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이다. 끝났다.
남편이라는 사람이 생겼다. 그와 떠난 신혼여행은 행복했다. 결혼 전 즐겼던 혼자 하는 여행 같은 것은 생각나지 않았다. 사랑하는 이 사람과 내가 좋아하는 여행을 함께 하고 싶었다. 봄에는 홍콩, 늦은 봄에는 통영, 가을에는 캐나다로 여행 계획을 잡았다. 나는 결제를 해야 떠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생각이 많아지고 망설여질 때 일단 비행기를 예약하고 결제를 하면 어떻게든 그 날 그곳을 여행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 신념에 따라 연초에 가을 비행기까지 세 번 여행 모두 예약을 마쳤다.
남편과 나는 늦게 만났고 빨리 결혼했다. 둘 사이에 시간과 추억을 쌓고 싶었다. 그래야 아기가 생기고 정신없이 생활을 이어가는 동안에도 가족이기 이전에 남자와 여자로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 추억이 평생 우리를 지켜줄 힘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마음은 2년, 3년도 더 원했지만 가을 여행까지만 욕심내고 그 후에 아기를 갖자 싶었다. 그중 첫 번째 여행을 2주 앞두고 붉은색 선 두 개를 마주하게 되었다.
아직 컴컴한 새벽이다. 아직 결혼한지 석 달 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저 물건에 저런 표시가 생겼다. 자는 남편을 깨웠다. "어떡해요?" 자다 깬 남편은 정신이 없어 보였다. "이게 뭐예요? 어떻게 된 거예요?" "두 줄이면 임신인 거예요. 나 어떡해요?"라고 말하고 누웠다. "그럴 리가 없는데. 이상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남편이 등 뒤에서 같은 말을 반복한다. "이제 그 말 그만해요. 그럴 리가 없다니. 그럼 이게 다른 사람 아기예요?" 엉뚱한 말로 신경질을 내고 다시 누웠다. 잠이 들었다. 꿈이기를 바랐다. 일어났다. 침대 옆에 붉은 선 두개가 아직 있다. 미용실이 예약되어 있는 날이었다. 머리를 자르고 밥을 먹었다. "정말 감사한 일이에요."라는 문장을 몇 번 말했던 것 같다. 남편이 내 옆모습을 찍었다. 멍한 표정이다. 다음 날은 휴가를 냈다. 높은 곳에 있는 카페에 갔다. 창 밖만 봤다.
누군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아니 무슨 세상이 끝나요?" 나는 아기를 갖기 전에 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 그런 내가 곧 끝날 세상을 앞둔 것 같아 보였나 보다. 결혼은 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기를 낳아 키우는 것은 기대되는 일이 아니었다. 결혼에 따라오는 의무감 같은 것이었다. 아기를 낳아보지도 키워보지도 않고 좋은 상담자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직업의식도 의무감을 거들었다. 1년의 신혼을 보내고 아기를 갖겠다는 나에게 남편은 "지금 생겨도 아기가 나오려면 1년은 걸려요."라고 했다가 된통 구박을 받았다. "임신하는 순간 모든 건 끝이에요. 그런 말 하지도 말아요." 뱃속에 아기가 생기는 것 만으로 나의 일상에는 제약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그 아기가 세상으로 나오는 순간 내 일상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열한 살 때 막내 동생이 태어났다. 부모님 그리고 두 살 터울 동생과 여행을 가고 외식을 하던 오붓한 시간은 모두 끝이 났었다. 여행 갔던 차 안에서 몇 시간을 울던 막내 동생에 대한 기억이 선명하다. 곧 죽을 것처럼 울었다. 차를 타도 울고 내려서 달래도 울었다. 너무 귀여워서 매일 데리고 다니고 싶은 동생이었다. 하지만 아기 키우는 것을 상상할 때 사랑스러웠던 동생의 모습은 떠오르지 않는다. 육아는 귀가 먹먹한 울음소리다. 모든 일상의 멈춤이다.
그런데 아기가 생겼다. 내 뱃속에 아기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