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펑황고성, 사라지지 않는 도시

지구촌 100개 도시, 30년 여행에서 만든 도시창조의 법칙

by 강대훈

명.청 시대의 시간여행, 이야기의 힘.


펑황에서 한국인을 만나지 못했다. 한국인들에게 인기있는 장가계와는 달리 그렇게 알려져 있지도 않다.

성격이 급한 한국인이 잘 가지 않는 곳에는 공통점이 있다. 오고 가기에 불편한 지역이다. 패키지 여행을 기획하는 여행사도 접근성이 좋지 않은 지역은 피한다. 상해에서 펑황고성까지는 1,300Km이다. 한국에서는 물론 북경이나 상해에서도 펑황까지 한번에 가는 항공편도, 한번에 이어지는 고속철도도 없다.


펑황고성(凤凰古城)은 중국 후난성(湖南省)에서도 변방인 샹시투쟈족묘족 자치주(湘西土家族苗族自治州) 펑황현(凤凰县)에 있다. 교통이 좋지 않은 병방인 관계로 묘족과 토가족은 자신들의 전통을 남길 수 있었다.


펑황고성 10평방 킬로미터 안에는 68개의 문화재 건축, 116개의 고대 유적, 120채 이상의 전통 가옥, 30곳 이상의 사원과 관람 시설들이 밀집되어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 목록에 등재되었으며 중국 국가 AAAAA 급 관광지로 지정된 곳이다.


명나라, 청나라 시대로 돌아온 것 같은 평황고성은 튀오강(沱江)을 중심으로 형성된 수변도시이다.



20140707_153225.jpg



여기까지 오고 가는 것은 만만하지 않았다.

나는 상하이 → 창사 → 길수 → 봉황 경로를 따랐다.


1. 상하이 → 창사 구간에서 여행실수로 열차를 놓쳤다. 제 시간에 홍차오역에는 왔지만, 거대한 철도역에서 개찰구를 잘 못 읽었다. 눈 앞에서 멍청히 열차가 떠나는 것을 보고, 다시 발권부터 시작하여 창사남역까지 갈 수 있었다. 고속열차로 약 5~6시간 정도 걸린다.

2. 창사 → 길수 구간은 일반 철도로 7시간 소요된다. 그날은 호우에 창사로 들어오는 철로가 유실되어 열차가 줄줄이 결행했다. 밤을 새며 대합실에서 한없이 기다리다가 다음날 길수행 열차를 겨우 잡을 수 있었다.

3. 길수 → 펑황고성까지는 낡고 좌석이 불편한 버스로 2시간 정도 걸렸다.


20140706_222800.jpg



4. 봉황고성 도착 후 숙소까지 택사를 잡는 것도 만만하지 않았다.

결국 1박 2일 만에 봉황고성에 당도할 수 있었다.





펑황에 온 계기를 제공한 것은 젊은 작가 '쾅리리'가 쓴 '시간을 멈춘 여행'이라는 책이었다. 그 에세이는 일을 마치고 대전으로 돌아가는 길에 영등포역 좌판 서점에서 집은 것이다. 나는 대학생 작가 '쾅리리'의 감성과 세대 차이가 있었으나, 그녀가 묘사하는 펑황에 묘한 매력을 느꼈다. 언제가는 가야할 'Must go' 목록에 이 소도시를 올렸다. 몇 달 후 상해에서 출장을 마치는 날, 펑황으로 향했다.



펑황고성에 며칠 머물렀다.

물의 정령에 이끌리듯 날마다 강변을 걷었다. 묘족과 토가족의 고택들 사이에 있는 술도가를 찾아 백주를 마셨다. 아름다운 홍교와 풍우루를 바라보며 명. 청 시대의 골목에서 이저리 배회했다. 이방인은 젊은 작가가 묘사한 것처럼 시간을 멈춘 듯한 장면들을 경험했다.





나는 1992년 한. 중 국교 수립 전에 중국을 방문했다. 당시 공산당 나라에 가는 것에는 추천인과 번거로운 절차가 뒤따랐다. 청장년기에는 상해에 지사를 설치하고 대륙을 대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호텔에서 생활을 하고, 협력사의 대접을 받으면서 .... 무엇인가 중국 인민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중국인이 사랑하는 작가들과 그 배경이 되는 지역을 알지 모른다고 할 때 과연 내가 중국과 소통하고 있는 것인가? 라고 하는 의문이었다. 중국 혁명사와 쑨원과 마오쩌둥 전기 말고도 중국의 근현대문학을 알고 싶었다. 쾅리리를 통해 중국의 근현대 소설가 선충원(沈從文)을 알게 되었고, 그의 작품인 변성边城』은 펑황이 배경이었다.


꿈같은 며칠은 의자에서 잠시 졸았던 낮잠 보다 짧았다.


펑황까지 포함하여 열흘간의 일정을 마친 나는 귀국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여행의 흔적을 지우고 출근했다.


그런데 위쳇에서 한 장의 사진이 날아왔다.

펑황고성이 물에 잠긴 모습이었다. 날짜를 확인해 보니 펑황을 떠난 다음날이었다. 남쪽 지방에서 북상한 장마가 창사를 거처 평황을 덮친 것이다. 내가 걸었던 마을, 술도가를 찾아 배회했던 골목들이 물에 감겨 버렸다.


2025-05-06 19;06;03.PNG



장마와 홍수로 마을이 잠겨 버리면 주택과 건물이 붕괴한다. 도로와 교량이 떠내려가며 문화제들은 유실된다. 나는 그 사진에 충격을 먹었다.


펑황의 서사 공간은 근현대 작가 선충원의 《변성》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펑황의 거리와 골목에는 풍부한 역사와 문화적 맥락을 담고 있었다. 귀퉁이를 돌아 들어가면 갤러리가 있었고, 문학관이 있었고, 화방들이 있었다. 마을에는 오랜 시절을 지켜왔다는 술도가와 엿을 치는 공방과 공예점들이 있었다. 진귀하고 알수없는 식재료로 손님을 이끄는 노포의 현판과 편액들에 서체는 당당했다. 식당 안에도 액자에 걸린 그림들이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묘족과 토가족의 삶은 이야기들이었고 마을 전체가 엮이고 이어지는 스토리였다. 죽은 자를 걷게 만들어 집으로 돌아가게 한다는 샹시의 '시체 쫓기' 전설은 오래된 고성에 으스스함까지 더 해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펑황을 아끼고 찾는 이유는 고성의 아름다움 뿐이 아니라, 서사에 들어있는 수 많은 이야기들 때문이다. 펑황은 2014년 홍수에 휩쓸렸지만 재난은 빠르게 회복되었다. 많은 이들이 재난 극복에 동참했을 것이다. 성금이 답지하고, 구호의 순위도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마을을 우선시했을 것이다. 2019년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은 10시간 동안 불에 탔다. 그러나 그 건축물에 들어있는 이야기들은 하나도 태우지 못한다. 노트르담은 문화의 힘으로 재건했다.


몇 년 후, 나는 무의식에 잠겨있던 펑황이 떠올랐다.

인터넷을 통해 펑황을 살펴보았다.

그날처럼 신비로운 도시는 강물에 여전히 반짝이고 있었다.



20140707_215517 - 복사본.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도시 과잉, 도시브랜딩 어떻게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