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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용 Aug 12. 2024

디스보다 피스 _ 박하재홍

박하재홍은 '래퍼'다. 힙합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 내 타임라인에 프리스타일 랩을 하며 등장하는 유일한 사람이다. 박하재홍은 자신을 '세상에 하나쯤 있어도 좋을 래퍼'라고 소개하는데, 확실히 쇼미더머니의 래퍼를 떠올린다면 그는 결이 다른 사람이다. (어쩌면 정말 세상에 하나뿐일지도 모르겠다.)

그의 랩을 오프라인으로 들은 경험은 2-3번 정도다. 어느 작은 강연장에서 혹은 집회의 특별무대에서 그의 랩을 들었고 많이 놀랐다. 내가 경험했던 무수한 강연과 집회 무대와는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메시지를 전달하고픈 스피커라면 랩부터 연습하라고 권하고 싶을 정도로 그의 무대는 매력 있었다. 

요즘 그는 대중음악과 인문학을 주제로 청소년 대상 강연을 한다. 청소년들에게 추천 음악을 받고, 음악과 랩으로 이야기를 나눈다. 책의 부제처럼 세대를 뛰어넘어 대중음악으로 소통하는 것이다. 같은 세대여도 소통이 안되는 시대에 참 어려운 일을 즐기며 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 좋았던 문장들을 옮겨 적곤 하는 데 이 책은 문장 발췌보다는 음악을 찾아 듣느라 바빴다. 그가 청소년에게 추천받았던 음악과 개인적으로 알고 있던 음악들 그리고 그 음악에서 뻗어 나오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읽고 있자니 안 들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찾아 들은 음악 몇 곡을 아래 공유한다. 그냥 듣기보다는 책을 통해 각 음악에 대한 맥락을 이해하고 들어야 좋을 수 있다. 이 외에도 여러 음악들이 있는데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책에 QR 코드로 공유하고 있으니 책을 읽으며 마음에 드는 노래를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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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개인적으로는 청소년들과 호흡하며 성장한 나의 기록물이고, 독자들에게는 대중음악으로 소통하는 방법을 익히는 지침서가 될 것이다. 특히 청소년의 추천곡이 바탕이 된 만큼, 학생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교사나 부모에게 대화의 길잡이 역할을 해줄 것이다.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호흡하는 창구로 대중음악만 한 게 없다. 

서로 도움을 주는 음악을 발견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밤거리에는 술 마시는 노래방 대신 잔잔한 별처럼 반짝이는 장소가 하나 둘 늘어나지 않을까? 나는 그런 '문화'에 일조하고 싶다. 

내일도 나는 학생들을 만나면 내가 쓴 짧은 랩 구절을 또박또박 읊어주고 부지런히 추천 음악을 받아볼 것이다 .

우린 서로 다른 사연들을 지녔고

우린 서로 다른 노래들을 골랐어

우린 서로 닮은 사연들을 지녔고

우린 서로 닮은 노래들을 골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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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많은 청소년들이 남들 앞에서 노래해 보고 싶어 한다. 자신이 느끼는 내면의 진짜 정체성을 다른 이들에게 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기회를 얻기 어렵다. 가창력에 자신 있는 사람이 아닌 이상 선뜻 용기를 내기도 껄끄럽고, 잘못했다간 망신만 당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오픈 마이크'라는 환대의 무대 방식을 수업에 접목했다. 오픈 마이크 무대에선 실력과 상관없이 신청자 모두에게 10분 정도의 시간이 주어지고, 관객은 무대에 선 사람이 자신의 감흥을 잘 전달할 수 있도록 귀를 기울인다. 무명의 공연자와 관객이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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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음악이 더 좋은 음악인지 판단하는 기준은 개인마다 다르지만, 서로 다른 시공간을 사는 이들에게 공통된 승화 경험을 선사하는 음악이 꽤 있다는 건 분명하다. 당장은 인기 순위에 이목이 쏠리는 대중음악이지만 세대와 시대를 폭넓게 끌어안는 곡들이 곳곳에 보물처럼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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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대상 강연을 하면서 얻은 지혜가 있다. 10대들이 마음속에 어떤 음악을 품고 있는지 알아내려면 질문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다짜고짜 '무슨 노래 좋아해?'라고 묻기보다는 두고두고 들을 만한 음악을 추천해 달라고 하거나, 혼자 듣기 아까운 음악을 공유하자고 얘기하는 편이 낫다. 

이때 '노래'라는 표현 대신 '음악'이라고 해야 한다. 이 점이 중요하다. 노래라는 단어는 아무래도 노래하는 가수부터 떠올리게 할 소지가 크다. 가수의 외모나 패션 그리고 무대 연출에 대한 이미지까지 몽땅 끌어오기 때문에 음악이 가려진다. 무엇보다 음악 자체를 중시하는 질문을 던질 때 그들 안에 내재한 예술적 감각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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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나는 랩이든 춤이든 상업적인 오디션의 입김에 별 영향을 받지 않고 내 방식대로 즐겨왔다는 안도감이 든다. 힘합이라는 언더그라운드 문화 덕분이었다. 허름한 지하실 공연장에서 열창하는 래퍼와 디제이, 공원 한쪽에서 기술을 연마하는 댄서들의 열정은 그야말로 삶에 대한 찬사였다. 힙합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만큼은 무한 경쟁 사회라는 커다란 오디션 현장에서 탈출할 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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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장에서는 나는 '세상에 하나쯤 있어도 좋을 래퍼'라고 나를 소개한다. 그렇게 소개하는 이유는 힙합이란 문화의 넉넉한 품성을 알리고 싶어서다. 힙합은 평범한 나에게 래퍼라는 호칭을 허락했고, 삶 속에서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순간을 아낌없이 선물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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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한 편의 '영화' 같잖아

그래서 난 항상 '배우'는 자세

주변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잘 찾은 직업인으로 보이는지 부러워한다. 종종 청소년 진로 교육을 맡아달라는 요청이 들어올 때도 있다. 한번은 중학교에서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방법'이란 제목으로 진로 강연을 부탁해 와서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생각해 보니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기 위해 노력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기질에 맞을 듯한 일을 사방팔방으로 찾았을 뿐이다. 그래서 '좋아하는 걸 포기하지 않는 방법'으로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더니 다행히 담당 교사도 맞장구를 쳐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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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은 누군가의 의식을 거머쥐고 혼란스럽게 뒤흔들기도 한다. 나는 누구든지 음악의 놀라운 힘에 휘둘리며 사는 게 아니라, 그 힘을 잘 활용하며 살기를 바란다. 대중음악에서 적절한 위로와 용기를 얻고 삶에 활력을 더하기를. 더 나아가 살아가면서 마주치게 될 사람들의 내면을 대중음악으로 한층 깊이 들여다보고, 사람들 사이의 갈등까지 완화하는 방법을 찾는 것. 서로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세상에서 내가 추구하는 평화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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