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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나무 Apr 02. 2016

별로인 날의 도망

임신부 혼자 여행하기

+2015.9월 나홀로 태교여행


운전 중이다. 조수석 앞 유리에 왕나방 같은 것이 파닥거린다. 차를 멈췄다. 운전하고 있는데 얼굴 쪽으로 날아들면 큰일이다. 일단 창문을 모두 열고 차 밖으로 나왔다. 양산 손잡이 부분으로 나방 옆 유리를 툭툭 쳤다. 꼼짝하지 않는다. 반대편에서 해봐야겠다. 다시 보니 나방이 없어졌다. 차 구석구석을 살펴봤다. 어디 숨어있을까봐 무서웠다. 없는 것 같다. 다시 차를 탔다. 운전하면서도 차 안을 흘깃 봤다. 전화가 왔다. 통화를 하려고 속도를 줄이며 차를 길 옆으로 세우고 있었다. 갑자기 머리 위 천장으로 그 나방이 날아왔다.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왔다. 나방은 다시 앞 유리 사이에서 파닥였다. 차에 굴러다니던 전단지로 이번에는 나방을 직접 건드렸다. 파닥이던 나방이 드디어 차 밖으로 나갔다. 살았다. 다시 전화해 통화를 마치고 가던 길을 계속 갔다.


숙소 가는 길에 있는 카페다. 작은 카페에 사람들이 꽤 있었다. 남아 있는 자리에 가방을 올려놓았다. 지갑을 꺼내고 고개를 드는 순간 깜짝 놀랐다. 테이블 옆 선반 위에 고양이가 웅크리고 있었다. 다행히 나는 놀랐다고 소리를 지르는 사람은 아니다. 그럼에도 뒷 편에 앉아있던 아저씨가 내 놀란 모습을 발견했다. 사장님에게 고양이를 치워달라고 했다. 카페 끝 창가 자리로 옮겼다. 고양이가 그 쪽으로는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주문을 하러 카운터로갔다. 고양이는 문 쪽에 있었다. 사장님에게 고양이가 한마리인지 물었다. 내가 조심해야 하는 대상을 파악해야 했다. 두 마리인데 한 마리는 지금 자고 있다고 한다. 음료를 시키고 자리로 왔다. 책을 폈다. 잘 읽히지 않는다. 창밖 초록과 책을 번갈아 보며 앉아있었다. 뒷 테이블에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가 안돼안돼라고 한다. 돌아보니 고양이가 다가오고 있다.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다가오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긴장됐지만 태연하게 앉아있었다. 고양이는소리없이 다가왔다. 어쩔 수 없이 벌떡 일어났다. 고양이는 단숨에 내가 앉아 있던 테이블로 올라왔다. 내가 먹던 요거트로 다가왔다. 그 와중에 요거트를 집어들었다. 처음에 나를 도와줬던 아저씨가 다시 사장님을 불러준다. 고양이를 데려갔다. 온 몸에 식은 땀이 쭉 났다. 마침 동물을 무서워하는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지금 상황을 문자로 얘기했다. 힐링하러 갔다가 애 잡겠다고 한다. 다시 평온이 찾아온 것 같았지만 계속 뒤가 신경쓰였다. 잠시 후 카페 손님이 모두 갔다. 더이상 내게 고양이가 다가오는 것을 알려줄 사람이 없다. 나도 나왔다. 몸에서 여전히 긴장이 느껴진다. 숙소 가가까이에 있는 화순금모래해변으로 향했다. 차를 세웠다. 금모래 해변은 모래가 검다는 뜻이었나보다. 검은 모래 해변 때문인지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우중충했다. 차 앞으로 한 아저씨가 지나간다. 막걸리 병을 들고있다. 약간 취해보인다. 개짖는 소리가 들린다. 오른쪽 식당 앞에 줄에 묶이지 않은 개가 짖고 있다. 위를 보니 2층에는 큰 개가 세 마리가 더 있다. 세상이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어제는 분명히 반짝이는 제주를 봤다. 오늘 아침만 해도 반짝였다. 그런데 지금은 어둡고 무섭다.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무서워. 남편은 전화하라는 뜻의 다른 말들을 잘 알아듣는 편이다.  전화를 붙들고 나방부터 고양이 해변의 개들 이야기까지 마쳤다. 우는 목소리로 나의 오후를 하소연 했다. 너무 무서워 집에 가고 싶다고 했다. 남편은 전화너머에서 웃는다. 내가 무섭다는데 웃음이 나오냐며 더 크게 우는 소리를 낸다. 나사랑해 안 사랑해. 내 고정멘트를 말한다. 남편은 자동적으로사랑하죠라고 한다. 그래 알겠어. 아무튼 무서운 하루였어라고다시 정신차린 목소리로 말했다. 남편이 왜 갑자기 목소리가 바뀌었냐고 한다. 힘들어서. 징징거리는 것도 힘드네라며 진상놀이를 끝냈다. 동물을 무서워하는 것이 가끔 불편할 때가 있다. 제주 여행에서는 더욱 힘들다는 것을 느끼는 오후였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두번째 숙소로 갔다. 후기를 찾아보고 싶었지만 검색 페이지 내내 숙소에서 직접 올린 글들만 보이던 곳이었다. 내부에 비해 외관이 아쉽다는 글을 봤었다. 그래서 허름한 외관은무시하고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갔다. 상황은 외관과 같았다. 방마다 독립된 공간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어두운 복도를 지나 맨 끝방으로 갔다. 모텔에 온 것 같은 어둠이었다. 모텔 역시 방들이 독립되어 있고 조용하다. 사장님께서 캐리어를 방에 들어다 주었다. 친절했다. 멍하게 서 있었다. 사진에서 본 것과 너무 달랐다. 블로그의 방 소개를 다시 검색해봤다. 같지만 다른 방이었다. 뽀샵에 속지 말아야 할 것은 소개팅 대상 뿐이 아니었다.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 슬리퍼가 따로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차에서 내 슬리퍼를 가져와야겠다. 숙소 문을 나서는 나에게 여자 사장님이 방 마음에 들죠라고 묻는다. 닫힌 질문이다. 마음에 든다는 대답만 해야할 것 같다. 그렇지 않았더라도 마음에 안 든다고 못했을 것이다. 차에서 슬리퍼를 챙겨 다시 방으로 왔다.


일단 씻자. 화장실 앞에 온수가나올때까지 시간이 걸리는 점을 양해해달라고 써 있다. 세면대에서 양치를 먼저 했다. 생각보다 온수가 금방 나왔다. 이번에는 샤워기를 틀었다. 온수가 늦게 나오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물줄기가 약했다. 아다지오로 씻을 수 밖에 없는 샤워기 때문에 숙소 이름이 아다지오인가보다. 천천히 씻으니 화장실을 자세히 살펴보게 된다. 필리핀이다. 꿈꿈아 여기는 필리핀인가봐. 필리핀 여행을 가면 이런 곳에서 머물게 된단다. 비슷한데 거기는 도마뱀도 있어. 씻고 나와 침대에 누웠다.하얀 천장과 모서리가 볼수록 필리핀이다. 꿈꿈아 오늘하고 내일은 엄마랑 필리핀에 왔다고 생각하고 자자. 침대에 누우니 빨래 냄새가 강하게 느껴진다. 금새 눅눅해지는 곳이다. 그래서 세제를 많이 사용하나보다. 머리가 아프다. 침대에 누워 음악도 듣고 책도 본다. 한달 전에 찾아둔 제주 카페 목록도 다시 뒤적인다. 내일은 아침일찍 나가서 밤 늦게 돌아올 것이다. 이 숙소에는 잠시만 머물 것이다. 그러기 위해 스케쥴을 알차게 짰다. 열시에 잠이 들었다.


여섯시에 눈이 떠졌다. 한 시간 쯤 뒹굴거린다. 아다지오로 어떻게 머리까지 잘 감을 것인지를 생각한다. 천천히 꼼꼼하게 씻었다. 천천히 씻으니 이번에는 중국 생각이 난다. 대학교 1학년이었다. 학교에서 사람을 모아 중국 하얼빈의 초등학교로 한달 간 어학연수 겸 여행을 가는 프로그램이었다. 샤워실이 완비되어 있고 빨래도 해준다고 안내되어 있었다. 한 조에 8명씩 다섯조 정도로 구성되어 출발했다. 같은 학교지만 학과가 달라 처음 보는 사람들과 한 조가 되었다. 동네의 작은 초등학교였다. 방마다 2층 야전침대가 네 개 있었다. 공동으로 쓰는 화장실에는 문이 없었다. 칸막이는 허리 높이었다. 볼일을 볼 때 앞에서 다 보이는 방식이다. 끝내고 일어서면 옆 사람의 볼일을 다 보게된다.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샤워 시간이 됐다. 샤워실 완비라던 안내문이 의심되기는 했다. 처음 만난 사이 8명이 함께 샤워실로 향했다. 교실 하나 크기만한 공간이었다. 가운데에 레버가 하나 있었다. 그것을 돌리니 천장 여섯 군데서 물이 쏟아졌다. 불이 났을 때 작동하는스프링쿨러와 비슷했다. 레버를 다시 돌리면 모든 물이 멈춘다. 군대를가보지 않았지만 군대식인 것 같다. 우리는 빨리 친해졌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적은 물로 어떻게하면 깨끗하게 씻을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해갔다. 필리핀에 이어 중국까지 떠올리고 나니 웃음이 나왔다. 그 때 터득한 기술을 떠올리며 깨끗하게 씻었다. 상쾌했다. 다시 방을 둘러본다. 낡은공간을 깨끗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눈에 들어온다. 어제보다는 조금 더 정이간다. 그래도 서두른다. 짐을 챙겨 밖으로 나온다.


송악산으로 향한다. 산방산을 지나 사계리 해안도로로 들어간다. 제주 남쪽이라 남해의 바다색과 닮았나보다. 짙푸른바다가 빛을 받아 반짝인다. 산방산과 형제섬이 함께 보이게 사진을 찍는다. 예쁘다. 차를 몇 번을 세웠다 다시 간다. 도착했다. 아직 사람이 별로 없다. 정자에 앉는다. 오늘도 눈 앞에 만개의 빤짝이가 펼쳐진다. 아드리아해를 같이 보았던 친구에게 사진을 보낸다. 크로아티아가 유명해지기 전 그 곳의 골목 사진들에 끌렸다. 크로아티아를 품고 있는 바다가 아드리아해라는 예쁜 이름인 것도 마음에 들었다. 아드리아는 짙은 남색이었다. 그곳에서 시야가 흐릿해질때까지 반짝이들을바라봤다. 바다 앞 카페에 앉아 있다가도 친구한데 나 잠깐 다녀올게 하고 반짝이들 앞에 서 있었다. 송악산 앞에도 아드리아가 있다. 제주바다와 아드리아를 번갈아 바라보며 앉아 있다. 정자 밖은 뜨겁지만 안에서는 시원한 바람이 분다. 눈이 시리다. 선글라스를 끼고 더 한참을 바라본다. 관광버스가 하나 둘 도착한다. 사람들이 정자를 지나쳐 송악산으로 오른다. 다행이다.  중국 사람들이 정자로 들어와 앉는다. 가운데에 앉아 있던 나는 그들이 같이 앉을 수 있게 가장자리로 자리를 옮겨준다. 한국인 아저씨가 그들에게 다가와 중국어로 말을 건다. 아저씨에게 중국어를 잘 한다고 칭찬한다. 아저씨는 혼자 공부했다는 것 같다. 여행 다녀온 중국의 사진을 그들에게 보여준다. 그들이 잘 모르는 곳도 있나보다. 하얼빈 초등학교에서 군대식 샤워를 하며 배운 중국어 실력으로 그 정도 분위기 파악을 마쳤다. 정자 난간에 앉은 아저씨가 나를 사이에 두고 그들과 대화를 계속하니 반짝이가 잘 보이지 않는다. 정자에서 나와 바다 가까이로 간다. 반짝이를 좀 더 눈에 담고 차로갔다. 필리핀 방과 중국 샤워실에서 부지런히 나오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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