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가 석모도를 걷고 있는 그 시각. 또다른 여자는 도시의 사무실에 앉아 있다. 창문이 반밖에 열리지 않는 건물에서 근무하고 있는 여자는 날씨 변화에 둔감하다. 통유리창에서 쏟아지는 햇빛이 버거워 거의 블라인드를 치고 있는 탓이다. 물론 얼마 전에 장만한 차 덕에 지하에서 지하로 이동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어지간한 날씨 변화에는 신경쓰지 않게 된 탓이 더 크다. 휴일의 사무실은 냉난방을 가동해주지 않기 때문에 후덥지근하다. 빗소리가 들릴 정도로 비가 거세게 내리기 시작해서야 여자는 창문을 반쯤 연다. 도심 번화가의 소음과 빗소리가 고요한 사무실에 한꺼번에 흘러들어온다.
어차피 일이 있어 나온 것이 아니라 특별히 할 일은 없다. 뭔가에 집중하지 못하고 마우스가 가는 대로 이리저리 웹사이트들을 돌아다니고 있자니 메신저 창이 뜬다. 이 회사에 들어온 후 가입한 네이트온이다. 대화명만 봐서는 상대를 짐작하기 힘든 여자는 친구 목록에 들어가 오른쪽 버튼을 누른다. 눈팅만 하던 온라인 게시판의 까페에 가입한 후 네이트온 주소를 공개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친구 신청을 해온 남자다. 물론 한 번도 남자를 만난 적은 없다. 하지만 가끔 말을 걸어오는 남자에게 이런저런 대답을 하다 보니, 여자도 남자도 조금씩은 서로에 대해 알고 있다. 물론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확인 불가능하지만. 실제로 친구 추가 요청을 해오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놀라, 그 이후 여자는 공개했던 네이트온 주소를 삭제했다. 그래도 학교도, 직장도 모르고 그저 나이와 사는 동네 정도만 아는 온라인 대화 친구가 있다는 것은 생각 외로 편리한 점이 많았다.
어느 순간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이런저런 사회적 관계에 얽히기 시작하면서부터 여자는 가려야 할 말이 많아졌다. 여자뿐만 아니라 5년 이상 사회생활을 해온 여자의 주위 사람이라면 모두 그랬다. 이 남자와의 대화는 그런 것이 없다. 신경쓸 필요도 없다. 남자가 말을 걸어오면 대답해주고, 소녀시대부터 시작해 에이오에이까지 이어지는 걸그룹 예찬을 들어주고, 여자가 가입했던 온라인 까페의 이런저런 일정들을 알려주는 것을 듣고 있으면 사무실에서의 시간은 흘러가기 마련이었다. 남자가 열심히 활동하는 바이크 동호회의 얘기와 나이차이 많이 나는 커플의 이야기와 직장인들만이 알 수 있는 소소한 뒷담화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었기에 대화는 편안했고, 그만큼 부담이 없었다. 주말 오후는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