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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용 Jan 24. 2024

에디토리얼 씽킹 _ 최혜진

모든 일에는 배움과 경험이 녹아있어서, 자신의 일을 글로 정의하는 일은 그 직업인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20년 경력 에디터인 저자는 20주년 기념으로 자신의 일을 언어화했는데, 이런 작업은 기록이나 회고가 아닌 도약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에디터의 일과 디자이너의 일은 닮은 구석이 많다. 일의 목적을 구체적으로 상상해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내용을 정리하며 우선순위를 정하거나 관계를 고민해야 하고, 최종적으로 어떤 식으로 의도한 바를 표현할지 결정해야 하는 일이다. 

사실 이 책의 구매 결심은 출판사의 영향이 컸다. 교보문고를 다니며 종종 눈에 띄어도 살 생각은 없었는데, 터틀넥프레스의 책이라는 것을 알고 구매했다. (그렇다고 다른 책들도 다 구매한 것은 아니지만) 터틀넥프레스의 다음 책은 또 무엇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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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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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은 결국 의미의 밀도를 높여가는 과정이다. 데이터를 이야기로 바꾸고, 사실에서 통찰을 끌어내는 행위이다. 에디토리얼 씽킹에는 우리를 더 높은 차원의 의미로 데려가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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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각이 조금 달랐다. 잡지가 망해가는 게 아니고, 세상이 온통 잡지화하는 걸로 보였기 때문이다. 잡지에서 보던 편집 문법 - 에디터 추천 목록, 큐레이션, 단계별 하우투 정보, 리얼 후기 등 - 이 디지털 서비스 전반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예감했다. 설사 종이 잡지가 사라진다 해도 정보와 맥락을 다루는 에디터라는 직업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에디터가 하는 일은 다이내믹해지고 넓어질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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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과 주목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정보를 비교하고 검증하는 일도 벅차다. 자신의 취향, 호기심, 판단력을 알고리즘에 외주 주거나 타인에 대한 모방으로 때우는 일이 빈번해진 이유다. 모든 것이 이미 이렇게 많은 세상이라면 그 안에서 어떻게 자기다움이나 새로운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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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비디오로 기록한 무편집 영상을 영화라고 부르지 않듯 살아온 모든 순간을 누락 없이 축적한 데이터가 있다고 해도 그것이 삶이 될 순 없다. 중요한 건 자기 서사고, 의미 부여다. 테드 창이 '숨'에서 쓴 아래 문장처럼.

"기억이란 우리가 살아온 모든 순간을 공평하게 축적해놓은 결과가 아니라, 우리가 애써 선별한 순간들을 조합해 만들어낸 서사이다. 설령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사건들을 경험하더라도 우리가 똑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않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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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년간 에디터로 일하며 얻은 가장 소중한 삶의 자산을 딱 하나만 꼽으라면 '의미의 최종 편집권이 나에게 있다'는 감각이다. 삶은 언제나 예측 불가하고, 뒤죽박죽 난장판 같은 사건과 사실이 끊임없이 들이닥친다. 그것을 소음이라고 생각하면서 괴로워하는 선택지도 있고, 의미로 승화해서 다른 현실을 사는 선택지도 있다.

25

책은 보통 단일 저자의 목소리를 선형적으로 따라가지만, 잡지는 여러 화자가 갖가지 방향으로 등장하며 독자의 주의를 빼앗는다. 지면에 올라가는 재료의 다양성 측면에서도 차이가 크다. 단행본과 달리 잡지에서는 서로 다른 크기의 텍스트 덩어리와 이미지, 다채롭게 변하는 레이아웃이 시선 경쟁을 한다. 독자는 덩어리 사이를 자유롭게 이동한다. 눈이 가는 대로 띄엄띄엄 훑다가 관심이 가는 내용을 발견하면 그제야 '읽기 모드'를 활성화한다. 단행본은 읽기에, 잡지는 훑기에 어울린다. 텍스트와 이미지의 융합 가능성을 최전선에서 실험해온 잡지 지면은 이미 오래전부터 멀티미디어, 터치 버튼, 하이퍼링크가 주의력 뺏기 경쟁을 하는 디지털 환경과 흡사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34

2021년 겨울, '아장스망'이라는 에디토리얼 컨설턴시를 만들었다. 아장스망 agencement 은 프랑스어로 '배치, 배열, 조합'이란 뜻으로, 철학자 질 들뢰즈가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배치'라는 의미로 정립한 철학 용어이기도 하다. 처음 이 개념을 알게 되었을 때, 동공이 커지면서 초점이 또렷해지는 느낌이었다. 사람의 개성 부터 사물의 속성까지, 주체성이 원래 내재된 것이 아니라 배치의 결과로 드러나는 것이라니! 배치를 바꾸면 존재가 바뀌다니! 시대의 지성이 부드럽게 등을 밀어주며 응원하는 기분을 느꼈다.

36

크게는 브랜드명과 슬로건을 짓고 브랜드 아키텍쳐를 정리하는 일부터 작게는 상사나 고객사에 보낼 보고서의 스토리라인을 짜는 일까지, 의미를 다룬다는 것은 타인과의 소통을 전제로 하는 활동이다. 누가 계산해도 동일한 답이 나와야 하는 과학 언어와는 성격이 다르다. 상대에 따라 구사하는 전략이 달라진다. 맞춤형으로 재료의 가능성을 두루 살피면서 다듬고 풍미를 살리는 조리 과정을 거쳐 플레이팅까지 예쁘게 해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54

의미로 거듭날 가능성을 품고 있는 재료를 알아보는 힘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야, 저런 게 예술이면 나도 하겠다"라고 비아냥거려서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사소한 재료에 숨어 있던 메시지를 어떻게 발견했을까? 어떤 맥락으로 의미를 빚어갔을까?"라고 질문하는 편이 에디터적 사고력을 키우는 데에 보탬이 된다. 사물, 뉴스, 정보, 데이터가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어떤 관점의 이야기는 여전히 드물고, 여전히 귀하다. 그런 이야기를 품은 재료를 발견하는 눈을 갖고 싶다면 훈련해야 한다. 

65

질문은 특정 부분에 주의를 기울이게 만들고, 기억 창고에서 관련된 정보를 끌어모으는 역할을 한다. 질문이 자석이라면 정보는 철가루다. 의미를 가시화하고 언어로 붙잡아두려면 일단 질문부터 해야 한다. 

67

철학자 에릭 호퍼는 '길 위의 철학자'에서 이렇게 썼다. "언어는 질문하기 위해 창안되었다. 대답은 투덜대거나 제스처로 할 수 있지만 질문은 반드시 말로 해야 한다. 사람이 사람다운 것은 첫 질문을 던졌을 때부터였다. 사회적 정체는 답이 없어서가 아니라 질문을 할 충동이 없는 데에서 비롯된다." 나는 이 아름다운 문장을 내 식으로 변형해 마음에 품고 있다. "에디터가 에디터다운 것은 질문을 던졌을 때부터다. 에디터의 커리어적 정체는 답이 없어서가 아니라 질문할 충동이 없는 데에서 비롯된다."

72

손 안에 든 재료를 특정 기준을 세워 정리하고, 그로부터 도출할 수 있는 의미나 시사점을 찾아내기 위해 습관처럼 질문한다. 

"이걸 뭐랑 묶지?"

"묶어서 어떤 이름을 붙이지?"

이 두 문장은 설득력 있는 목차나 보고서 개요를 짤 때도 유용하다. 먼저 짚고 넘어갈 점은 설득력이 감정이입과 상상력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에디터라면 콘텐츠를 볼 상대방-클라이언트, 상사, 독자-입장에서 궁금한 점이 무엇일지 상상할 줄 알아야 한다.  

92

에디팅은 무엇과 무엇을 어떻게 붙일지 선택하는 일, 다시 말해 재료들 사이에 존재하는 미적, 심리적, 논리적 거리와 간격을 다루는 일이다. 글만 다루는 편집자도, 이미지만 다루는 편집자도, 글과 이미지를 동시에 다루는 편집자도 정보 사이의 거리를 다룬다는 측면에서는 동일한 행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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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와 무난하게 소통하기 위해 정리하는 편집도 있고, 전에 없던 새로운 의미나 심상을 만들어내기 위한 편집도 있다. 무엇이 설득력이 낮다 높다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 중요한 건 개별 프로젝트의 목적과 수용자의 성향이다. 자신이 수행하는 선택과 배치가 어떤 결과를 만들어냈으면 하는지 정확한 목적지를 찍고, 상황에 맞춰 정보 사이의 거리를 조정하는 것이다. 익숙함과 명확함, 낯섦과 모호함이라는 두 원소를 손에 쥐고 목적에 맞춰 적정 배합 비율을 찾아내는 일. 나는 그것이 에디팅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93

여러 차례 말하지만, 나는 설득력이 수용자에 대한 상상력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이걸 본 그의 입장에서 메시지에 동의가 될까? 이해가 될까? 더 궁금한 점은 없을까? 신선하게 느껴질까?' 자문하면서 재료와 재료 사이의 거리를 조절한다. 

101

글을 다룰 때든 이미지를 다룰 때든 정보 사이의 간격이 너무 좁으면 신선한 재미가 없고, 너무 멀면 소통이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자신이 사용할 재료 사이의 거리를 감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

119

이미 존재하는 고전 예술 작품에서 '제스처'에 주목하겠다고 결정했고, 이 결정이 '회화는 당대의 몸짓을 기록하는 장'이라는 작가만의 정의로 이어졌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의 몸짓은? 몸을 잔뜩 웅크리고 스마트폰 액정과 노트북, TV 화면 등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인물을 그려야 하는 이유가 풍성해지고 설득력이 생겼다. 레퍼런스였던 고전 예술 작품 속 몸짓을 곧장 차용한 게 아니라 화가들이 제스처를 그린 이유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다시 말해 겉으로 드러난 스타일이나 현상만 취한 것이 아니라 이면에 흐르는 의도, 구조, 상징, 패턴을 읽음으로써 레퍼런스를 자기화했다고 볼 수 있다. 

121

레퍼런스가 하나일 때는 표절이 되기 쉽지만, 여러 레퍼런스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나 아이디어를 찾으면 고유한 탐색이 된다. 이에 대해선 만화가 게리 팬터가 아래와 같이 간단명료하게 피력한 바 있다.

"영향을 받은 사람이 딱 한 사람뿐이라면 세상은 당신을 제2의 누구누구라고 칭할 것이다. 하지만 수백 명을 베낀다면 세상은 당신을 오리지널로 떠받들 것이다!"

-오스틴 클레온, '훔쳐라, 아티스트처럼' 에서 재인용

단, 레퍼런스가 많이 필요하다는 핑계로 생각하기를 지연시켜선 안 된다. 인터넷 세상에서 시간을 보내며 자료의 양을 늘린다고 아이디어가 만들어지는 건 아니니까. 생각보다 레퍼런스를 찾으면서 '내가 뭔가 하고 있다'는 기분에 속는 사람이 많다. 정보를 자기화하려면 외부 자극을 차단하고 홀로 소화하는(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127

'야마'는 잡지계에서 쓰는 일본식 은어로 '뾰족한 무언가'를 뜻한다. 한때 잡지계를 휩쓸었던 '엣지'와 비슷한 뉘앙스다. 콘티에 야마가 없다는 편집장의 피드백은 콘텐츠가 한 방향으로 정렬되지 않아 메시지가 흩어진다는 뜻이고, 독자에게 각인될 만한 개성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글의 야마가 무엇이냐는 질문은 "글쓴이로서 네가 제일 하고 싶은 말이 뭐니?"란 되물음이다. 

134

책상 전문 브랜드 데스커의 브랜드 미디어 디퍼의 컨셉을 잡을 때는 "책상이란 무엇인가?", "한샘도 아니고, 일룸도 아닌 데스커의 미디어가 어떤 이야기를 건네야 자연스럽고 납득이 될까?"라는 질문을 거듭했다. 도대체 책상이란 뭘까, 가구 시장에서 데스커는 어떤 이미지인가, 무엇을 책상의 본질이라고 정의해야 데스커다울까.. 무엇 하나 답하기 쉽지 않았지만, 설득력있는 컨셉을 손에 쥐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다. 유레카 모먼트는 책상을 '채워지길 기다리는 네모난 빈 공간'으로 정의한 순간 찾아왔다. 머릿속에서 개념화 과정은 다음처럼 진행됐다.  

    침대나 식탁과 다른 책상의 행위유도성=쓴다, 그린다, 만든다, 계획한다, 배운다, 듣는다, 읽는다, 발견한다, 구체화한다, 도모한다, 생각한다, 실현한다..  


    책상=가능성으로 존재하는 생각이나 잠재력을 현실로 바꾸는 장소=채워지길 기다리는 네모난 빈 공간  


    데스커=고객이 자기 고유의 콘텐츠를 채워나갈 수 있도록 공간, 여백, 기회의 장을 선물하는 브랜드  


    미디어 컨셉=이미 완결된 타인의 인터뷰를 읽는 미디어가 아니라 독자가 스스로 답을 채울 수 있도록 툴킷형 콘텐츠를 제공하는 미디어  


    디자인 컨셉=빈칸  

143

나는 핵심을 알아보고 구조를 조직하는 능력이 결국 타인에 대한 상상력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내 이야길 들은 상대방 입장에서 중요하다고 느낄 만한 재료가 무엇인지, 신선하다고 느낄 만한 내용이 무엇인지 상상할 줄 모른다면 핵심을 골라내기도 힘들 것이다. 

..

수용자에게 어떤 첫인상으로 다가갈지, 그들은 어느 순간에 어떤 마음으로 이 콘텐츠를 선택할지, 보고 난 뒤에 무엇이 마음에 남을지 상상한 만큼 콘텐츠에 힘이 생긴다. 이야기를 듣는 입장일 때도 마찬가지다. 표면에 드러나지 않더라도 상대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지 의도를 읽어내려 애쓰며 듣는 적극적 경청을 해야 핵심을 알아차릴 수 있다. 

145

어린 연차 때 바이라인은 자기표현의 일종이었다. '내가 이런 걸 했어요', '저에겐 이런 능력이 있답니다' 하고 알리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에디터 업의 아름다움은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로 건너가보는 순간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제 나에게 잡지 바이라인은 '제 이름을 걸고 당신 생각을 참 많이 했답니다'라고 고백하는 공간으로 보인다. 

153

해석 가능성이 수천수만 가지일지언정 '나는 이렇게 바라보겠다'는 입장 정리가 필요하다. 에디터적 사고력은 정보를 해석하는 자로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끊임없이 위치와 관점을 의식하는 과정에서 길러진다.

158

두 번째 원칙은 자신의 아이디어나 타인의 창작물을 검토할 때, 무의식적으로 전제하는 준거기준이 무엇인지 살피는 습관을 갖는 것이다. 아이디어는 거의 언제나 어떤 믿음을 딛고 서 있기 때문이다. 앞서 '요즘 뜨는 성수동의 멋진 카페 10곳'을 소개하겠다고 다짐한 에디터 A씨를 기억하는가? 그가 입 밖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기획의 근간엔 '카페는 새로운 문화 트렌드를 발빠르게 느낄 수 있는 공간'이라는 믿음이 존재한다. '싱글 오리진 vs. 블렌딩, 성수동 카페 지형도'를 만들려는 에디터 B씨가 딛고 있는 전제는 뭘까? '카페 경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결국 원두 맛'이라는 믿음 아닐까?

163

가장 중요한 세 번째 원칙이 있다. 스스로 개념을 정의하는 시간을 갖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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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하고 논리적이고 매끈한 정의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다. 사소하고 울퉁불퉁하고 구멍이 숭숭났다 해도 상관없다. 그건 누구의 것과도 같지 않은 당신만의 것이니까.

165

세상을 보는 당신의 두 눈, 정보를 해석하고 세상과 호응하는 당신의 방식은 귀하고 소중하다. 뛰어나서가 아니다. 화려해서가 아니다. 유일해서다. 당신이 이 세상 누구와도 같지 않은 사람이어서 그렇다. 그러니 부디 질문하기를, 입장을 갖기를, 드러내기를!

169

"이런 표피적 인상 말고 너의 해석을 쓰렴." 그때 본 빨간 글씨를 지금껏 마음에 품고 있다. 해석은 느낌과 인상을 이해하는 작업이다. '멋지다'가 인상이라면 '이런 이유로 내가 멋지다고 느꼈다'는 해석이다. 선배는 느낌과 인상을 땔감 삼아 지성을 발휘하라고 요청하고 있었다. 

181

창작을 하려면 어느 순간에는 주장으로 도약해야 한다. 어떤 정보를 취하고 어떤 정보를 버릴지 선택하고, 그 결정을 바깥으로 드러내야 한다. 자신이 전방위에서 수집한 정보가 모두 동일하게 의미 있다고 여긴다면 무엇도 주장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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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편집, 창작은 오류를 없애는 작업이 아니다.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있음에도 한쪽 손을 들어주는 일, 입장을 밝히는 일, 오류를 품고 프레임을 치는 일이다. 프레임 바깥의 다른 가능성, 다른 해석, 다른 견해가 무의미하다는 뜻이 아니다. '저는 여기에서부터 여기까지에 대해 이렇게 말하겠습니다'하고 자신의 주관성을 드러내는 작업이 글쓰기이고, 편집이고, 창작이다. 오류를 지적받을까 두렵다면 자신의 견해가 최대한 내적 완결성과 설득력을 가지도록 엉덩이 딱 붙이고 일하면 된다. 

207

나는 글과 이미지가 만날 때 생겨나는 긴장과 확장에 가장 큰 흥미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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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에게는 시각 재료가 독자에게서 어떤 반응을 이끌어낼지 상상하고 계획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220

나는 에디터가 원고 편집이나 윤문하는 사람, 혹은 마케팅 머터리얼 제작 말단의 업무를 대행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의미를 가시화하는 전문가', '문자 언어로 인식의 틀을 제공하는 전문가'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생산이나 제작이 아니라 의미와 해석으로 싸우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한다. 엇비슷한 상품과 서비스가 넘쳐날 뿐 아니라 필요한 것 자체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프로덕트 싸움이 아니라 인식 싸움, 의미 부여 싸움으로 판이 바뀌면 이미 존재하는 재료를 새로운 관점으로 관찰하고, 의미를 발견해서, 설득력 있는 산출물로 제작할 수 있는 인재가 아마도 점점 더 귀해질 것이다. 에디터에 대한 인식이 중구난방인 현실에서 이 책이 에디터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설명하는 데에 조금이라도 기여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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