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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

다름 아닌 사랑과 자유

by 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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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보호단체 카라와 9명의 작가가 함께 책을 냈다. 유기동물을 후원하는 일대일 결연을 소개하고, 수익금 일부를 동물복지센터를 위해 쓰고자 힘을 모았다고 한다. 9명의 작가는 동물이 등장하는 각자의 기억을 썼다. 동물을 만나고, 같이 지내고, 헤어지는 일들을 글에 담았다. 서로의 경험이 모두 달랐고 그래서 하고 싶은 말도 결이 조금씩 달랐지만, 이들 모두가 동물을 많이 사랑했고 사랑해서 아파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알면 사랑한다'는 어느 생태학자의 말처럼 알았기 때문에 느낄 수밖에 없는 감정이 있는 것 같다. 아무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작은 후원과 책 홍보다.


지금 후원하는 3곳

동물권행동 카라 https://www.ekara.org/

동물해방물결 https://donghaemul.com/

동물자유연대 https://www.animals.or.kr/



발췌


12

나는 콩돌이를 통해 '개'라는 세계에 구체적으로 접속하게 되었다. 그 시절의 기억은 무엇도 선명하지 않지만 콩돌이에 관한 것만은 다르다. 나는 사랑하는 대상의 구석구석을 오래도록 열심히 관찰했고, 그것은 인장처럼 내 마음의 곳곳에 또렷이 찍혀 있다. 동물을 사랑함은 시절과 세계를 풍요롭게 하는 일이다.


21

사람을 알아보고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개의 표정과 눈빛은 감동적이다. 달려와 안기고 기쁨에 몸을 떨며 사람의 얼굴을 핥는 개들은 온몸으로 반가움과 사랑을 표현한다. 사람이 아니라 개야말로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닐까.


개는 왜 사람 따위를 이토록 사랑하는 걸까. 개의 중심은 제 안에 있지 않고 자기가 바라보는 사람 안에 있는 것 같다. 그리고 'We don't deserve dogs'라는 말처럼, 많은 경우 인간들은 개의 맹목적이고 순수한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


24

사람이 개를 지배하듯, 고양이는 사람을 지배한다. 나는 고양이들이 내게 지나치게 종속되지 않고 독립성을 유지하는 느낌이 아무래도 다행스럽다. 그런 생각을 할 때면 나는 대단한 집중력으로 '주인'만을 바라보는 개의 뒤통수가 더 슬프게 느껴진다.


36

사람만 보는 개의 슬픔도, 개를 잃은 사람의 슬픔도 있다. 모두 사랑의 일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는 슬퍼지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하지 않고 슬프지 않기보다는 슬픔까지 껴안고 사랑하기를 택한다. 동물을 사랑함은 슬픔까지 포함하는 일이다. 그리고 사랑은 언제나 슬픔보다 크다. 사랑은 상대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일이다. 우리는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동안 그들이 없었다면 느끼지 못했을 것들을 느낀다.


55

나의 비거니즘은 탐이에게 빚을 지고 있다. 그가 얼마나 생생한 존재인지 가까이서 오래 보지 않았다면 축산과 수산 현장에 관심을 가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해야 할 일과 바꿔야 할 것들이 커다랗게 놓였다. 그건 '우리'라는 개념을 다시 정립하는 일이다. 혹은 '새로운 우리'를 발명하는 일이다. 나는 잘해보겠다고 탐이에게 약속을 한다. 만약 실패하더라도 더 낮게, 더 낫게 실패하겠다고.


65

나는 무언가에 애정을 지니는 일이란 세상을 아주 복잡한 방식으로 이해하겠다는 용기라고 생각한다. 그를 사랑하는 순간 우리는 그가 위치해 있는 그 지점뿐 아니라 연결된 배경까지 모두 받아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장군이가 내 삶에 들어오면서 나는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을 장군이에 빗대어 받아들이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95

마리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내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 나에게 과외를 받던 중학생 아이가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은 죽으면, 죽으서 눈을 뜨면 반겨줄 고양이들이 많겠어요." 그 아이의 사려 깊은 말을 듣고 나서부터 나는 그 장면을 종종 그려보곤 했다.


106

우리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나는 그렇게 묻고 싶다. 이렇게까지 다른 존재에게 고통을 주면서까지 살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닌가요.

동물의 마음에 가까이 다가갈 때면 나도 사람이 두렵고 무섭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는 약한 존재들, 아프고 도움이 필요한 존재들에게 힘이 되어주는 사람들 또한 존재한다.


172

자신의 외로움은 알아서 감당하고 신혼의 재미를 위해 강아지 들이지 말고, 대형견 한번 길러보고 싶은 욕망에 열여덟 평 아파트 살면서 말라뮤트 같은 애 들여가지고 무슨 에어컨 틀어주느라 전기세가 얼마가 나오느니 하며 되도 않는 무용담 같은 것 늘어놓지 말고, 개, 고양이에 대한 꿈과 로망 같은 게 있다면 웬만하면 버리자. 생명이 누군가의 꿈이나 로망이 될 수는 없다.


187

한 지붕 아래에 동물과 함께 지내는 생활은, 믿을 곳이 오직 나뿐인 한 생명을 매일 바라보는 일이다. 누군가에게 나는 그런 존재다.


192

어떤 희망도, 어떤 선택도 겪어보지 못한 울부짖음의 결말들을, 우리는 기분좋은 한 테이블로 마주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생명은 결국 죽지만, 먹혀 죽기 위해 태어나는 생명은 그 어디에도 없다.


199

개의 소개마다 아픈 과거를 명시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지금을 사는 개에 대한 존중이 아닐까. 아픈 과거가 있는 개이기 때문에 지금의 생활이 더욱 빛나는 건 아니다. 더는 유기라는 단어가 아이의 삶에 놓여 있지 않도록, 안전한 지금을 잃지 않게끔 매일을 지켜내는 일이 중요하다. 아직은 안전망을 얻지 못한 개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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