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자로서 온전한 나를 바라보기
나의 예명 ‘파트타임 엄마’, 줄여서 ‘파마’는 한부모 가정의 가장으로서 부모 2인분의 몫을 해야 하지만, 실상은 0.5인분조차도 못하는 ‘반쪽짜리 엄마’를 의미하는 자조적인 닉네임이다. 몇 해 전 육아 팟캐스트 방송을 직접 진행하게 되면서 예명이 필요해 고심 끝에 지었다.
당시 팟캐스트 방송 타이틀은 ‘같이 자라는 엄마 아빠’를 줄여 ‘같자엄빠’라고 이름 붙였는데, 이 역시 자기비하가 내포된 중의적 명칭이다. 소리 내 읽으면 ‘가짜 엄빠’가 되는 까닭이다. 마음만은 부모로서 아이와 동반성장하고 싶지만, 현실은 ‘가짜와 다를 바 없는 부모’라는 것이 내가 스스로에게 투영한 자아상이었다.
이런 내가 엄마라니... 열두 해째 반복되는 자기비하
해가 바뀔 때마다 나를 각성케 하는 것은 대개 내 나이가 아닌 아이의 나이였다. 매년 반복해온 ‘이런 내가 n살 아이의 엄마라니’ 류의 탄식 겸 자기비하 내지는 자기반성은 올해로 벌써 ‘이것밖에 안 되는 내가 벌써 열두 살 아이의 엄마가 됐다니’를 맞았다.
시간이 이만치 흘렀으면 이제 온전해 질 때도 됐는데, 양육자로서의 자기상은 여전히 반쪽짜리 엄마, 가짜 같은 부모 수준에 그치고 있다. 그리고 양육자라는 역할에 있어 부족하고 자신 없고 못난 나를 받아들이는 일은 열두 해째를 맞는 지금도 어렵다.
다른 많은 역할에서 제아무리 그럴 듯한 성취를 해낸다 한들 자아는 움츠러들어 있었다. 아니, 양육자가 아닌 여타 역할에 시간과 에너지를 분배할수록 오히려 죄책감과 내적갈등은 커져만 갔다.
아이 낳은 이래 10년을 벼르던 대학원에 등록했을 때도, 처음으로 오롯한 나의 선택에 의해 원하던 분야로 이직했을 때도, 취미를 가져보겠다며 작은 음악장비를 집에 들였을 때도, 나빠진 건강 탓에 살기 위한 몸부림의 일환으로 처음 운동을 시작했을 때도, 비교적 이른 나이에 승진해 중간관리자가 됐을 때도, 그리고 이렇게 칼럼니스트라는 타이틀을 달고 시간을 쪼개 글을 쓰는 이 순간조차도 나는 스스로를 충분히 격려하고 안아주지 못했다. 반쪽짜리 엄마, 가짜와 다를 바 없는 부모에 불과하니까.
학교는 멈추었는데 직장은 더 숨 가쁘게 돌아간, 그야말로 돌봄재난이던 2020년 한 해는 그 죄스러운 감정이 그야말로 정점을 찍었다. 집안에서 내내 홀로 외로움을 견뎌야 하는 아이를 두고 매일같이 일터를 향하고 밖을 나돌아야 하는 내가 그렇게 부끄러울 수 없었다.
그러다 몸과 마음이 모두 병들었다. 나는 이 병들을 치료하기 위해서 또 시간과 에너지를 쪼개야 했다. 아이와 떨어져 보내는 시간은 더 늘어갔다. 이 악순환을 끊어낼 도리가 없었다.
"파마? '파더+마더' 다 해내니까 합쳐서 '파마' 아닌가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파트타임 엄마’, 줄여서 ‘파마’입니다.”
얼마 전, 오랜만에 ‘파마’라는 사회적 가면을 쓴 채 인사말을 건넸다. 한부모에 대한 차별을 다루는 한 팟캐스트 방송에 게스트로 나가서였다. ‘파마’의 의미에 대해 구구절절한 설명을 곁들이는데 이를 가만히 듣던 진행자가 넌지시 말했다.
“‘파더’와 ‘마더’ 역할을 다 해내니까 합쳐서 ‘파마’ 아닌가요?”
닉네임을 써온 수년 동안 한 번도 생각지 못한 발상이다.
‘한부모’라는 어휘 역시 내가 생각하는 뜻과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가진다는 걸 알게 된 것도 그 방송에서였다. 한부모의 ‘한’은 부모가 오직 한 명이라는 의미도, 한이 많다는 의미도 아니었다. ‘한가위’ 할 때의 ‘한-’처럼 ‘온전한, 충분한’ 영어로는 ‘full’의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행여 믿거나 말거나 개똥철학에 불과하대도 나는 이제 그 말을 믿어보려 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달리 바라보려 한다. 앞으로는 ‘파마’라는 사회적 가면을 써야할 때, 이렇게 인사를 건네겠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파더와 마더 역할을 다 해내고 있는, 저는 ‘파마’입니다.”
*칼럼니스트 송지현은 사회생활과 잉태를 거의 동시에 시작한 ‘11년차 워킹맘’이자 그동안 다섯 번을 이직(당)한 ‘프로 경력단절러’입니다. 한부모 가정의 가장으로서 2인분의 몫을 해야 하는 ‘시간빈곤자’이나 실상은 1인분, 아니 0.5인분조차도 할까 말까 하기에 스스로를 반쪽짜리 ‘파트타임 엄마’라 칭합니다. 신문방송학 전공 후 온갖 종류의 대필을 업으로 삼아왔지만 이번 연재를 통해 처음 자신의 이름으로 글을 쓰게 된 ‘생계형 글짓기 노동자’이기도 합니다.
*2021년 <베이비뉴스>에 기고한 칼럼을 브런치에 옮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