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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용 Jan 29. 2024

그렇게 쓰면 아무도 안 읽습니다 _ 전주경

직업인이 된다는 건 내가 하는 주장에 근거를 잘 대야 하는 일이다. 요즘은 디자인도 각자의 취향이 강해서 상대를 설득하기 쉽지 않은데, 언어라면. 20-30년간 써와서 각자의 주관이 강한 언어라면. 더 어려운 게 아닐까 싶다. 

이 책은 UX 라이팅은 이렇게 쓰라는 주장을 담고 있는데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들이 참 좋았다. 설득 여부를 떠나 UX 라이팅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라면 이 정도의 근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처럼. 군더더기 없이 간단하고 명료하게 주장하는 언어와 그 근거를 정리해주고 있다. 평소 내가 불편하게 느꼈던 UI/UX 관련 고민도 다루었는데, UX가 단순히 사용자를 원하는 대로 조정하는 것이 아닌 사용자에게 더 좋은 경험을 선사하고 더 좋은 방향으로 가게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저자의 고민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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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


6

브랜드의 말과 목소리는 어떤 부분에 해당할까. 이를 단지 카피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광의적 측면에서 그것은 그 브랜드가 제공하는 모든 서비스에 적용된 '언어'에서 비롯된다. 당신의 브랜드가 고객과 직접 만나는 제품이 아닌 온라인 혹은 앱 서비스라면 그것이 바로 'UX라이팅'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이는 브랜딩을 설계할 때 중요한 부분이며, 한편으로는 대부분의 브랜드 담당자가 놓치거나 어려워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18

나는 사용자에게 믿음을 주면서도, 서비스와 사용자 사이에 편안한 대화가 끈김없이 이어지게 하는 것이 곧 그 서비스의 성공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사용자가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의미 있는 UI 텍스트 작성의 핵심 원칙과 기술을 이 책에 모아 담았다. 


21

'Micor-'가 가진 미시적이고 단발적인 인상은 그 자체로서 UI 텍스트의 간결성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서비스의 시작에서 끝까지 쉼 없이 이어지는 긴 담화나 사용자와의 적극적인 대화로써의 UI 텍스트의 특성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한다. 

최근 들어 UX와 UX 라이팅에 대한 논의가 '재치 있는 단어로 이목 끌기' 또는 '현란한 언어로 사용자를 움직이기' 쪽으로 초점이 맞춰지는 것 같아 시니어 UX 라이터로서 약간은 걱정이 된다. 좁은 화면 위에서 짧은 순간에 강렬한 인상을 주어 사용자를 움직이는 것은 UX 라이티이하는 일의 아주 일부일 뿐이다. 실제로 UI 텍스트는 사용 경험의 경로를 진득하게 따라붙으면서 정보를 제공하는데, 그와 동시에 사용자를 격려하고, 안심시키고, 때로는 제한하기도 하며 사용자에게 뭔가를 제안하고 통보하기도 한다. 사용자의 손을 잡고 UI 플로우의 큰 물결로 그를 인도하는 셰르파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사용자에게 편안함, 행복, 안정감, 도전 의식, 긴장감, 안심 등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도 모두 UI 텍스트가 하는 일이다. 때문에 각 UI 텍스트의 길이는 마이크로할지언정 그 텍스트들이 수행하는 역할과 많은 텍스트들이 연이어져 만들어내는 의미 체계는 결코 마이크로하지 않다. 


30

작성자가 준비하는 내용을 독자가 순차적으로 쭉 따라 읽어주리라 예상할 수 있는 다른 텍스트에 비해, UI 텍스트는 사용자의 생각과 의사, 행동에 따라 비선형적으로 등장하는 텍스트, 즉 상대의 반응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상호작용을 위한 텍스트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40

개인적으로 앞서 지적한 UI 텍스트 배껴 쓰기 풍토 역시 UI 텍스트에 대한 잘못된 시각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UI 텍스트는 서비스의 성격과 철학을 그대로 반영하는 거울이다. 다른 메이저 서비스의 UX와 UI 플로우, 화면 구성과 사용자는 우리 서비스와 완전히 같을 수 없다. 설사 기술 개발이나 화면 구성이 유사할지언정 텍스트는, 아니 텍스트만은 같은면 안 되는 것 아닌가?


52

사용자의 언어 직관을 존중하는 자세를 견지하되, 모든 제안이나 지적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우리가 고민하고 조사해서 쓴 UI 텍스트의 근거가 여전히 유효하고 타당한지를 재확인하고 그에 의거하여 대응하거나 설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타당한 지적이라면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 텍스트를 수정하거나 가이드라인에 반영해야 한다. 


53

UX 라이터는 그냥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이유에서 이 텍스트가 작성되었는지를 객관적 근거와 언어 지식으로써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56

빠르게 업무를 처리할 때 뛰어난 기억력은 큰 도움이 된다. 앞에서 말했듯이 UI 텍스트는 비선형적인 텍스트이지만, 동시에 서비스에서 플로우와 맥락으로 다른 텍스트들과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는 사슬형 담화이기도 하다. UX 라이터는 한 개의 UI 텍스트가 지니고 있는 히스토리와 관계성을 기억하여,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그들 간의 일관성을 맞춰주고 기획자에게 과거 텍스트 변경 히스토리를 알려줄 수 있을 정도로 기억력이 좋아야 한다. 완벽한 가이드라인 암기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99

일반적으로 사용자는 화면에 진입한 후 바로 글자부터 읽지 않는다. 사용자는 먼저 화면 전체를 빠르게 훑어보고 전체적인 형태나 레이아웃만으로 화면의 용도와 의미를 직관적으로 이해해 보려고 하는데, 만약 그게 어렵다고 판단되면 그때부터 텍스트를 진지하게 읽어보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사용자가 텍스트를 읽기로 마음 먹은 그 순간 UI 텍스트는 몇 음절, 몇 어절 또는 한 문장으로 사용자를 빠르게 이해시켜야 한다. 이 때문에 UI 텍스트를 쓰는 사람은 텍스트의 형태를 가장 가독성이 좋은 방향으로 조정하려고 한다. 


100

일렬로 나열되는 메뉴명의 앞부분에 동일한 어휘가 배치된다면 메뉴 변별성이 매우 떨어지게 된다.


102

버튼은 사용자 보이스가 드러나는 영역이기 때문에, 버튼 텍스트의 염원, 기원, 다짐, 미래, 예정의 의미를 담은 명사형 진성어미 '-하기'를 쓰면, 마치 사용자가 스스로 해당 액션을 다짐하는 듯한 인상을 살짝 주게된다. 버튼 레이블을 속으로 되뇌는 사용자가 순간적으로 마치 스스로가 목표를 설정하고 발화한 것 같은 일종의 '셀프 미션'을 선언한 듯한 느낌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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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에 가장 안타까운 버튼 텍스트는 '서비스 탈퇴하기', '멤버쉽 해지하기' 같은 버튼이다. 이런 버튼은 마치 서비스를 꼭 떠나기로, 멤버쉽을 반드시 해지하기로 사용자 스스로가 다짐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습관적으로 '-하기'를 붙이는 '하기병'이 만들어낸 안쓰러운 버튼 레이블이라고 하겠다.


108

일관성이 맞지 않으면 제품을 신뢰할 수 없게 된다. 일관성은 낮은 텍스트가 계속 노출되면 어느 순간 사용자는 텍스트를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비판적으로 읽게 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틀린 것이 있나 없나, 어긋나는 것이 또 있나 없나를 무의식적으로 찾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용자에게 서비스를 이용하는 일은 노력을 들여 신경 써야 하는 일, 일종의 고역이 된다. 사용 경험이 편안하고 매끄러우려면 사용자의 긴장도를 낮춰줘야 하는데, 텍스트 불일치가 끊임없이 발견되면 사용자는 원치 않게 정보와 텍스트 이격에만 집중하게 된다.


109

일관성은 브랜드 이미지와도 깊은 관련성을 가진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예측 가능한 존재, 일관성 있는 존재를 선호한다. 어떤 대상을 접하든 '어, 여기 구멍이 있네? 허술하네? 앞뒤가 안 맞네?'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브랜드에 가졌던 긍정적인 이미지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110

놀랍게도 꽤 규모가 있는 서비스에서조차도 모든 서비스 화면에 어떤 텍스트들이 현재 노출되고 있는지 전체 목록도 갖고 있지 않은 경우가 꽤 많다. IT 회사에서 텍스트 데이터 관리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텍스트와 관련된 업무는 보통 개발이나 디자인 이슈보다 우선순위에서 밀리곤 한다. 진심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113

구문법

단어가 결합하여 구, 절, 문장의 구조나 기능을 구성하는 규칙 또는 원리를 말한다. 만약 한 화면에서 타이틀에는 명사구나 명사형을, 디스크립션에는 항상 문장형을 썼다면 서비스 속 모든 화면의 타이틀, 디스크립션에서도 동일한 구문법을 적용해야 한다. 한 화면에서 타이틀 위치에 '삭제할 내역이 무엇인가요?'와 같은 문장형을 쓰고 다른 화면에서는 '삭제할 기록 선택'과 같이 명사구를 쓰지 않도록 주의하자. 하나의 텍스트 시스템 안에서는 구문법에 대해서 통일된 접근 방식을 견지해야 한다. 


131

한국어는 화자, 청자, 객체 사이의 관계에 따라 높임 관계를 달리 표현하는 높임법을 가진 언어이다. 여러 한국어 높임법 중에 가장 발달된 것은 말의 끝 용언의 어미에 '-요, -ㅂ니다'를 붙이는 상대높임법이다. 쉽게 말하면 종결 어미의 높임을 보고 상대가 나를 자신과 동등하거나 낮은 위상으로 여겨 적당히 높이고 있는지, 반대로 아주 어렵게 생각해서 한껏 높여주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133

해요체와 하십시오체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차이를 보인다. 첫째, 높임의 정도이다. 해요체는 상대를 적당히 높이는 표현이기 때문에 UI 텍스트에서 해요체를 쓸 경우 사용자를 동등하거나 아주 약간 높은 대상인 것처럼 여기는 인상을 줄 수 있다. 반면 하십시오체를 쓰면 사용자를 서비스 자신보다 확실히 높이고 있다는 느낌을 주게 된다. 위계 관계에 있어서 사용자를 보다 어렵고 높은 대상으로 여기고 대우하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는 것이다. 

둘째, 격식성이나 공식성, 전문성의 정도이다. 해요체는 다분히 사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해요체로 작성된 문장을 읽으면 언뜻 서비스와 사용자가 감정적, 사적인 대화를 할 만한, 즉 사적으로 꽤나 가까운 사이인 듯한 인상을 받을 수 있다. 반면 하십시오체는 더 공식적이고 격식을 차려야 하는 상황에서 쓰는 말투, 즉 보다 이성적이고 진지한 어른의 문체이다. 이 문체를 쓰면 서비스와 사용자 사이에 사회적인 공적 관계가 정립된 듯한 느낌을 줄 수 있으며, 보통 전문 분야의 대화를 나눌 때에는 집중적으로 하십시오체를 쓰기 때문에 서비스의 전문적인 이미지를 강조할 때 유용하다. 


138

두 문체를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섞어 써야 한다. 앞서 말했듯 해요체는 두루높임 + 비격식성, 하십시오체는 아주높임 + 격식성을 띠고 있다. 높임의 수준과 격식성이 단단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음료의 농도를 조절하듯 두 문체를 적절하게 섞어서 사용해야 원하는 보이스를 구축할 수 었다. 일반적으로 한국인들은 사회적 관계에서 발화 시에 거의 100퍼센트 해요체와 하십시오체를 섞어서 쓰는데, 이는 두 가지 문체를 섞어서 쓰는 것이 가장 기계적이지 않고, 동일 문체의 중복을 피할 수 있으면서도 자연스러운 그야말로 '가장 한국인다운 말하기'이기 때문이다. 


142

보통 해요체는 온보딩이나 사용 가이드 등 서비스 초반부에 등장하는 텍스트에서 큰 활약을 하곤 한다. 앞서 말했듯 일반적으로 해요체는 사용자가 덜 집중해도 되는 사적인 상황에서 많이 쓰이므, 서비스 첫 화면에서 해요체를 쓸 경우 사용자에게 아직 그렇게까지 긴장하지 않아도 좋다는 시그널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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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사용자에게 뭔가 부탁하거나 요구하는 문장을 써야 할 경우에는 해요체를 쓰는 것을 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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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보조동사와 해요체가 결합한 '-주세요', '-보세요'는 해요체로만 쓰는 명령형 '하세요'보다 덜 권위적이고 부드럽게 청유하는 뉘앙스를 갖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요청 및 권유 문장에서 융하게 사용할 수 있다. 


162

공감 표현은 사용자 상황에 대한 깊은 이해, 진정성 있는 관심, 그리고 그것을 충실하게 드러낼 수 있는 언어적 표현 능력까지 모두 갖췄을 때에만 시도할 수 있는, 어떻게 보면 가장 난이도 높은 UX 라이팅 기법이다. 만약 그 모든 걸 커버할 수 있는 기량이나 자신이 없다면 쓰지 않는 것이 여러모로 안전하다.

그럼에도 공감 표현을 시도하고 싶다면 다른 리스크가 거의 없는 행복, 기쁨, 안정, 인정 등의 긍정적 감정과 관련된 메시지부터 작성해 보자. 사용자에게 보편적인 공감, 축하가 필요한 순간이 언제인지를 곰곰이 떠올려 보고, 그에 걸맞은 따뜻한 메시지부터 제공해 보길 권한다. 


181

레이블에 있어서는 '대표성'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만은 강조하고 싶다. 레이블을 쓸 때에는 해당 명칭이 다루고 있는 대상의 성격을 언어가 오롯이 담아내는지, 잘 포괄하는지를 먼저 체크해야 한다. 


182

보통 레이블링 시스템을 구축할 때 가장 기본이 되는 자료는 현재 서비스에 있는 모든 텍스트 목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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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 목록을 펼쳐놓고 새로 작성한 레이블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주변 레이블을 함께 살펴보며, 레이블 각자가 서로 뚜렷하게 구별되는지, 혹시 각 용어와 개념 간에 의미적, 표현적 중복이 있지는 않은지 확인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레이블은 혼자서만 의미를 발현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레이블과의 어울림, 비교 대조를 통해 그 뜻이 비로소 명확해지거나 의미가 한층 강화되는 측면이 있다. 단독 표기되었을 때는 조금 모호하게 느껴질지라도, 해당 레이블을 품고 있는 상위 레이블이 확실한 의미를 뿜어내고 있다면 하위 레이블은 그 의미의 날개 아래서 부담을 덜 수 있는 것이다. 


185

서비스를 처음 방문한 사용자가 단 몇 개의 레이블을 보고도 서비스의 전체적인 모습을 파악하고, 아직 보지 않은 메뉴의 역할까지 유추하려면 서비스 레이블이 매우 형태를 띠고 있어야 한다. 아주 쉽게 말하면 타이틀은 타이틀끼리, 메뉴명은 메뉴명끼리 서로 형태적, 의미적 유사성을 갖고 작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186

텍스트를 아이콘으로 대체하려고 할 때 기억해야 할 것은 모든 아이콘에는 필연적으로 모호함이 있기 때문에 가급적 아이콘 하단에 이름을 병기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콘은 상징성을 가진 이미지로서 기표에 기의가 깃들어 있는 형태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아이콘이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를 모든 사람이 정확하게 이해할 수는 없다. 


188

우리가 언제 팝업을 써야 하는지는 비교적 명확하다. 사용자에게 아주 중요한 정보를 전달해야 하거나, 사용자의 의사 결정을 반드시 받아야 할 때에만 팝업 컴포넌트를 써야 한다. 사실 이것이 팝업 텍스트 라이팅 원칙의 처음이자 끝이다. 이것만 지키면 좋은 팝업을 쓸 수 있음에도 다들 잘 지키지 않는 것 역시 바로 이 원칙이다. 일반적으로 한국 서비스에서 2버튼 팝업을 더 많이 쓰는 경향이 있는데, 많은 기획자들이 사용자에게 선택권을 주고 싶어 하고, 또 뭐든 확실하게 사용자 의사를 확인받고 싶어 하는 듯하다. 나는 굳이 묻지 않아도 될 것까지 묻는 이런 팝업을 '걱정 텍스트' 또는 '걱정 팝업'이라고 부른다. 조금 냉정하게 말하면 걱정 팝업은 선택의 책임을 사용자에게 전가하고 싶은 설계자의 마음이 드러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93

우리의 목표는 사용자의 시간과 노력을 최대한 아껴주는 것이다. '버튼을 먼저 읽고, 그래도 정보가 부족하면 타이틀까지 읽고, 의사 결정을 한다' 부지불식간에 이루어지는 3단계 과정이 물 흐르듯 연결될 수 있도록 팝업 타이틀에는 중요한 정보만 배치하자. 


194

허투루 써도 되는 UI 텍스트는 단 하나도 없다. 만약 정보를 찾는 사용자의 시선이 차례대로 버튼과 타이틀을 스쳤음에도, 그곳에서 그가 원하는 만큼의 정보를 얻지 못했을 때, 그때 비로소 본문의 존재가 빛을 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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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업은 등장했다가 금방 사라진다. 상황에 따라 재현이 어려울 수도 있어서 두 번 다시 사용자에게 읽히지 못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요소이다. 이 같은 팝업에 길고 장황한 이야기를 쓰는 건 적합하지 않다. 팝업 본문에는 사용자의 버튼 선택에 도움이 되는 포석과 같은 구체적인 정보를 담아야 한다. 


197

사용자가 오른쪽 버튼을 눌렀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의사를 철회하지 않고 가던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겠다고 결정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보통 오른쪽 버튼에는 주로 직전에 결정한 행위와 동일하거나 관련된 버튼 레이블을 적고, 진한 컬러로 시각적 무게를 더해준다. 


201

어떻게 하면 사용자의 명령과 의사를 잘 받들 수 있는지, 즉 어떤 방식으로 버튼 레이블을 작성하면 '서비스를 향한 사용자의 의사 표현'이라는 버튼의 근원적인 역할을 잘 수행하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202

버튼의 동사가 원미래가 아닌 근미래 상황을 지시해야 한다는 규칙도 중요하다. 바꿔 말하면 이 버튼을 누르면 이 행위가 바로 이루어지리라는 확신이 강하게 들도록, 바로 다음 화면을 추축할 수 있는 동사를 버튼 레이블로 써야 한다.


207

화면 상단의 넓은 부분이 서비스가 말하는 영역이고, 하단의 버튼 영역이 사용자가 말하는 영역이다. 즉 사용자의 보이스는 그가 조작하는 공간, 버튼 텍스트에서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버튼 레이블에는 건조한 서술성 명사(삭제, 저장, 이동)가 사용되기 때문에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용자 본인도 버튼을 자신의 목소리가 나타나는 영역이라고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

사용자 보이스를 부각시키는 대화체 버튼을 사용하면 어떤 효과가 있을까? 우선 사용자 본인이 직접 UI에서 발언하는 인상을 줘서 조금이나마 관여도를 높이게 된다. 본인의 목소리로 서비스와 상호작용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에, 사용자가 이 상황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확률이 높아진다. 


210

만약 버튼에 해요체를 쓰면 사용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둘 사이의 거리가 사적인 관계인 듯 재정의되고, 둘 사이의 권력관계도 평등하거나 오히려 사용자가 약간 아래쪽인 것처럼 인식된다. 보통 해요체로 말할 때는 상대방이 사적인 관계에서 나보다 연장자이거나 친근하지만 적당히 불편하고,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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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문제적이라고 생각하는 해요체 버튼의 사용 사례는 사용자의 이익과 관련된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버튼의 톤을 조정해서 뭔가를 얻어보려는 시도이다. 예를 들어 이용권 해지라는 상황에 몰렸을 때 사용자에게 갑자기 해요체를 쓰게 만드는 케이스에 대해, 조금은 심각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서비스 이용 내내 사용자와 서비스 존재의 위상은 평등했거나 사용자가 약간 높았는데, 갑자기 서비스 해지의 순간에 사용자가 서비스에게 존댓말을 하도록 해서 둘 간의 권력 위계가 조정되고 있다. 


212

그동안 우리는 UX 라이팅을 통해 서비스가 사용자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버튼 레이블을 어떻게 쓰면 오픈율이 올라간다, 어떤 말로 관심을 끌면 클릭률이 높아진다 하는 것들에 열중하며, 마치 UX 라이팅의 효용이 언어로써 사용자를 조종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기도 했다. '버튼에 급박한 부사 - 지금, 바로 - 를 써서 사용자를 재촉하라', '버튼에는 먼 훗날에 받게 될 잠재적인 이익을 당장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쓰라'와 같은 CTA 작성 기술을 당당하게 UX 라이팅 꿀팁으로 공유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정말 좋은 UX 라이팅이라고 할 수 있을까? UX 라이터로서 나는 그것에 대해 지표를 추구하는 글쓰기 기법이라고 할 수 있을지언정, 진심으로 사용자를 돕는 좋은 UX 라이팅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사용자의 의사를 내 마음대로 쥐고 흔드는 것이 우리가 하는 이 일의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용자 목소리를 흉내내서 버튼 텍스트를 쓸 때, 내가 사용자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가 또렷하게 드러난다. 사용자를 소중한 고객으로서 존중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저 말로 잘 구슬려서 뭔가를 뽑아먹을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는, 버튼 텍스트를 평소와 다르게 써보려고 할 때 작성자 스스로가 가장 먼저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좋은 UX 라이팅은 건강한 방식으로 사용자를 도우면서 서비스 스스로의 매력을 드러내는 일이다. 버튼 레이블을 쓰기 전 한 번쯤은 사용자의 좋은 결정을 돕기 위한 글쓰기란 무엇인지, 그것은 어떤 형식으로 표현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해 보았으면 한다.


222

사용자는 늘 본인이 수행한 액션에 대한 결과를 알고 싶어 하므로 우리는 정직하게 상황을 보고하고, 문제를 인정하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사용자와 서비스의 동반 여정이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다.


243

이제 사용자는 휴대폰과 앱과 웹 서비스 화면에서 텍스트를 스캐닝, 스킵하여 필요한 정보만 빠르게 습득하려고 한다. 이처럼 변화한 현시대의 사용자 정보 추구 행태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UX 라이터는 공공 글쓰기의 주역으로서 UI 텍스트를 읽는 사용자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내가 작성한 서비스 텍스트 하나가 우리 사용자의 언어 습관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247

결국 서비스 텍스트를 쓰는 사람들은 쉽지만 빈약한 언어와 어렵지만 풍부한 언어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아가는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사용자를 어떻게 잘 이해시킬 것인가를 고민하는 동시에, 사용자와 서비스가 함께 의미 있는 성장을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찾아내는 것이다.


252

'편하게 앱으로 보기'

'불편하지만 웹으로 볼게요'

웹페이지에 접속한 사용자에게 앱 설치를 유도하기 위해 자주 사용되는 버튼 텍스트이다. 사실 '웹으로 보기'가 편한지 안 편한지는 사용자만이 아는 것이다. 사용자는 웹이 편하니까 지금 웹으로 보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고객이 웹을 선택한 이유가 분명 있을 텐데도 서비스가 멋대로 앱은 편하고, 웹은 불편하다고 먼저 규정한 다음, '당신은 불편한 일을 즐겨 하는 이상한 사람이 되고 싶은가? 그냥 앱을 깔지?'라고 버튼으로써 말하는 이 컨펀 셰이밍이야말로, 가장 사용자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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