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설턴트의 여행, 지구촌 직무 수행
세계 100개 도시, 뚜벅이의 필드워크, 1
무취미 남자
세계 100개 도시, 뚜벅이의 필드워크, 1
출장이 잦고 생활이 불규칙한 나는 학원 한번 제대로 다니기 어려웠다. 여행의 노독(路毒)을 풀지 않고 다음 날 출근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마땅한 취미 하나가 없게 되었다. 헬스장도 다니지 않고, 골프도 치지 않는다. 대신 사업을 하면서 바이어가 있는 지구촌 도시와 협력사 공장이 있는 해안, 사막, 오지의 산업단지를 다녔다. 작가 무라카미 류는 '무취미의 권유'라는 책에서 한 분야에 대해 지극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 프로패셔널은 모든 자원과 시간을 일 로 통합하고 집중하기 때문에 취미 생활 같은 것 할 시간도 생각도 없다고 했는데 공감한다. 나에게 취미 같은 것은 없다. 대신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자세로 현장을 관찰하고 실(實).계(計).하는 습관이 있다.
마케터의 직무와 도시관찰
마케팅 전략을 자문하는 나에게 해외 진출에 관한 의뢰와 상담은 한 달에 십여 건이 되었다. 정식으로 계약하는 것에서부터 개념없이 좀 알아봐 달라는 부탁까지, 한 달에 10여 건, 일 년이면 100건 이상이 모였고, 이런 일을 이십 년 이상했으니까 2,000여 건이 넘는 컨설팅을 제공하게 되었다.
의뢰자는 스타트업, 중소벤처, 중견기업, 대기업, 지자체, 정부 부서에서부터 해외 기업과 교민까지 다양했다. 의뢰받는 분야도 농식품부터 자동차, 화학, ICT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넘어왔다.
컨설팅팀의 시스템은 다음과 같다. 자문 의뢰가 오면 분야별 담당자와 일을 나누고 회사가 확보한 전문인력을 활용해 해답을 찾는다. 사내 자원으로 풀 수 없는 고난도의 요구는 해외 전문기업과 협업을 한다. 그러나 보고서의 최종 서명은 사장이 하는 것으로 의견을 달아야 한다. 고객에게 솔루션을 제공해서 먹고사는 구조 속에 있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학습이 필요하다. 종일 모니터를 보고 국내외 현장에 가서 사실을 확인하고, 자료를 잔뜩 출력해서 이동 중에 읽는다.
동무 선생 같은 도시 체질 탐문
세일즈를 하는 마케터로서, 시장전략을 자문하는 컨설턴트로서 25년 이상 도시를 점으로, 그 점들을 선으로 연결하며 지구촌을 돌았다. 바이어 상담이나 협력사 방문을 마치면 시장조사를 위한 타운와칭(Town Watching)을 했다. 그것은 뚜벅이처럼 걷으면서 하는 일로서 현장을 걷는 일(Walking in the field)이기도 하고, 현장에서의 일(Working in the field)이기도 하다. 걸으면서 받아내는 시각정보과 공간정보를 고객이 위탁한 제품이나 서비스에 연계성을 찾는 것이다. 그래서 사상의학(四象醫學)을 완성한 동무(東武) 이제마 선생처럼 걷다가 관계가 있는 것이 눈에 뜨이면 멈춘다. 살펴보고, 사진을 찍고, 묻고(interview), 자료를 얻는다. 그리고 다시 걷는다. 내가 기록하는 대상은 상품, 건물, SOC, 산업시설, 도시구조뿐이 아니라 공장의 배전반과 선박 엔진까지 다양했다.
(상파울루 지하철, 시장전략을 자문하는 컨설턴트로서 타운와칭(Town Watching)을 통해 획득해야 하는 것은 고객이 위탁한 제품이나 서비스에 연관성을 찾는 것이다. 내가 관찰하는 대상은 상품, 건물, SOC, 산업시설, 도시구조뿐이 아니라 여성의 옷차림, 시민의 라이프스타일, 에너지를 사용하는 방식까지 다양했다)
이런 행동을 수천, 수 만회를 반복하며 지구촌을 돌면 나중에는 내가 어떤 도시를 다녀왔는지? 도시의 골목과 거리, 건물의 화면들이 중첩되어 방문 시기와 도시명조차 헷갈려 클라우드의 도움 없이는 분류할 수 없다. 하지만 지구촌에 조류처럼 흐르는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여성의 옷차림, 시민의 라이프 스타일, 에너지를 사용하는 방식, 도시 트랜드.... 서울, 도쿄, 상해, 싱가포르, 파리, 런던, 뉴욕 같은 세계 도시마다 차이가 있지만, 동기화되어 있는 패턴이 있다. 공공 디자인에 미니멀리즘이 풍미하는가 하면, 다채색과 복합기능의 포스트모더니즘이 주류가 되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