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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나무 Feb 09. 2016

꽃이 진다.

임신_나의 자유롭고 가벼웠던 시간이 진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월요일에 비가 온다는 것을. 그러면 그 비에 젖고 날려 꽃잎이 다 지고 만다는 것을.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지난 주말에 벚꽃구경을 나섰다고 한다. 출근길에 보니 정말로 꽃이 많이 졌더라.


'꽃이 진다. 하지만 많이 아쉽지는 않다. 연둣빛 잎들이 보이기 시작했으니'

라는 말이 중얼거려졌다.

'나의 자유롭고 가벼웠던 시간이 진다. 하지만 많이 아쉽지는 않다. 처음 느껴보는 수많은 감정을 마주하기 시작했으니'

라는 생각이 뒤를 이었다.


내 안에 새로운 생명이 찾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날을 미리 알았더라면 나는 무엇을 미리 해두었을까. ‘연말에 만나자.’ 라고 혼자 생각했었다. 그리고 '언제 찾아오더라도 감사히 맞이해야지.'라는 생각도 해두었다. 첫 날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되뇌며 정신없이 보냈다. 두 번째 날은 휴가를 냈다. 몸이 피곤해서인지 마음이 피곤해서인지 쉬고 싶었다. 세 번째 날은 기분이 좋았다. 그러다 멍해지기를 반복했다. 편치 않은 상태가 이어졌다.


 ‘아가야, 엄마도 네가 느끼는 모든 감정을 존중해줄게.’라고 혼자 배를 어루만지며 약속 했다. 아가에게 양해라도 구한 기분이었다. 그리고는 지금 느껴지는 감정을 다 마주해 보았다. 무조건 감사한 것도 맞다. 사는 것이 계획대로 안 되는 것 치고는 무지무지 긍정적인 방향이다. 하고 싶었던 것들, 누리고 싶었던 시간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다. 아기를 낳는 것도 밥을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우는 것도 다 두렵다. 이제 ‘나’로 즐기는 인생은 끝난 것인가 하는 낭패감도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남는 것은 미안함이었다.


 '미안해. 더 많이 준비된 엄마로 맞이하지 못해서 미안해.'


남들은 결혼 전부터 챙겨먹는다는 엽산도 한 알 안 먹었다. 풍진 항체 검사도 미뤄왔다. 하고 싶은 일이 많았다. 만나고 싶은 사람도 많았다. 술자리는 즐거웠다. 아기의 존재를 알게 되기 이틀 전에도 친구들과 와인을 마셨다. 대화 주제는 임신이었다. 친구는 남편과 닮은 존재가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있어서 뭐하게? 난 괜찮아."라고 했다. 친구들은 나중에 가지려 해도 아기가 찾아와주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아기를 맞이하기 위한 어떤 준비도 되어있지 않았다. 몸은 챙기지 않았고 마음은 아기를 멀리하고 있었다. 가장 미안한것은 아기의 존재를 알게 된 순간이다. 영화에서 본 것 처럼 하지 못했다. 임신 테스터를 손에 쥐고 감격하며 남편에게 달려가지 않았다. 감사하다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지도 않았다. 머리와 입으로는 감사한 일이라고 했지만 마음은 불편했다. 아기에게 미안해서 눈물이 난다.


마음이 간결해졌다. 복잡함의 끝이 미안함인 것에 안도했다. 다시 배를 어루만져 본다. 설겆이 중인 남편 뒷모습이 보인다.

'미안함만 있는건 아니야'라는 생각이 삐져나온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했다. 예전부터 듣고 싶던 강좌를 신청했다. 퇴근 후 즐겁게 배우고 있었다. 밤늦게 집으로 돌아가면 남편이 전철역으로 마중을 나왔다. 결혼 전처럼 내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남편과의 행복한 순간들이 더해졌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가의 심장이 그 행복을 온전하게 담고 있기를 바래본다.





우리 아가 이름은 '꿈꿈’이다. 자신의 진짜 꿈이 뭔지 알고 그 꿈을 사는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 꿈을 향한 선택들을 응원하는 엄마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하는 마음도 태명에 담았다. 꿈꿈이는 벌써부터 참 착하다. 전보다 피곤한 것 말고는 나를 힘들게 하는 일이 없다. 그래서 “잘 있니?” 라고 매일 물어보게 된다. 잘 있다고 한다. 2센티도 안되는데 머리랑 몸통이랑 팔 다리까지 다 생겼다고 하니 너무 귀엽고 신기하고 기특하다.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떤 곳에서 일하고 싶은지, 어떤 사람과 어떤 사랑을 하고, 결혼하고 싶은지, 어떤 결혼식을 하고 싶은지, 어떤 신혼 생활을 하고 싶은지. 언젠가부터 꿈을 그렸다. 그리고 그 꿈을 살았다. 잠시 잊었던 사실이다.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은 여전히 가까이에 있다. 그렇다고 꽃이 지는 것을 아쉬워만 하며 지내는 것도 내 스타일은 아니다. 어떤 임산부로 살고 싶은지, 어떤 출산을 하고 싶고, 어떤 엄마가 되고 싶은 지도 꿈꾸고 싶어진다. 조금 설레기 시작한다. 다행이다.


+ 지난 봄. 아기가 나를 찾아왔을 때의 마음 이야기.

조리원에서 "엄마가 태교를 잘했나봐요."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신생아인 꿈꿈이는 편안하고 행복해보였다. 태교를 잘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내가 꿈꿨던 임신부로 살기는 했었다. 지난 봄의 마음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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