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

N개의 성착취, 이제는 끝내자

한국여성민우회

by 라용

2020년 상반기 한국여성민우회 소식지, '함께가는 여성'을 받았다. 읽으면서 기억하고 생각해야 할 부분은 발췌했다.




발췌


2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이 세상에 밝혀진 뒤 많은 이가 공분했다.

'사람도 아니다', '악마도 따로 없다'

하지만 이는 '특별한' 사건이 아니다.

여성을 한 사람이 아닌 몸으로 품평했던 채팅방

불법 촬영물을 범죄로 여기지 않고

소비·유포했던 무수한 웹사이트

그 다음이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이었을 뿐이다.

'N개'의 성착취를 끊어내기 위해 사회가 해야 할

첫 번째는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는 것이다.

변화는 그로부터 만들어진다.


7

'디지털성범죄 피해촬영물 삭제지원'이라는 업무가 이 세상에 필요 없어질 날이 오는 것, 이것이 센터 팀원들의 소원이다. 현재 디지털성범죄는 한국 사회에 너무 뿌리 깊게 박혀있다. '야동', '몰카'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하고 아직도 많이 쓰이고 있다는 것, 범죄가 '문화'가 되어버린 것은 우리가 잊지 않고 계속 경각심을 가져야 할 문제다.

..

삭제지원은 결국 사후 조치이다. 범죄를 종식시킬 수 있도록 디지털 성범죄가 조직적인 성착취 카르텔임을 잊지 않고 플랫폼 사업자에게 책임을 묻고, 운영자를 처벌하여 그들의 수익 구조를 완전히 차단해야한다. 다음 세대가 이 직업을 가질 필요가 없고 가해자들의 클릭질에 여성들의 삶이 좌지우지되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다.


8

청소년은 성에 대해 무지하고 침묵하기를 강요받았고, 얌전히 '지킴' 받는 존재로 남아야 했다. 삶은 부모의 통제 안에서만 이루어져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여성 청소년이 욕망을 실현할 수 있는 공간 중 하나가 트위터,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였고 부모에게 알리겠다는 협박에 넘어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청소년의 성적 욕망을 부정한 현실이 청소년 성착취의 원인 중 하나라는 것은 분명하다. 지금까지 이루어졌던 '지킴'은 실패했다. 청소년을 성으로부터 격리하는 것은 더 이상 보호가 아니다.


9

"어린 여자들은 영원히 어리지 않다. 강력한 여성으로 변해 당신의 세계를 박살내러 돌아온다." 2018년, 미국 체조 대표팀 전 주치의였던 성폭력 가해자의 재판에서 피해자 카일 스티븐스가 한 말이다. 이후 이 말을 여러 운동 장면에서 만날 수 있었다. 청소년인 동료는 이 말에 의문을 표했다. "나는 어리고 강력한데?" 동의한다. 어린 여자아이들은 강력한 여성일 수 있고 이미 남성연대를 균열내고 있다. 여성 청소년으로서 보호를 요구하지만, 우리는 보호 받아야 할 대상'만'은 아니다. 우리의 싸움을 특별하게 보지 말고 동참해 달라. 배제와 차별의 보호를 원하지 않는다. 인간의 범주에 여성 청소년을 포함시키고 동등하게 대우해 달라.


12

언론이 해야 하는 역할은

성폭력 사건을 보도하면서 계속해서 단순 사실만을 전달하는 것은 보도의 공익적 가치가 있다고 볼 수 없다. 언론은 성폭력 사건이 얼마나 잔인하고 특수한 범죄인지 전하는데 그 역할이 있는 게 아니다. 문제가 터지고 나면 뒤쫓아 사건을 보도 하는 게 아니라 이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사회가 함께 고민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언론이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역할이다.

성폭력 사건이 이슈가 될 때마다 많은 사람이 언론의 보도 방식에 문제제기를 해왔다. 매번 다른 이야기도 아니었다.

-성폭력을 흥밋거리로 다루지 말 것

-불필요한 경우에도 피해 내용을 자세히 묘사해 선정적으로 보도하지 말 것

-가해를 변명하는 가해자의 말을 부각시켜 보도하지 않을 것 등


19

코로나 19로 우리가 알게 된 한 가지는, 재난이 가져오는 문제의 대부분은 새로운 것들이 아닌, 여성의 역할과 의무로 여겨져 왔던 독박 가사/돌봄 노동, 보건 의료/서비스업 종사자들의 열악한 처우와 인식 등 기존의 사회의 '약한 고리'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22

여성 노동자에 대한 파업의 높은 문턱이 단지 코로나 19 때문만일까. 안정적인 고용·소득보장이 시급하다는 말은 역으로 말하면 그만큼 불안정한 노동에 종사한다는 뜻이고,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입장에서 파업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얘기가 된다. 전체 비정규직 중 여성의 비율이 높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파업은 여성에게 더 어려운 선택지일 수밖에 없다. 노동조건을 개선하고자 파업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또 일정 수준 이상의 고용보장이 선행되어야 한다니, 가슴아픈 아이러니다.


24

성폭력은 무엇일까요? 정확하게 답할 순 없어도 어렴풋이 '내가 원하지 않은, 동의하지 않고 하는 성관계'라는 문장이 머릿속에 떠오를 것이다. 이 어렴풋한 개념은 바로 현실이다. 대부분 성폭력 피해는 동의를 받지 않고, 직접적이 '폭행·협박' 없이도 일어난다.


현행 간강죄에서 성적침해의 구성요건은 폭행·협박이다. 현재 수사·재판 기관에서는 이 폭행·협박을 '상대방의 저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직접적인 폭행·협박'이 있었는지의 여부(최협의설)로 판단하고 있다. 그래서 수사·재판 과정에서 피해자는 '폭행 또는 협박이 있었습니까?', '그 상황에서 저항을 하였습니까?'등의 질문을 받고 '폭행 협박은 없었지만'이라고 답하는 순간 피해자가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을 받게 된다.


27

지금 필요한 것은, 임신중지를 '처벌에서 권리보장으로' 정책의 프레임을 완전히 바꾸는 일이다. 민우회는 여성 당사자 처벌뿐만 아니라 여성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제공하는 의사에 대한 처벌도 삭제해 '필요한 누구나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 의료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형법 제27장 '낙태의 죄'장 전체 삭제를 요구하고 있다.

..

'비정한 모성'이 아니라 '비정한 제도와 사회'에 주목해야한다. 지금처럼 이렇게 여성의 임신중지를 범죄로 다루며 처벌하고 낙인화하는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일수록 제대로 된 정보와 안전한 의료에 대한 접근권은 떨어진다. "후기의 임신중지도 허용해야 하나? 몇 주까지 허용해야 하나?"라는 진공상태의 질문이 아니라, "왜 여성이 더 빨리 병원을 찾지 못하고 위험한 후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어떻게 해야 우리 사회가 모든 여성이 안전하게 임신을 유지 또는 중지할 수 있도록 적절한 지원을 할 수 있을까?"를 물어야 한다. 그리고 답은 정해져 있다. 모든 임신중지에 대한 낙인과 처벌을 없애고, 제대로 된 피임법과 '임신중지는 의료서비스라는 사실'을 모두에게 교육하고, 안전한 의료를 제공할 것. 법 개정 기한이 올해 12월 31일까지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커피와 담배 _ 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