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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대훈 Sep 06. 2023

모두를 위한 도시, 유니버설 디자인

우리가 만든 도시에 대한 반성, 5

모두를 위한 도시,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

 

초행길 모스코바, 협력사 대표에게 지리가 익숙하지 않은 나를 위해 호텔로 와 달라고 했다. 물가가 비싼 러시아에서 모스코바 도심 호텔은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 도시 외곽에 머무르고 있었다. 우리는 좀 일찍 만나 반주를 곁들여 저녁 식사했고, 식후에 걷는 습관이 있는 나는 협력사와 헤어지고 나서, 어둑어둑해지는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얼마가 되었을까? 북쪽 도시 가을 날씨도 쌀쌀했고, 어느 정도 거리를 걸어서 돌아가는 길을 잃었다. 호텔 명함을 챙겨 왔으니 택시를 타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러시아 화폐, 루블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Moscow, 이미지출처, Wikipedia)




대로변에서 눈에 보이는 큰 건물에서, 다행히 현금인출기(ATM)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시작이 되었다. 한국처럼 영어 병기가 된 기계가 아니었다. 나는 현지어인 러시아 표기를 읽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해독 장애에 당황했다.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때문에 진땀이 났다. 하는 수 없이 순서를 양보하고 다시 줄 뒤로 가서 차례를 기다렸다. 눈을 감고 단전호흡까지 하면서 한국의 현금인출기 화면을 머릿속으로 복기해보았다. 전체화면 왼편 위에는 분.명.히 출금이고, 그 밑에는 계좌송금, 다음이 조회거래일터이니, 해당하는 단추를 누르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순서가 돌아와서 시도했지만 ... 나에게 필요한 숫자 누르기 화면은 나오지 않았고, 알 수 없는 문자가 떴다. 더는 차례를 양보하기 싫은 나는 여러 차례 화면 누르기를 하고 있는데, 뒤에 있는 덩치 큰 녀석들이 무엇이 답답한지 인상을 쓰고 있었다. 



(Raiffeisen Bank ATM, 이미지 출처, dreamstime.com)                                




그때 내가 겪은 당혹을 한국에 온, 한국어를 모르는 외국인이 겪을지 모른다. 대한민국에 다문화 가구원의 수는 111만 9천여 명이, 이 가운데 대한민국에서 출생한 내국인이 약 69만 1천 명, 다문화 대상자(2021년 기준, 결혼이민자 또는 귀화자)는 약 38만 4천 명, 그 외 기타 외국인이 약 4만 5천 명이다 (출처, 인구로 보는 대한민국). 도시는 이방인으로 와서 정착하려는 사람이 겪는 불안, 소외, 갈등에 대해 배려하고 있는가? 




 

이미지/(함께 살아갈 수 있는 모두를 위한 도시는 나를 위한 도시이다. 이미지 출처, British Columbia, news.gov.bc.ca)




우리는 평균에 대한 편견으로 누구에게는 불편한 환경을 만들고 살고 있다. 날씬한 몸매와 좀 더 큰 키로 부추기는 광고와 스트레스, 나 같은 아날로그 세대가 겪는 IT화에 대한 불편함, 출장 시 이용하는 모텔 샤워실에 있는 작은 글씨 표기의 세정제들, 노인 사용을 무시하거나, 배려하지 않는 키오스크와 스위치 없는 내장식 점멸기에서부터 스마트폰을 소지하고 있지 않은 자는 밥도 사 먹을 수 없게 하는 비인격적 방역까지. 그리고 장애인과 임산부와 생애 노화를 겪는 모두를 배려하고 포용하고 함께 사는 모두를 위한 도시를 무엇이라고 부르는가? 일류도시는 모두를 위한 도시이다.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 범용디자인), 사람들이 제품, 시설, 서비스 등을 이용하는데 연령, 성별, 장애, 국적에 따라 차별을 받지 않고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 복지를 실현하는 것. 서울시는 21년부터 신축‧개보수 공공청사‧복지시설 등에 모두 유니버설디자인을 적용한다. 사진 출처, 서울특별시 유니버설디자인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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