라는 관념, 그리고 인간 및 다른 존재들을 모두 자원으로 만들어버린 소외 기술의 확산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 같은 기술은 인간들을 분리하고 정체성을 철저히 감시함으로써 협력적 생존을 어렵게 했다. 인류세 개념은 근대인의 자만심이라 부를 만한 이런 열망덩어리를 환기시키는 동시에, 우리가 이를 넘어설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불러일으킨다. 과연 우리는 이러한 인간 체제 내에서 살아가면서도 그 체제를 넘어설 수 있을까?


51

국가의 유효성과 자연 풍경에 대한 자본주의의 대대적인 파괴를 고려할 때, 우리는 국가와 자본주의의 기획 바깥에 있던 것들이 오늘날 왜 살아남았는지 질문할 수 있다. 이 질문에 답하려면 다루기 힘든 가장자리의 것들을 관찰할 필요가 있다. 미엔인과 송이버섯이 오리건주에서 함께 모이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언뜻 사소해 보이는 이런 질문이 모든 것의 방향을 뒤집어, 예측 불가능한 마주침을 핵심적인 것으로 보도록 이끌지도 모른다. 


56

배치는 유용한 개념이다. 생태학자는 때로 고정되고 제한된 함의를 갖는 생태적 '공동체'를 벗어나 배치로 관심을 돌렸다. 하나의 배치 안에 존재하는 여러 생물종이 어떤 방식으로 서로서로 영향을 끼치는지는 결코 정해져 있지 않다. 어떤 것은 서로를 방해하고 (혹은 먹고) 어떤 것은 생존을 위해 협력한다. 또 어떤 것은 자신들이 같은 장소에 있음을 이제 막 우연히 알게 됐다. 배치는 열린 모임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편견 없이 공동의 영향에 대해 물을 수 있고, 형성 중인 잠재적 역사를 볼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뜻하는 바를 위해서는 요소들의 모임을 가리키는 유기체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 삶의 방식이 한데 모이는 모습을 봐야 할 것이다. 인간의 존재 방식과 마찬가지로 비인간의 존재 방식도 역사적으로 변화한다. 살아 있는 것들에게 생물종으로서의 정체성은 출발점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존재 방식이란 마주침에서 창발하는 결과다. 인간을 떠올려보면 이 점이 분명해진다. 버섯 채집은 삶의 방식이지만 모든 인간이 공유하는 특성은 아니다. 다른 생물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소나무는 인간이 만들어낸 빈터를 사용하는 데 도움이 될 버섯을 찾는다. 배치는 삶의 방식을 모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방식을 만들어낸다. 배치를 중심에 놓고 생각하면 다음과 같이 질문하게 된다. 어떻게 모임은 때때로 부분들의 합보다 더 큰 '사건'이 되는가? 만약 진보를 뺀 역사가 불확정적이고 다각적이라면, 배치가 그것이 지닌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가?

배치에서는 의도치 않은 조율 패턴이 발달한다. 그런 패턴을 알아차린다는 것은 다양한 삶의 방식이 모여 빚어내는 시간적 리듬 및 규모의 상호작용을 지켜본다는 뜻이다. 


64

미국에서 유행하는 판타지를 살펴보면, 생존이란 항상 다른 존재와 싸워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것을 뜻한다. 미국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외계 행성 이야기에 등장하는 '생존'은 정복과 팽창의 동의어다. 나는 생존을 그런 의미로 사용하지 않겠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열린 마음으로 다른 의미를 생각해보기 바란다. 어떤 생물종이든 살아 있기 위해서는 살기에 적합한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 책이 주장하는 바다. 협력이란 차이를 수용하며 일한다는 의미로, 이것은 곧 오염으로 이어진다. 협력하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는 죽는다. 


66

우리가 각자 홀로 생존한다는 식의, 사실과 정반대되는 환상을 품을 수 있는 건, 다른 존재를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특권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생존하기 위해 항상 다른 존재와 관계를 맺어야 한다면, 생존이란 필연적으로 자기 자신과 다른 존재가 함께 변형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불확정성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76

설상가상으로 오염된 다양성은 근대 지식의 특징이 된 일종의 '요약하기'에 저항한다. 오염된 다양성은 특수하고 역사적이며 항상 변화할 뿐 아니라 관계를 맺으며 존재한다. 여기에 자립적 구성 단위란 없다. 오염된 다양성의 구성 단위는 마주침에 기반한 협력이다. 자립적 구성 단위가 없다면, 어느 '하나의' 관련자에 대한 비용과 혜택 또는 기능성을 산출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 어떤 자립적 개별자나 집단도 마주침을 감지한 상태에서는 자신의 개별적 이익을 확신할 수 없다. 자립에 기반한 알고리즘이 없다면, 학자와 정책 입안자는 문화사와 자연사에서 중대한 것을 배워나가야 할지도 모른다. 하나의 등식으로 전체를 파악하길 꿈꾸는 사람들에겐 아마도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누가 그들에게 그것을 파악할 책임자의 지위를 주었는가? 만약 골치 아픈 이야기를 쏟아내는 것이 오염된 다양성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이라면, 이제 그렇게 쏟아내는 것을 우리의 지식 실천의 일부로 만들 때다. 어쩌면 전쟁 생존자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죽음과 죽을 고비와 쓸데없는 삶에 대한 우리의 모든 이야기가 우리 편에 서서 현재의 도전에 직면하도록 도와줄 때까지 말하고 또 말해야 할 것이다. 골치 아픈 이야기들의 그런 불협화음에 귀 기울일 때, 비로소 우리는 불안정한 생존을 향한 최선의 희망과 마주칠 수 있을지 모른다. 


79

당신은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그저 논리적일 뿐입니다. 


81

인류가 규모의 확장을 통해 전진한다는 인식은 매우 강력하게 자리 잡았다. 따라서 확장될 수 있는 요소는 어마어마한 주목을 받고, 확장될 수 없는 요소는 걸림돌로 여겨진다. 이제는 우리가 단지 서술 대상으로서만이 아니라 이론을 성립하게 하는 요인으로서 확장될 수 없는 요소에 관심을 기울일 때다. 


85

송이버섯은 다른 생물종과 변형적인 관계를 맺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 송이버섯은 숲의 특정한 나무와 어울려 지내는 땅속 곰팡이의 자실체다. 이 곰팡이는 숙주 나무 뿌리와 상리공생 관계를 맺는데, 나무에게 양분을 찾아주고 자신은 나무로 부터 탄수화물을 얻는다. 송이버섯 덕택에 숙주 나무는 비옥한 부엽토가 없는 척박한 땅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 그 대가로 곰팡이는 나무에게서 영양분을 공급받는다. 이 변형적인 상리공생 때문에 인간의 송이버섯 재배는 불가능했다. 일본의 연구기관들이 송이버섯을 재배하기 위해 수백만 엔을 들여 노력해왔지만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 송이버섯은 플랜테이션 농장의 환경 조건에 저항한다. 송이버섯에 필요한 것은 숲의 역동적인 다종적 다양성, 그리고 이를 통해 서로를 오염시키는 관계성이다. 


89

불안정성을 염두에 두고 생각한다는 것은, 확장성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프로젝트가 풍경과 사회를 변형시켜온 방식을 이해함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확장성이 실패하는 지점, 그리고 확장성 없는 생태적, 경제적 관계가 분출하는 지점을 응시해야 한다는 점에서 도전적인 일이다. 확장성과 비확장성 양쪽 모두가 이뤄놓은 결과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확장성은 나쁘고 비확장성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다. 확장성 없는 프로젝트도 확장성있는 프로젝트만큼이나 끔찍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규제받지 않고 일하는 벌목꾼들은 과학적인 산림감독관보다 더욱 빠르게 숲을 파괴한다. 확장성 있는 프로젝트와 확장성 없는 프로젝트를 가르는 주요한 특징은 윤리적 행동 여하가 아니다. 확장성 없는 프로젝트는 팽창할 채비를 하지 않기 때문에 좀 더 다채로운 양상을 띠지만, 그것 역시 무해한 것부터 끔찍한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범위에 걸쳐 있다. 


94

냄새는 규정하기 힘들다. 우리는 냄새의 효과에 깜짝 놀란다. 냄새가 강렬하고 특정한 반응을 일으킬 때조차도 우리는 냄새를 말로 설명하는 방법을 잘 알지 못한다. 인간은 공기를 들이마실 때 숨쉬기와 냄새 맡기를 동시에 하는데, 냄새를 묘사하는 것은 공기를 묘사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그러나 공기와 달리 냄새가 난다는 것은 또 다른 것이 존재한다는 신호이며, 우리는 그것에 이미 반응하고 있다. 반응은 항상 우리를 새롭게 한다. 우리는 더는 우리 자신 - 또는 최소한 이전의 우리 자신 - 이 아니라 또 다른 것과 마주치고 있는 우리 자신이다. 마주침이란 본래 정확히 규정할 수 없는 현상이다. 우리는 마주침을 통해 예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변형된다. 규정하기 어렵지만 명확히 존재하는 혼란스러운 조합의 냄새가 마주침에 내재한 불확정성에 대해 알려주는 유용한 안내자가 될 수 있을까?


103

인간은 마주침에서 맞닥뜨린 시련에 대처하기 위해 역사를 소환한다. 이러한 역사는 인간과 비인간 모두에게 결코 잘 짜인 기계장치 프로그램이 아니라 오히려 불확정적인 지금 여기의 응축이다. 철학자 빌터 벤야민이 표현한 것처럼, 우리가 붙잡는 과거는 '위험의 순간에 빛나는' 기억이다. 우리는 '이전에 가본 곳으로 뛰어드는 호랑이의 도약처럼' 역사를 재연한다고 벤야민은 말한다. 


120

자본주의적 농장은 부를 모으기 위해 생태적 과정을 통해 형성된 살아 있는 존재들을 끌어들인다. 나는 이를 '구제'라고 부르는데, 자본주의적 통제를 받지 않고 생산된 가치를 써먹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주의적 생산에 사용되는 많은 원료는 자본주의가 시작되기 훨신 전부터 존재했다. 또한 자본가들은 '노동'의 전제 조건인 인간 생명을 생산할 수 없다. '구제 축적'은 선두 기업이 상품 생산 조건을 통제하지 않고 자본을 축적하는 과정이다. 구제는 통상적인 자본주의 과정에서 드러나는 부수적인 장식이 아니다. 그것은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의 한 가지 특징이다. 


128

어떤 개념을 살아 숨쉬게 하려면 구체적인 역사가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버섯 채집이야말로 진보 이후에 탐색해볼 만한 장소이지 않은가? 송이버섯이 거쳐 가는 오리건주에서 일본까지의 상품사슬에 존재하는 균열과 가교를 살펴보면 경제적 다양성을 통해 성취된 자본주의가 드러난다. 주변자본주의적 행위를 통해 채집되고 팔리는 송이버섯은 채집된 다음날 일본으로 보내지면서 자본주의의 재고품이 된다. 이러한 번역은 많은 글로벌 공급사슬의 중심이 되는 문제다. 


143

자유에 대해 질문할수록 나는 그 용어가 더욱 낯설게 느껴졌다. 여기서 자유란 용어는 개인의 합리적 선택의 규칙성을 논하기 위해 경제학자들이 사용하고 상상하는 그것이 아니다. 정치적 자유주의도 아니다. 버섯 관계자들의 자유는 불규칙적이며, 합리화의 외부에 존재한다. 공연 성격을 띠고, 공동체에 따라 다양하며, 기운이 넘치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 장소의 소란스러운 코즈모폴리터니즘과 관련이 있다. 왜냐하면 그 자유가 잠재적인 분쟁과 오해로 가득한 열린 문화적 상호작용으로부터 등장하기 때문이다. 나는 자유가 유령과의 관계에서만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자유는 귀신 들린 풍경에서 유령들이 벌이는 협상이다. 자유가 귀신 들린 곳에서 귀신을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세련되게 협상하고 살아남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146

채집 또한 노동이 아니다. '일'조차도 아니다. 라오계 채집인 사이는 '일'이란 자신의 상사가 시키는 작업을 하면서 그에게 복종하는 것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반면에 송이버섯 채집은 '찾는 행위'다. 자신의 업무를 하는 것이 아니라 거금의 재산을 찾는 행위다. 채집인들이 새벽부터 일어나 해가 질 때까지 눈을 헤쳐가며 산에 남아서 열심히 일하기 때문에 좀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고 채집인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백인 캠핑장 소유주가 내게 말했을 때, 이러한 그의 시각에서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나는 어떤 채집인도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내가 만난 채집인 중 어느 누구도 송이버섯으로 얻은 돈을 자신의 노동에 대한 대가로 생각하지 않았다. 나이 통이 가끔 맡는 손주 돌보기조차도 버섯 채집보다 일에 더 가까운 행위였다. 


156

기다림 또한 자유를 수행하는 것의 일부다. 다시 말해 예의범절, 노동, 재산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면서 마음에 드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갈 수 있는 자유, 채집인은 자신의 버섯을 어느 구매인에게나 가져갈 수 있고 구매인은 그 버섯을 어느 현장 중개인에게나 가져갈 수 있는 자유, 다른 구매인을 폐업하게 만들 수 있는 자유, 감자기 떼돈을 벌거나 모든 것을 잃을 자유 말이다. 


166

백인 참전용사가 자유는 인종적으로 완전히 분리된 풍경 속에 있다고 상상했다면, 캄보디아인은 전쟁이 어떤 사람을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편에서 저편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168

그날 오후 나는 혼자서 버섯을 줍고 있었는데 근처에서 갑자기 총소리가 들렸다. 너무 무서웠다. 어느 방향으로 달려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나중에 행에게 물어보았다. '달리지 마!' 그는 말했다. '달려간다는 건 두려워한다는 걸 보여주는 거지. 나라면 절대 달리지 않을 거야. 그게 내가 지도자인 이유야."


204

글로벌 공급사슬은 진보에 대한 기대를 없애버렸다. 선두 기업이 글로벌 공급사슬을 이용하게 되면서 노동력 통제에 전념하는 전략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노동을 표준화하기 위해서는 교육과 정규직 일자리가 필수적이었고, 따라서 이윤과 진보는 연결되어 있었다. 이와 반대로 선두 기업은 이제 공급사슬을 통해 많은 배열 장치를 거쳐 조립된 상품을 생산함으로써 이윤 창출이 가능하다. 일자리, 교육, 복리를 약속하고 실천하는 것이 더는 겉치레로서도 필요하지 않다. 


206

거시사를 서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꾸준하게 등장하는, 대수롭지 않아 보일 수 있는 구체적인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225

소외 문제로 돌아갈 시간이다. 상품화에 대한 자본주의적 논리에 따르면 사물은 교환 대상이 되기 위해 그것들이 속했던 삶의 세계와 분리된다. 이 과정을 나는 '소외'라 부르는데, 인간뿐 아니라 비인간의 잠재적 속성을 설명하는 용어로 사용한다. 채집인과 버섯의 관계에 소외가 개입되지 않는다는 점은 오리건주의 송이버섯 채집에서 관찰할 수 있는 놀라운 사실이다. 채집인은 버섯을 균질체에서 떼어낸다. 그러나 채집된 버섯은 팔릴 때조차 돈을 자본으로 전환시킬 준비를 마친 소외된 상품이 되지 않고 사냥의 트로피가 된다. 채집인은 자부심에 가득 차서 자신이 딴 버섯을 자랑한다. 버섯 찾기의 기쁨과 위험에 대해 쉴 새 없이 이야기한다. 마치 채집인이 버섯을 먹은 듯이 버섯은 채집인의 일부가 된다. 이는 어떻게든 그 트로피가 상품으로 전환 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뜻한다. 만약 버섯이 자유의 트로피로서 채집되고 그 과정에서 채집인의 일부가 된다면, 이것은 어떻게 자본주의 상품이 되는가?


227

생산자는 누군지 모르는 상태에서 상품이 팔리면서 공장 노동자가 자신이 만드는 사물로부터 소외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물도 그것을 만들고 교환하는 사람에게서 소외된다. 사물은 홀로 존재하는 물건이 되어 이용되고 교환된다. 그 사물은 그것을 생산하고 배치한 사람들의 관계망과 어떤 관련도 맺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271

나는 교란을 시작점, 즉 행동을 위한 첫 단추로 삼는다. 교란은 변형적인 마주침을 위한 가능성을 재배치한다. 풍경의 패치들은 교란에서 등장한다. 그리하여 불안정성은 인간을 넘어서는 사회성에서 일어난다.


283

인간에 의해 교란된 풍경은 인문학자와 동식물 연구가가 알아차리기를 실행할 수 있는 이상적인 공간이다. 우리는 인간이 그 공간에서 만들어낸 역사, 그리고 비인간 참여자의 역사를 알 필요가 있다. 


285

교란은 하나의 시작으로, 항상 도중에 일어난다. 즉, 교란이라는 용어에는 교란 이전에는 조화로운 상태였다는 전제가 없다. 교란은 다른 교란을 뒤따른다. 따라서 모든 풍경은 교란되어 있고, 교란은 일상적으로 이루어진다.


294

나무는 근대적 자원이 되었고, 자원을 관리하는 방식이란 그것의 자율적인 역사적 활동을 멈추게 하는 것이다. 나무가 역사를 만드는 한, 그것들은 산업적인 통치를 위협한다. 숲을 청소하는 일은 그 역사를 멈추게 하는 작업의 일부다. 그런데 언제부터 나무가 역사를 만들었는가?


297

소나무는 버섯과의 마주침을 통해서만 번창한다. 근대 산림관리는 소나무 역사의 한순간을 포착잡을 수 있지만 마주침에 기반한 시간의 불확정성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 


301

송이버섯은 바위와 모래를 분해하는 강한 산을 분비하고 소나무와 곰팡이의 상호 성장을 돕는 영양분을 발산한다. 송이버섯과 소나무가 함께 성장하는 험한 풍경에서는 다른 곰팡이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393

미국 태평양 연안 북서부의 한 연구자는 일본의 연구들이 '서술적'이기 때문에 별로 유용하지 않다고 말했다. '서술적'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그것이 왜 잘못된 것인지 알려면 미국 산림관리 연구의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특정성에 집중해야 한다. 서술적이라는 말은 장소 특정적이다는 의미인데, 즉 정확히 규정될 수 없는 마주침, 그렇기 때문에 확장될 수 없는 방식에 맞춰져 있다는 뜻이다. 


403

숲에서도, 과학에서도 포자는 우리의 상상력이 또 다른 범세계적인 위상 구조에 이르게 한다. 포자는 미지의 목적지를 향해 날아가고, 유형을 교차해 교배하며, 최소한 가끔씩 새로운 유기체를 낳는다. 새로운 종류의 시작이다. 포자는 분명하게 정의하기 힘들다. 그것이 포자의 품격이다. 풍경을 생각할 때 포자는 우리를 개체군 내부에 존재하는 이질성으로 안내한다.


412

문화인류학자들이 자신의 연구 단위를 계속 사용하려면 그 연구 단위를 끊임없이 의심해야만 하는 틀로 다루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스즈키 박사는 생물종을 다루고 있었다.


414

연구자는 오직 서로의 관계 속에서만 이름 지을 수 있는 집단들을 갖기 시작합니다. 


420

움직이는 것은 생태계다. 인간이 매우 많은 다른 생물종을 의도하지 않고 이동시킨 것이 놀라운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새로운 생태계를 창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물을 바꾸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다. 


439

우리는 우리보다 먼저 다녀간 수확꾼들의 흔적을 따라가며 그들이 남긴 것들을 어루만진다. 나무에 닻을 내리고 있는 송이버섯은 같은 장소에 다시 나타나기 때문에 이 방법은 놀랍게도 생산적인 전략이다. 우리는 우리보다 먼저 다녀갔지만 자신들의 활동선 흔적을 우리에게 남겨놓은 보이지 않는 채집인과 우리 자신을 나란히 맞춘다. 


448

브라운은 번역이라는 실천을 통해 채집인들이 화합하게 만들었다. 번역이라는 실천은 너무 쉬운 해결책으로 안주하는 것을 저지하면서, 차이의 해소 대신에 창조적인 듣기를 장려하며 차이를 용인한다. 듣기는 브라운의 정치 활동의 시작점이었다. 그의 활동은 언어가 아니라 도시와 시골 간의 간극으로 시작됐다. 


466

상호 배움도 중요한 목표다. 집단들은 실수하는 것과 그 실수에서 배우는 것에 대해 솔직하다. 한 봉사자 집단이 이룬 사토야마 작업에 대한 보고서에는 자신들의 노력으로 빚어진 모든 문제점과 실수가 포함되어 있다. 


469

때때로 공동의 얽힘은 인간의 계획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세운 계획과 상관없이 등장한다. 달성하기 힘든 공동의 삶의 순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계획의 실패가 아니라 오히려 그 계획의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다. 사유재산 만들기의 경우가 그렇다. 자산을 모을 때 우리는 공유지를 무시하는데, 공유지가 집합 자산의 구석구석에 퍼져 있을 때조차도 그러하다. 그러나 알아차리지 못한 것들 또한 잠재적인 협력자들을 위한 장소가 될 수 있다.


488

우리는 시각을 너무 많이 믿는다. 나는 땅을 쳐다보고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치맨이 손을 더듬어 찾아낸 것처럼, 그곳에는 무언가가 있었다. 진보 없이도 헤쳐 나가려면 우리의 손을 이용해 충분히 느껴야 한다. 


503

끝맺기를 거부하는 이 책은 어떤 종류의 책인가? 송이버섯 숲처럼, 각각의 우연한 모임은 예상하지 못한 풍부함으로 다른 모임들을 지원한다. 학문의 상업화를 반대하며 한계를 넘어서지 않았다면 이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512

협력을 낳는 오염과 불확정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514

다종의 세계 만들기를 인류 구원이라는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바라본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인류가 지향해온 인본주의적 정치경졔를 버리지 못한 채 다종의 세계 만들기를 인간만을 위해 이용하고자 할 것이다. 화성 탐사처럼, 지구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현재의 정치, 경제, 사회 체제를 바꾸지 않은 채 우주를 식민화해 지구 환경의 대안으로 삼으려는 현재 군사과학의 양상과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다.


529

번역은 노동이 아니다. 번역은 동남아시아 채집인들이 떠나온 고향을 느끼기 위해, 임금노동에서 맛볼 수 없는 자유를 누리기 위해 숲에서 버섯을 찾아다니듯이, 노동을 거부하고 글에서 의미를 찾는 일이다. 번역은 노동의 효율성, 소위 '가성비' 추구를 내팽개칠 때에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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