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떤 도시를 만들어야 하는가. 8
유토피아가 될 것인가? 수족관이 아닌 삶의 양식을 위하여
대기업 말고도 지역의 강소기업이 사우디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을까? 나는 당연히 해외사업에 대한 경험이 있는 기업인을 중심으로 네옴시티에 관한 토론을 했다. 네옴시티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170km 선형도시가 인류의 오랜 생활 양식에 맞지 않는 다는 것, 감염병과 보안 시스템에 대해서도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인류의 달착륙, 구글의 검색 지배, 스페이스X 상용화, 첨단도시 두바이 개발, 인공지능의 탄생등은 보통의 상식을 뛰어넘는 것들이었다. 네옴의 성공여부를 떠나 새로운 도시모델과 발전방식을 만들려는 네옴같은 프로젝트들은 계속될 것이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기술로 해결할 수 있는 방정식이 아니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는 디스토피아(dystopia)의 세계를 보여준다. 오웰은 전체주의 독재국가 오세아니아를 그렸다. 오세아니아의 빅브러더(Big Brother)는 24시간 개인의 일상을 통제하고 감시하며, 개인들이 갖는 경험과 지식과 감정을 조정한다. 빅브러더가 요구하는 것은 빅브러더 자신인 당에 대한 복종과 두려움, 공포이다. 이 공포의 오세아니아는 오웰의 소설에만 있는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세계 국가들의 전체주의적 경향은 더욱 강해졌다. 국가는 시민의 일상을 통제하고, 개인 테이터는 노출되며, 국가 정보는 은폐한다. 생각하기를 포기한 사람이 늘고, 마스크와 소비에 중독된 채 무력히 연명한다. 오세아니아는 이미 출현했고, 일상에 있으며, 닫힌 공간(도시, 국가)에서 첨단기술은 빅브러더를 영원한 황제로 만든다.
(수족관에 갇혀 있는 물고기들이 보인다, 대형 수족관은 만다린 피쉬부터 심해어, 심지어 상어까지 한 공간에 살지 않는 객체들을 한 공간에 강제하는 환경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놓는다. 수족관 이편에 있는 사람에게는 수족관 안쪽 세계가 신비롭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시선 저편에 한번 들어가면 죽음의 통로 아니면 나올 수 없는 아름답게 보이는 고통의 지옥이다. 문명은 그 기술을 만든 사람들을 수족관 안쪽으로 밀어넣고 있다. 우리는 삶의 도시를 수족관으로 만들고 있는지 모른다. 당신의 생체 정보는 노출되고, 당신이 섹스를 하는 장면과 하지 않는 날이 관촬되며 소비와 욕망의 아드레랄린은 조정된다 )
(거리 그림, 빅 브라더는 당신을 보고 있다(Big Brother is watching you). 조지 오웰이 1949년에 출판한 디스토피아 소설 ‘1984’은 미래에 등장하는 가공의 국가 오세아니아를 그리고 있다. 1903년 출생인 그가 미래라고 했던 1984년은 과거가 되었지만, 1984년 감시 체계, 감시 국가는 계속되고 있다. 인류는 첨단 기술을 만들었지만, 그 기술로 인해 감시받는 대상이 되었다. 거리의 CCTV, 차량의 블랙박스. Google에 스스로 박아넣는 지리 정보, 인터넷 캐시와 쿠키, 아마존과 쿠팡의 구매 정보, 보험사의 생체와 의료 정보, 통신과 감청...권력은 이 같은 정보를 통합하고 가공하면서 민중을 조정하고 권력을 유지한다. 소설의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이 같은 빅 브러더에게 저항하지만, 모진 고문에 무력해지고, 자신의 방어기제는 빅 브라더를 사랑하는 것으로 세뇌당하고 만다. 과학기술이 만드는 스마트시티의 미래를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까닭을 소설 ‘1984’이 일깨워준다. 사람은 일탈할 자유, 숨을 권리, 연대의 의무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탈 인간의 첨단기술, 데이터 통합, 인공지능화를 극복하는 대항 기술과 삶과 생태의 설계, 새로운 정신문명이 필요하다. 도시의 미래는 지방과 세계의 글로컬 믹스, 인권과 생명권, 가치 다양성, 인문이 견인하는 문화 창조에 있다. 사진 출처, thierry ehrmann, flickr)
내가 사막의 첨단 도시에서 우려하는 것은 기술적 실현도(實現度), 휴먼스케일을 넘는 수직공간, 자연채광의 투과율, 가스 테러의 위험성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진화하는 기술과 공학이 해결할 수 있다. 문제는 1984-오세아니아의 텔레스크린처럼 오늘날 ICT-미디어는 수십억 명 이상의 무의식을 조종할 수 있으며, 첨단기술이 지배 권력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절대권력과 초자본과 첨단 기술은 지구촌을 유토피아가 아닌 디스토피아로 만들수 있다. 그래서 공동체 이상 중요한 것은 익명성이며, 숨을 수 있는 권리이며,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이다. 첨단 도시는 시민의 일상을 어항의 물고기처럼 관찰할 수 있다. 생체정보 역시 종합병원과 건강보험사의 클라우드에 들어있다. 나는 수족관의 물개나 MRI 촬영기 밑에 놓여있는 피사체처럼 살고 싶지 않다. 그래서 첨단기술, 데이터 권력, 인공지능화를 극복하는 대항기술과 삶과 생태의 설계, 새로운 정신 문명이 필요하다. 과학도시 대전의 미래는 지방과 셰계의 글로벌 믹스, 인권과 생명권, 시민의 참여와 인문이 견인하는 철학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