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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나무 Jun 05. 2017

아가야 이런 모습 어때

나홀로 태교여행_제주_파주




꿈꿈아 엄마는 네가 이런 모습을 가진 사람이면 좋겠어.


한없는 푸르름을 가진 사람.

한 켠의 반짝거림까지 갖고 있는 사람.

한국적인면이 분명 있음에도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사람.

하나의 그림으로 보이지만 하나씩 자세히 들여다보면 끝없는볼거리가 펼쳐지는 사람.

편안함과 설렘이 공존하는 묘한 느낌이 드는 사람.

그래서 사람들이 머물고 싶고 더 알고 싶어 하는 사람.


이건 엄마 바람일 뿐이야. 너 자신이 마음에 드는사람이면 좋겠어. 외모도 성격도 일상도 네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


사실은 이 풍경이 내가 살고 싶은 모습이구나.


잔잔하고깊은 푸른 바다같은 느낌을 주는 엄마.

외국에 온 듯 특별해 보이지만 한국의 모습을 담은 편안한 엄마.

넓은 엄마로 살면서도 한 켠에는 반짝거림을 내내 갖고 있는 여자.


빛으로 나가 따뜻하고 눈부시게 아이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원할 때는 그늘에 서서 시원한 바람을 느낀다. 나는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살게 될까. 아이들을 행복한 눈으로바라본다. 자꾸 바라보니 아이의 맑음을 닮아간다. 아이의이야기를 마음을 열고 들어준다. 가족이 다 함께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아이들은 자신이 사랑스러운 사람이라는 확신이 있다. 마음껏 세상을 경험하고 누린다. 나는 많은 일들을 여유있게 처리한다. 가족의밥상을 정성껏 차린다. 가족이 잠들고 난 뒤 혼자 시간을 가진다. 가족이 모두 각자의 일을 하는 낮시간에도 내 시간을 가진다. 나는 따뜻한 상담자이자 강사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 아이들에게서 느낀 것들을 사람들과 나누고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얻은 큰 마음으로 우리 아이들을 본다. 남편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하기에 충분한 경제적 활동을 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니 즐겁게 일한다. 우리는 휴일이면 함께 평온하고도 특별한 시간을 갖는다.


여보 사랑해요. 당신을 만나서 내 인생이 너무다행이에요. 마음껏 사랑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요. 안전하다 느끼게 해줘서 고마워요. 당신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게 해주었어요. 당신이라는 안전지대를 등 뒤에 둔 느낌은 늘 따뜻해요. 우리 아이들도 당신과 내 사랑 안에서 그렇게 세상을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우리 아이들은 참 착할 것 같아요.




2015년 초가을, 첫 아이를 임신하고 혼자 제주로 일주일 간 태교여행을 떠났을 때의 이야기다. 저 자리에 앉아 창밖을 보는 순간 뱃 속 아이가 이 풍경을 닮았으면 하고 상상했었다. 그리고 일년 뒤 둘째 아이를 임신했다. 아들이라고 한다. 뱃속 아이가 딸일 때에는 많은 상상이 들었다. 아들이라고 하니 잘 상상이 되지 않고 말도 잘 안 걸게 된다. 다시 혼자 떠나는 태교여행을 계획하고 아들과의 대화를 그 때로 미뤄두었다. 역시 세상 많은 일들은 미룬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여행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도 않는다. 단 하루 주어진 혼자 시간에 나는 푹 쉬었고 뱃 속 아들과 함께 멋진 일몰을 감상했다. 그리고 다시한번 이 아이가 닮아갔으면 하는 풍경들을 눈과 마음에 담고 돌아왔다. 이제는 미루지 않고 지금부터 뱃속 아이와 많이 얘기해야겠다.



 새싹아. 나중에 사랑하는 사람이랑 손 잡고 이렇게 해가 지는걸 함께 보렴. 안아도 주고 뽀뽀도 해줘.
해가 높은데서 가까운데로 내려오는 건 한참 걸리는 것 같아 보이는데 땅이랑 바다랑 강이랑 가까워지면 쑥쑥 내려와서 금방 사라져버려. 중요한 순간이 끝나버리는건 정말 잠깐이어서 그 때는 한 눈 팔지 말고 가만히 조용히 들여다보는게 좋아. 네가 보고 싶었던 거라면 말이야. 근데 혹시 놓쳤더라도 괜찮아. 해가 들어간 후에도 한참 동안 하늘 전체에 예쁜 색이 남아있거든. 그걸 구경해도 돼. 언제나 방법은 있어. 새싹아. 사랑해. 오늘 나랑 같이 해 지는거 구경해줘서 고마워.



사실 여기 오기 전부터 이 풍경을 상상하며 왔어. 너에게 보여주고 내 마음에 담아가고 싶었거든.


책이 가득한 책장.

하지만 답답하거나 복잡해보이지 않는 모습.

세월이 지나도 한결같지만 언제나 충분히 세련된 모습.

많은 것들을 알고 있지만 뽐내지 않고 조용히 담고 있는 사람.

그래서 많은 사람이 들르고 머무르고 싶어 하는 그런 사람.
한 켠에는 따뜻한 햇빛 아래서 시원한 연두색 잎을 가득 머금은 모습.

든든해보이지만 무겁지 않은 모습.

주변에 있는 풀과 나무와 벤치와 건물과 무엇과도 잘 어우러지는 모습.


너도 마찬가지야. 그냥 너도 바라는 모습이라면 닮은 일상을 살기 바래. 그저 엄마의 생각일뿐이야.


아들의 모습은 상상하고 나니 남편의 모습이다. 남편은 많은 것을 담고 있지만 자랑하지 않는다. 사람들을 찾아 나서는 성격은 아니지만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찾아오고 머무르고 싶어한다. 나만 믿어 나한테 기대. 이런 말을 하지 않지만 늘 내가 기댈 수 있도록 큰 모습으로 가까이에 있다.


감사한 일이다. 딸에게 바라는 모습에게서 나를 보고 아들에게 바라는 모습에서 남편을 본다. 이미 가진 모습을 바래서 다행이고 이미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더욱 다행이다. 한 편으로는 나와 남편에게 있는 모습만 보이고 바라게 되는건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가진 그들만의 보석같은 모습도 알아봐주는 그런 엄마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 모습들을 응원하고 지지해주고 싶다.


.... 그런데... 이토록 나를 쏙 빼닮은 딸의 모습은.. 봐도봐도 당황스럽다.. 이제 좀 덜 드러눕고 휴대폰 사용을 자제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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