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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대훈 Aug 01. 2023

염홍철 시장, 사회적 자본과 도시의 승리

세계 100개 도시, 뚜벅이의 필드워크, 12

염홍철 시장, 실·국장 아침 티타임


세계 100개 도시, 뚜벅이의 필드워크, 12


 어느 날 신문을 보는데, 민선 5기 염홍철 시장께서 하버드대학 에드워드 글레이저 교수의 저서인 「도시의 승리」를 주제로 실·국장과 티타임을 했다는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염홍철 대전시장은 18일 실국장과의 티타임을 통해 세계적 성공도시를 모델로 한 대전의 미래발전전략을 제시하면서 하버드대 에드워드 글레이저 교수의 저서인 「도시의 승리」를 소개해 ‘창조적 사고와 구체적 실천을 강하게 주문했다. (염홍철 대전시장 “대전의 미래는 창조형 도시” - 충청뉴스 2011.07.18.)




그 내용에 흥미를 느낀 나는 「도시의 승리」를 구매했다. 그 책을 잡은 날, 그 하루는 자정을 넘겼고, 퇴근 후 읽어간 것으로 사흘 만에 완독을 마쳤다. 544쪽의 두툼한 책이 순식간에 읽힌 것이다. 완독의 소감은 강단에도 고수가 있다는 것이다. 

 

'도시의 승리'의 내용은 도시에서 일어나는 질병, 범죄, 혼잡과 편견, 오해, 반 도시적 정서에도 불구하고 도시는 사람을 모아 협력하게 하고 혁신을 촉발하게 한다. 도시 인구가 10% 많아지면 그 나라 1인당 GDP가 30% 높아진다. 1970년대 재정 위기에 빠졌던 뉴욕이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고층화로 인한 '집적 효과'이다. 고층화가 될수록 도시는 사람을 더 수용하지만, 탄소는 적게 사용하고 이동 시간은 줄어들며, 도시관리 비용도 적게 든다. 그래서 교외 정원이나 자연에 사는 것보다 도시는 인류를 더 풍요롭게 똑똑하게 하며, 더 환경적이며 건강하고 행복하게 한다. 

 

글레이저 교수의 견해 모두를 공감하지는 않지만, 그의 통계와 주장, 나의 관찰은 교차했다. '도시의 승리'는 도시의 인적자본과 질병, 교통, 주택, 개발과 보존의 갈등, 스프롤현상, 빈곤과 소비의 쟁점을 다루고 있다. 그동안 기구촌을 걸었던 뉴욕에서 카라치까지의 도시 관찰이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제48회 무역의 날에 열린 대전·충남 수출 유공자 시상식( 2011.12.20), 필자는 수출진흥과 판로 확대에 이바지한 공로로 염홍철 시장으로부터 대전광역시장상을 수상했다. 이후 가족과 지인들은 광역시장상에 상금은 얼마이며, 부상으로 무엇을 받았는지? 물었다. 시정의 책무가 시민을 기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라면, 조례를 만들어서라도 기관장상에는 소정의 상금과 부상이 있으면 좋겠다)



'도시의 승리'를 추천한 염홍철 시장을 몇 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임명직으로 한 번, 선출직으로는 두 번, 3번의 대전시장을 역임했다. 이 밖에도 정무직 공무원, 교수, 대학 총장, 공공기관 이사장, 사회단체장을 쉬지 않고 지내는 분, 정당을 섭렵하다시피 한 정치인, 알려진 독서가이다. 끝없이 글을 쓰고, 책으로 내며, 낙선하거나, 선거에 불출마해도 존재감을 과시한다. 지금 생각하면 염 시장께서는 자신의 티타임(Tea time)도 뉴스로 만들 줄 알았다. 그의 측근도 도시에 대한 견해가 남다르다. 민선 5기 대전시 손규성 일자리 특보는 '도시를 만드는 사람, 사람들 키우는 도시'를 출판했다. 

  

대전 폭탄주, 삿포로시에서 들은 명성 

 

나는 해외 출장을 다니면서 대전의 우호도시 또는 자매도시가 있으면, 그 도시의 관련 부서나 기관을 방문했다. 그 지역 동향에 대해 듣거나, 현지 기업을 소개받기 위해서였다. 2012년 눈 내리는 겨울, 홋카이도 출장길에 삿포로시 국제교류부를 방문했다. 이마이 부장과 국제교류부원 전원이 공직자가 아닌 '대전시민'의 방문을 맞이해 주었다. 그 자리에는 대전시가 파견한 성훈식 사무관도 함께 있었다. 


물론 그런 자리에는 빈손으로 가지 않는다. 나는 당시 일본인에게 인기 있는 '소녀시대'와 '카라'의 K-팝 화보를 증정했다. 이마이 부장도 삿포로 눈축제 CD로 답례했다. 그리고 화기로운 분위기로 차를 마시며 환담을 하는데, 2010년 7월, 삿포로시 우에다 후미오 시장이 대전시 방문 이야기가 나왔다. 후미오 시장 일행이 염 시장으로부터 폭탄주 대접을 받은 것을 삿포로시(청)가 다 알고 있다고 했다. 맥주잔에도, 냉면 그릇에도, 맥주· 소주를 가득 붓고 섞어서 강렬하게 마시는 술자리가 인상 깊었던 모양이다. 

 

 (2012년 2월, 북해도에는 눈이 내렸다. 출장길에 대전시의 자매도시인 삿포로시의 국제교류부를 방문했다. 해외 기관 방문을 통해 현지 동향을 듣거나, 협력을 요청할 수 있다. 삿포로시 이마이 부장과 국제교류부원 전원이 공직자가 아닌 '대전시민'의 방문을 환영해주었다. 앞줄 중앙 필자와 악수를 하는 이마이 부장 옆에 대전시가 파견한 성훈식 사무관이 웃고 있다) 



염 시장님과 나는 두 세대 정도 차이가 난다. 자신은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을 다 기억할 수 는 없겠지만, 한 도시에서 시장을 세 번이나 했던 분을 나처럼 아는 대전시민은 많다. 그는 '제3세계와 종속이론'부터 여러 책을 냈고, 아직도 팬덤을 거느린 분이시지만, 몇 가지 부분에서 나는 그의 생각 맞은편에 있었다. 그런데 두주불사하는 호방함과 소통에 힘이 있고, 관계를 깊게 하는 분이라는 것을, 해외에서 외국 기관 공무원의 입을 통해 듣게 되었다. 

 

사회적 자본? '사회적 자본 선도도시 대전' 

 

다른 어느 날, 오정동에서 한밭대로를 통해 도심으로 들어오는 육교에 느닷없이 '사회적자본 선도도시 대전'이라는 현수막이 붙어있었다. 그곳뿐이 아니었다. 거리 곳곳에 사회적 자본이라는 문구가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그날 승용차에 같이 탔던 사람들은 서로에게 물었다.

 

"사회적 자본이... 무어여?" 

 

염 시장은 시정의 목표로 '사회적 자본'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분이다. 사회적 자본이란 신뢰를 바탕으로 소통하고 협력하고 나눔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개념이다. 

 

그는 고유의 미풍양속을 바탕으로 시민 자율참여의 대전형 복지 모델인 ‘복지만두레’를 추진했다. 추진도 염홍철 스타일답게 대규모였다. 시와 자치구 및 동 주민센터 단위의 민․관 협력운영위원회를 설치했다. 시에는 경제․종교․복지․사회단체 등 각 시민대표들로 구성된 복지만두레 운영위원회와 5개 자치구에는 복지만두레운영협의회를 설치했다. 이에 따라 동 회장 100여 명, 남산 불교사암연합회 사무처장 등 31명에 자문 위촉을 하고, 회원 700여 명이 참여하는 실천결의대회를 개최했다. 77개 동주민센터에는 각 동 복지만두레회를 재구성했다. 민간자원인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자원봉사지원센터, 사회서비스사업단 등이 모두 참여하는 광역복지자원망을 촘촘히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염 시장 재임 시, 복지만두레는 2만여 시민이 참여해 9천200여가구의 어려운 이웃과 결연을 하고 개별 특성에 맞는 다양한 봉사활동을 했다. 이 복지만두레가 성공했다면 학계, 언론계, 종교계, 경제계, 금융계 등 모든 사회단체가 광역자원으로 연결되어, 복지 사각이 없는 복지도시가 되었을 것이다. 이 밖에도 염 시장은 ‘사회적자본’을 위한 가정친화, 좋은 마을, 시민대학 등 대전형 정책에 열심이었다. 

 

도시개념, 정책 슬로건에 필요한 투자와 마케팅


‘사회적자본’, ‘복지만두레’는 지금 들어도 어려운 개념으로 시민 속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하나의 개념을 정착시키려면 100년쯤 걸린다. 우리가 사용하는 ‘민주’, ‘이성’, ‘과학’ 이런 개념은 무수한 피를 흘리면 천년 정도 싸워 이겨낸 시대정신이었다. ‘복지’라는 개념도 산업혁명 이후의 용어로써 수백 년이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많은 한국인이 민주주의를 절대적으로 생각해도, 복지를 절대가 아닌, 선택적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하나의 용어 역시 그 개념의 표현이기 때문에 시간과 투자와 마케팅이 필요하다. 그냥 두어도 잘 팔리는 달달한 ‘초코파이’도 40년 이상 광고를 지속하는 이유가 있다. 염 시장의 사회적자본과 복지만두레에도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틈틈이 말하고 있는 '도시실험'이라는 것은 ‘기술실증화’ 뿐이 아니라 쿠리치바의 대중교통 모델, 에스토니아의 e-Residency 같은 사회 실험이다. 이들은 성공했지만, 실패해도 성공해도 좋은 것이다. 실패해도 지역 역량은 축적된다. 내가 본 염 시장은 자신의 구상을 머리 밖으로 꺼내 놓고, 권력과 행정의 유용함을 알고 즐긴 사람이었다. 그가 징검다리처럼 건너뛰는 시장이 아니었더라면, 자신의 정책을 이어갈 수 있는 연임 시장이 되었다면 '대전형 복지 모델-만두레'는 완성되었을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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