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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대훈 Jul 31. 2023

제인 제이콥스, 도시학으로 들어가는 문

세계 100개 도시, 뚜벅이의 필드워크, 11

강단과 강호, 관념과 실존


도시 세계에서 거목처럼 버티고 서있는 할머니, 제인 제이콥

 

내가 판단을 구하는 근거로 팔, 다리의 경험과 안이비설신의 감각을 우선했다. 실존은 본질에 우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플라톤에 의하면 그것은 이데아를 비추는 그림자를 더듬는 가짜에 불과하다. 나는 저차원의 경험론자이다. 


조선을 문약하게 만든 성리학 같은 관념론에 거부감이 있어서, 실용과 실학을 존중하는 자세를 가졌다. 혜초와 마르코 폴로, 박지원의 여정같이 뼈에 새겨지는 실제와 실감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삶의 고생을 자초했다. 더구나 실물을 다루는 실업계에서도 무역인은 세계를 대상으로 사업을 하고, 해외시장을 개척한다는 자부심이 있어, 교실에 있는 강단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었다. 


블라디미르 레닌, 마오쩌둥, 에브라함 링컨이 사관학교에서 군사학을 배웠거나, 제도권 정치학을 공부한 것은 아니지만, 혁명과 전쟁을 지휘하고 역사를 바꾸지 않았는가? 전문가는 심사와 시험을 통해 제도권이 생산하지만, 고수는 치열한 강호무림(江湖武林)에서 나온다. 전문가에만 의지하면 우상에 빠지지만, 고수와 일하면 일머리 잡기가 쉽고, 흐름이 장쾌해진다. 이 책의 도시전략도 이른바 강단의 도시학이 아니다. 세상을 주유하면서 이방의 골목에서 길을 잃고 언덕을 오르며 개념화한 것이다. 그래서 도시는 지금 살고 있는 시민, 도시에서 매일 비용을 내며 사는 내가 심사한다. 





나는 한국에도, 대전에도 많은 건축사, 토목 기술자, 도시학 교수들이 많은데 왜 우리의 도시는 콘크리트, 아파트, 사각형 건물 말고는 찾을 수 없는 획일주의에 갇혔는지? 답답한 상태였다. 그래서 도시문제가 내 인체의 소화 작용까지 영향을 끼치는 때에, 하버드대학교의 글레이저가 교수가 자신의 저서, '도시의 승리'에서 조심스럽게 경계하고 양해를 구한 사람이 있었다. 


대학 문턱에 가지 않은 여성으로서 도시학의 문을 연 제인 제이콥스였다. 제이콥스는 이미 2006년에 돌아가진 할머니로서, 손자 벌의 글레이저 교수와는 50년 나이 차이가 난다. 그는 '이 책의 많은 부분에서 도시 세계에서 거목처럼 버티고 서있는 제인 제이콥스의 흔적이 분명하게 남아 있다는 것을 꼭 언급하고 싶다(도시의 승리, p, 31)라고 밝히고 있다. 



 사람과 삶에 대한 시선,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도시학’으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제인 제이콥스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 어떤 도시 관련 도서에도 행동주의적 도시운동가인 이 할머니의 견해가 참고문헌에 들어가 있다. 그러나 이 여성이 저술한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The Death and Life of Great American Cities)과 그녀의 또 다른 저작들을 완독하기라 쉽지 않다. 흡사 여러 갈래로 의식이 흐르는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같아서, 읽으며 미궁에 빠지고, 문장은 쉽지만, 문맥은 난해하다. 소화불량에도 걸리며, 읽다 말다 하면서 결국 넉 달 만에 끝을 내고, 식탁에서 막걸리를 마셨다.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 1916 ~ 2006)는 인위적인 도시계획, 획일화, 자동차중심 도시화에 반대하고 행동했던 도시운동가다. 대학에서 정식으로 딱히 무슨 전공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고교 졸업 후 펜실베이니아 지역 신문 《스크랜턴 트리뷴》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무급 직원이었다고 한다. 이후 뉴욕 《건축포럼》의 부편집장으로 일했다. 이때 그녀는 총명한 눈으로 세밀하게 도시를 작동하는 원리와 도시구조에 따른 현상을 아래와 같이 관찰했다. 

 

효과적인 사람 중심의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거리와 건축, 시설이 다양해야 하며, 복합화가 필요하다. 활기찬 거리에는 꽃집, 철물점, 푸줏간, 사탕 가게, 빵집, 식품품 가게, 서점 등 작고 다양한 상점이 있어야 한다. 상업기능이 없이 주거만으로 채워지는 공영주택 프로젝트는 바보 짓이다. 사람의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일상생활이 걷는 범위로 좁혀져야 한다. 위의 문장들과 용도 혼합, 짧은 블록, 다양한 건물, 높은 밀도, 상호 감시(관찰)들은 그녀가 사용한 용어이다. 그녀는 지금까지도 건축과 도시학에 절대 권위를 가지고 있는 르코르뷔지에의 빛나는 도시( Ville Radieuse)와 하워드의 전원도시(Garden City)를 사람과 삶에 대한 이해가 모자란 것으로 평가했다.

 

(웨스트 빌리지를 구하기 위한 위원회 의장인 제인 제이콥스 여사가 허드슨 & 찰스 세인트의 라이온스 헤드 레스토랑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문서 증거를 들고 있다. 제인 제이콥스는 대학에서 무슨 졸업장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부터 책과 신문 읽기로 문해를 터득했다. 고교 졸업 이후에는 독학으로 역사와 경제를 공부했다. 학위를 위해 공부한다는 것보다는 사람이 사는 현장을 선택했다. 걷고 관찰하고 기록하고 기고했다. 도시 현상과 함께 도시를 작동시키는 원리에 대해 연마했다. 이 같은 열정은 행동을 이끌었다. 도시를 살리기 위해, 시위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싸우면서 고발당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실존적인 인물이었다. 도시와 건축을 장악하고 있는 남성 중심의 폐쇄성을 비난하면서. 르코르뷔지에 같이 숭배받는 권위, 전문가라고 하면서 도시를 망치는 사람을 조롱했다. 획일화와 개발로 도시를 파국으로 이끄는 자본과 관료에 맞섰다. 내가 놀라는 것은 도시학으로 입문하는 사람은 그녀의 문턱을 넘어야 하지만, 결국 그녀의 인근에서 서성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걷는 도시, 15분 도시, 다용도 복합등의 개념은 그녀가 낳은 자식이다.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생존 시스템> <자연과 경제의 대화> <도시의 경제> <도시와 국가의 부> <어두운 미래> 등 저서를 남겼다. 사진 출처, World Telegram & Sun photo by Phil Stanziola.picryl)



산업화에 최적화, 근대 모더니즘 도시 vs 서식과 생태의 도시


1935년 르코르뷔지에는 '빛나는 도시' 계획안을 발표한다. 이것에는 초고층건물(아파트), 직선으로 뻗은 넓은 도로, 노면 전차, 복합 쇼핑 시설, 넓은 공원 등이 도심에 기계적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산업화에 최적화한 '빛나는 도시' 계획은 그의 제자, 추종자, 토건 자본가에 의해 신앙이 되었다. 세계 다수의 대학과 건축사무소들은 그의 성도가 되어 가성비가 높은 같은 꼴의 르코르뷔지에의 도시를 복사하고 있을 때였다. 그 맞은 편에서 제인 제이콥스는 다양성이 없는 공간, 교차 시선이 없어 안전하지 못한 거리, 동네 가게에 열쇠를 놓고 다니는 사람들을 단절하는 구조가 미국의 도시들을 죽이고 있다고 역설했다. 도시의 삶은 질서 정연히 보이는 수평이나 수직, 인위적인 계획이 아닌 역동적인 사람 관계와 시설과 구조, 문화 다양성으로 생명을 얻는다. 

 


도시양단에 저지, 행동주의 도시학의 탄생


그녀의 영향력은 관찰하고 글을 쓴 것에 그치지 않고, 행동에 옮긴 것에 있었다. 뉴욕 5번가 도로뿐 아니라 로어 맨해튼 고속도로가 마을을 양단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주민과 시위하고 점거하며 다양한 방법으로 싸웠다. 그녀의 승리는 마을을 관통하는 도로 계획을 무산시킨 것에서 끝이 난 것이 아니라, 토건세력과 거대자본과 관료가 밀어붙이는 인위적인 도시 개발에 맞설 수 있는 시각과 이론을 제시한 것이다. 그녀의 관찰은 도시 구조, 건물, 도로뿐이 아니라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계층, 소득. 인종, 관계, 인체의 범위, 임대 보증금과 도시 자본까지 세밀했다. 그 관찰의 누적으로, 도시 작동의 원리를 파악했다. 그녀가 제시한 소상공인이 삶을 꾸릴 수 있는 활기찬 거리, 시선의 상호 교차, 사람으로 안전해 지는 마을, 걷기 좋은 도시는 1960년 대의 뉴욕을 넘어 시대정신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레르네르 쿠리치바 시장부터 안 이달고 파리 시장까지 사람 중심의 도시론자에게 제인 제이콥스는 성모 마리아다. 


오늘날 세계 도시들의 렌드인 신도시주의(New Urbanism), 대중교통지향형개발(Transit Oriented Development), 지속가능한 교통수단(Sustainable Transportation) 역시 모두 스스로 관찰하고 탐구한. 강호무림의 고수, 제인 제이콥스의 시각에서 나왔다. 제인 제이콥스는 도시계획 뉴스인 플레니티즌(Planetizen)이 뽑은 ‘100명의 위대한 도시 사상가(2009년)’ 가운데 1위에 올랐다. 

 

'도시의 승리'의 글레이저 교수는 제인 제이콥스를 1960년대, 뉴욕 그리니치를 중심으로 관찰하고 생각한 것이라고 한계를 지적하며, 21세기 글로벌 도시들의 사례를 인용함으로써, 명망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다. 그런데 필립 코틀러의 저서 '시장의 미래'에서 제이콥스가 '도시와 도시권역이야말로 국부 창출의 진정한 원천이다'라고 주장했다는 것을 알았다. 제이콥스는 '도시와 국가의 부(Cities and the Wealth of Nations)' 역시 집필했다. 


신문 기사를 통해 염홍철 시장의 책 추천으로, 나의 도시는 길에서 독서로 들어가게 되었다. 강단에도 강호에도 길이 있다. 우리는 지구 단위에서 제인 제이콥스, 도시로서는 에드워드 글레이저, 광역도시권에 대해서는 필립 코틀러, 그리고 도시 주체인 나와 서로 다른 관점을 변증법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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