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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 카페에서, 대전의 길을 찾자

도시는 어떻게 브랜드가 되는가? 맺는 말

by 강대훈

삶의 스승이신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나의 도시학은 역사 탐구와 여행을 좋아하시는 아버지 것이다. 산책하시고, 차량 드라이브를 하셔도 못 보던 건물, 새로 난 길, 공사를 하고 있는 단지가 나오면 꼭 한마디씩 하셨다. 이러쿵저러쿵! 오랫동안 들었던 아버지의 정겨운 도시 품평과 좀 지겹기까지 했던 역사 강의가 이 책의 시각이 되었다.




(30년 전, 도쿄에 머물고 있을 때, 아버지가 오셨다)





알렉산더와 도시들의 행진


알렉산더는 말을 달리는 방향으로 도로를 만들고, 군단의 숙영지는 도시로 만들었다. 그곳에 병참을 공급하는 상공인과 전쟁으로 발생한 난민과 노예, 병사와 혼인한 현지인을 머물게 하고, 정착시켰다. 이렇게 왕은 자신의 원정길에 70개의 도시, 알렉산드리아를 건설했다. 그래서 그 왕을 대왕이라고 부르고, 그의 동방 원정을 ‘도시들의 행진’이라고 한다. 서양과 동양의 문화가 융합되는 새로운 문명, 헬레니즘은 대왕이 시작했던 도시들의 연결과 확장의 결과이다. 오늘의 도시도 확장 시대에 있으며, 2,400년 전의 도시와 본질은 다르지 않다. 전쟁이 아닌, 자본과 기술과 문화로 도시를 넓히고, 높이며, 세계와 연결하고 있다. 대전시도 지구촌에 70개 이상의 대전을 만들 수 있는, 대전의 길(Daejeon Way)를 찾아야 한다. 메타버스 세상과 우주 공간에도 지금의 대전 말고, 또 다른 차원의 대전을 만들어야 발전할 수 있다. 나는 이 책에서 100개 이상의 도시 행진을 이어왔다. 그것은 사업의 틈새에서 생계와 관련 없는 원고를 쓴 것으로 몸과 마음이 지쳤다. 그래서 도시 행군의 마지막에 근사한 기분이 필요했다. 나는 코로나 이전, 이집트 여행의 마지막 도시였던 알렉산드리아, 파로스 등대가 바라보이는 카페에서 써 놓았던 메모를 찾아 읽었다.


"우리는 정복왕 알렉산더와 그의 스승인 아리스토텔레스조차 상상하지 못했던 시대를 살고 있다. 인류 활동은 우주로 넓혀지고 있으며, 기술은 모든 것을 연결하고, 데이터는 새로운 자원으로 증식한다. 이 초확장, 초연결 시대에 기후변화, 지구 온난화를 멈추는 탄소중립은 인류 생존을 위한 과제다. 이대로 탄소를 배출하며, 에너지를 과소비하는 생산구조, 소비구조, 도시구조를 지속할 수 없다. 지금 바꾸지 못한다면, 인류는 스스로가 타들어 가는 탐욕의 자전을 멈추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도시의 시대정신도 바뀌고 있다. 에너지를 덜 사용하는 공간혁신, 자원의 효용을 높이는 디지털 혁신, 지역자원을 효율적으로 배치할 수 있는 메가시티가 그것이다."


알렉산드리아의 카페에서 아랍인들처럼 물담배를 피우면서 생각에 잠겼다. 고대로부터 수없이 명멸한 도시 가운데, 문명을 잉태하고 발전시키고 전달한 도시, 전쟁으로부터 통상을 지킨 도시, 종교재판에 맞서며 이성을 이끌었던 과학도시, 침략을 반성한 평화도시, 인문의 꽃을 피운 문화 예술도시, 구체제를 무너뜨린 혁명도시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저작권주의 (The empire of Alexander the treat, 이미지출처, Encyclopeida Britannica)



실존의 인간과 도시정신


위태한 실험으로 시대를 이끌어온 정신이 있었다. 세계로 열린 개방성, 소수를 인정하는 다양성, 실수를 용인하는 관용, 놀라운 것을 구상하는 상상과 용기, 몽상 같은 도전을 구현하게 하는 문화와 사회적 분위기, 모험 자본이 있었다. 그래서 ‘일류도시’는 이런 거친 정신을 담는 문화적, 사회적 기반이 있어야 한다. 인류가 산업 경제에서 디지털 경제로, 지구촌에서 우주시대로 대전환하는 시대에, 대전시는 산업시대의 발전 모델, 석화된 인식, 닫힌 행정이라는 박스에서 나와야 한다.


나는 사업을 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내가 정치를 평가하고, 정당의 서비스를 고르기 위해 정당에 가입하지 않았다. 지역에서도 여.야, 진보.보수를 떠나 이 도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존경했다. 그동안 내 선택과 시정의 주역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았지만, 대전시의 성공을 언제나 응원했다. 시정의 성공은 시민의 승리이며, 시민인 내가 이 도시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실존의 인간은 경로과 관성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누구라도 잘한다면 내 마음을 가져갈 것이다.


대전시 같은 광역 단위의 지방정부는 자신을 국가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중앙에서 지방의 비중은 가볍다. 행정, 사법. 입법뿐이 아니라 한국 경제를 움직이는 코스피(KOSPI) 상장사 921개 기업 총수와 임원, 그 일가도 지방에 별 관심 없다. 대기업의 최고위 임원은 지방에서 돌리는 공장에 한두 번 방문하는 것에 그치고, 지방 공장의 중요 결정도 본사가 있는 서울에서 한다. 그래서 그 도시의 발전과 쇠락은 온전히 시민 몫이다. 시민은 도시의 주주이고, 선거는 주주총회와 같다. 주주총회에서 선출된 집행부는 죽자 살자 도시를 발전시켜야 한다. 누구라도 집행부가 열심히 하고 올바로 간다면 힘을 실어주고, 부실한 경영을 한다면 다음 선거에서 심판해야 한다. 권력은 정치를 수단으로 획득하지만, 시민은 진영과 당의 편견으로부터 밝은 눈을 가져야 한다. 지역에 별 관심 없다가 선거에 이용하는 중앙정치에 함몰되지 말아야 한다. 무엇보다 지금, 대전시가 대전환의 시대를 놓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면 대전시는 어떤 정신과 문화, 생산양식으로 시대를 이끌 것인가?



사람에 도시는 사랑하는 힘


그동안 연재한 글을 읽으시면 무조건 칭찬해 주셨던 어머니, 대전 이야기에 흥분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 냈던 여동생, 댓글로 응원을 달던 동창들, 부산서 시집을 와서 대전시민이 된 아내의 차분한 논평이 이 원고를 마무리하게 해주셨다. 출판을 결정하신 월간 토마토와 그동안 귀한 지면으로 연재를 허락한 디트뉴스24, 굿모닝충청, 월간청풍에 감사를 드립니다.


국내외 출장으로 세상을 떠돌며 살았던 나에게 3년 동안의 Covid-19 감염병 사태는 고통을 주었다. 해외 거래를 기반으로 한 사업이 끊어지니 수입도 끊어졌다. 돈이 있어야 해결하는 문제와 구질구질한 괴로움이 이어지는 일상이 시작되었다. 경제학자 그레샴의 표현을 빌자면 '악화(惡貨)는 양화(良貨)를 구축(驅逐) 했다'


코로나에 대중의 불안심리는 증폭되었다. 정부는 집합금지 명령을 내려, 추석 차례조차 온전히 지낼 수 없었다. 당연히 대전 밖으로 다니기도 편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사는 도시를 살피는 것이었다.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에서 하천 따라 한 바퀴, 어린 시절 마을에서 모교까지 걸음을 재며 보행, 회사에서 시작하여 .... 이같이 동네와 골목을 걷다 보니 그동안 무심히 스쳤던 것들이 눈에 띄었고, 사람이 사는 모습이 다시 보였다. 그리고 저녁에는 사무실로 돌아와 수년 동안 여러 미디어에 기고했던 '도시 전략과 마케팅'에 관한 칼럼, 네이버 블로그인 ‘강대훈의 마케팅 다이어리’에 기술한 글을 모아 보니 1,000여 편이 넘었다. 이것들에 목차를 만들고 정리하는데, 그것은 생계를 꾸려야 하는 시간을 괴물처럼 잡아먹는 작업이었다. 대전일보 기자를 지내셨던 송인덕 선배는 “강대표 날씨 좋군요. 다음 원고 보내주세요. 펜송” 하는 식으로 원고를 재촉하고, 문장을 다듬어 주셨다. 월간 토마토의 이용원 대표와 황훈주 편집인은 약속한 원고가 반년을 넘겨도 웃어 주셨다. 고맙습니다.


(사) 한국공공정책평가협회 박병식 회장님, 도시공감연구소 송동섭 이사장님, 18대 국회의원을 지내신 도시공감연구소 김창수 소장님, 대전시 자원봉사협의회장이셨던 한병기 고문님께서 늘 격려해 주셨다. 언론인으로서 세종시 정무부시장을 지내신 다산학당의 변평섭 고문님께서는 단톡방에 올린 글조차 의견을 주시고 격려하셨다. 이렇게 대선배님들의 칭찬은 과분했지만, 늦은 밤, 책상의 자판은 춤을 추었다. 대전학연구회를 이끄시는 김태명 교수님의 ‘대전바로알기 시민스쿨’에 입문한 것은 다행이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 5월에서부터 두 달 동안, 매주 수요일에 녹음이 울창한 한남대학 교정에 등교해서 자상하신 수업을 받았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이순석 박사님을 중심으로 243차 이상의 세미나를 이끌어오신 '새로운 통찰을 생각하는 사람들(새.통.사)'의 여러 박사님들께 ‘대전의 도시전략’에 대한 생각을 말씀드릴 수 있었던 것은 영광이었다. 이 밖에도 강의를 통해 젊은 공직자와 만나게 해주신 대전시 인재개발원과 시책 연구를 담당하는 대전세종연구원에도 감사를 드립니다.


한 인터넷 신문의 담당 국장은 내 연재의 편당 조회 수가 1만이 넘었다고 축하했다. 그러나 정작 뜨거운 반응을 보인 곳은 수도권이었다. 개발사업자들과 부동산학과 교수가 대전.세종, 충청권의 부동산 전망을 묻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은 특정 지구를 지목하면서 그것을 사도 되는지를 물었다. 그러나 때에 따라 등락하는 천기(天氣)를 어찌 말하겠는가? 단지 맹자께서 말한 “천시(天時)는 지리(地利)만 못하다”와 풍수지리에서 언급하는 “인걸(人傑)은 지령(地靈)이다”라는 말을 단편으로 인용했다. 그것은 지리조차 인화(人和)에 미치지 못한다고 한 말씀을 기억하자는 것이며, 지령 역시도 사람이 역사(役事)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였다. 인화와 인걸의 의미는 시민의 문화 개방성이며 창의와 상상력이 만드는 소프트파워이다. 지리와 지령은 도시의 구조라고 말할 수 있다.



지속가능한 천년, 세상에 없었던 것을 해보는 실험 도시를 위하여!


현대의 기술과 자본은 도시를 수직으로 높일 수도 있고, 새로운 지형으로 만들 수도 있으며, 도시 자체를 예술 작품처럼 만들 수도 있다. 도시가 예술과 문화의 기품을 고양하며, 멋진 도시를 만들면 시민의 삶도 품격이 높아진다. 그래서 실용 이상의 아름다움이 도시의 지향이 되어야 한다. 창의성이 없는 시설에 판에 박은 아파트 단지, 기후변화 시대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자동차 중심의 도시설계, 산업 시대의 사고와 관성 행정은 위태한 도전을 이어왔던 과학도시의 정신이 아니다. 도시도 사람의 생로병사처럼 흥망성쇠가 있다. 인생은 유한하지만 도시는 고쳐 사용하면서 수명을 늘릴 수 있고, 콘스탄티노플처럼 문명을 바꾸어 부활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의식을 가지고 천년도시, 세상의 걸작을 만든다는 자세로 정책을 만들고 집행을 해야 한다.


이 책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언론인이신 김선미, 김학용 주필, 두 분의 도시 칼럼을 오랫동안 읽은 덕분이었다. 술자리에서는 손규성 고문님께서 시정을 경험한 많은 이야기를 해 주셨다. 이 책은 그 선배님들 따라 쓰기라고 할 수 있다.


맺음말을 쓰면서 왜? 길옥윤 작사 작곡, 패티 김 노래인 '서울의 찬가'가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종이 울리네 꽃이 피네

새들에 노래 웃는 그 얼굴

그리워라 내 사랑아

내 곁을 떠나지 마오


중략 ...


헤어져 멀리 있다 하여도

내 품에 돌아오라 그대여

아름다운 서울에서

서울에서 살렵니다"


외삼촌이 즐겨 부르셨던 이 노래를 들으면 왠지 가슴이 따듯해지고 기분이 명랑해진다. 서울을 대전으로 바꾸어 불러도 좋을 것이다.


나는 가끔 사무실이 있는 대흥동에서 시청을 지나 집으로 간다. 늦은 밤에도 청사의 불이 켜져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는 잘 알아채지 못하지만, 대전시는 전기, 급용수. 쓰레기처리, 소방, 치안, 대중교통 같은 도시 유틸리티에 세계적인 품질을 가지고 있는 최상급 도시이다. 밤을 지키는 공직자가 있기 때문에 안전한 삶이 가능하다.


'4차 산업특별시' ‘일류도시’를 지향하는 대전시가 매력 있는 도시를 만들고, 지구촌 도시와 소통하며, 다음 세대가 누릴 미래를 만든다면, 그 이상 행복한 시민은 없을 것이다. 지역 문화와 산업이 꽃을 피우고, 난해한 개성까지도 발휘되며, 인재와 기업이 찾아오는 창의로운 세계도시, 면적 540㎢, 인구 150만 명은 생태와 사람의 미래를 실험할 수 있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딱 좋은 규모이지 않은가?



(알렉산드리아. 도시문명을 열었던 도시에 머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멋진 기분이 들었다. 동양에서는 알렉산더형 정복 전쟁 말고도, 고대의 도성 설계인 ‘주례고공기’를 기준으로 건설한 도시가 낙양과 장안부터 한성과 사비, 서라벌과 후에(HUE)까지 수백 곳이 넘을 것이다. 중세 유럽 도시와 산업혁명 이후의 도시들도 시대별 유사성이 있다. 근현대로 와서는 경제뿐이 아니라 뉴욕이나 파리, 베를린처럼 라이프 스타일을 창조하는 도시가 세계 도시의 사조를 이끌었다. 최근에는 싱가포르, 상해 포동, 두바이. 아부다비, 네옴시티까지 첨단 신도시들이 미래를 놓고 경합하고 있다. 대전시는 어떤 발전 모델로, 무엇으로 할 것인가? 짧지 않았던 시간, 생태 존중과 상상, 소트프 파워로 도시 창조를 했던 사례를 살펴보았다. 사진 속, 자전거를 타고 미소 짓는 아이 뒤로 보이는 곳이 고대 파로스 등대가 있었던 카이트베이 요새이다. 과학도시 대전이 새로운 문명의 등대가 되기를 소망하며, 대전의 길, 대전형 도시 모델을 찾고자 하는 여정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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