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섬을 품은 시인, 이생진을 추모하며

by 손동혁

가난한 시인이 펴낸 시집을

가난한 시인이 사서 읽는다

가난은 영광도 자존도 아니건만

흠모도 희망도 아니건만

가난을 시인의 훈장처럼 달아주고

참아가라고 달랜다

저희는 가난에 총질하면서도

가난해야 시를 쓰는 것처럼

슬픈 방법으로 위로한다

아무 소리 않고 참는 입에선

시만 나온다

가난을 이야기할 사이 없이

시간이 아까워서 시만 읽는다

가난한 시인이 쓴 시집을

가난한 시인이 사서 읽을 때

서로 형제처럼 동정이 가서

눈물이 시 되어 읽는다

- 이생진 「가난한 시인」


섬과 바다를 평생 노래해온 이생진(李生珍) 시인이 2025년 9월 19일 오전 6시, 향년 96세로 세상을 떠났다. 1929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나 서산농림학교와 국제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그는 1954년부터 1993년까지 성남중·보성중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교사와 시인의 삶을 함께 걸었다. 1955년 첫 시집 『산토끼』를 내며 문단에 나왔고, 196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어려서부터 바다와 섬을 사랑한 그는 칠십여 년 동안 1천 곳이 넘는 섬을 찾아다니며 섬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시에 담았다. 『그리운 바다 성산포』(1978)를 비롯해 『섬마다 그리움이』, 『먼 섬에 가고 싶다』 등 수많은 시집을 통해 그는 ‘섬 시인’으로 불리게 되었다. 제주도 명예 도민(2001), 신안군 명예 군민(2012), 성산 일출봉이 보이는 우뭇개 동산의 이생진 시비공원(2009)은 그의 시와 삶이 남긴 흔적들이다.


92세였던 2021년에는 연작시집 『나도 피카소처럼』을 펴내며 예술가의 집념을 보여주었다. 윤동주문학상(1996), 상화시인상(2002) 등을 받았지만 끝까지 삶과 언어를 더 소중히 여겼다. 『시와 시간들』 2025년 가을호에도 작품을 발표할 만큼 마지막까지 창작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시는 섬과 바다, 가난과 절망을 통해 한국어의 서정을 확장했다. “성산포에서는/사람은 절망을 만들고/바다는 절망을 삼킨다”(〈그리운 바다 성산포 11 절망〉)는 구절처럼, 그는 절망을 삼키는 바다와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기록했다. 이제 그는 더 먼 섬으로 떠났지만, 그의 시는 여전히 우리 곁에서 파도처럼 살아 숨쉴 것이다.


이생진 시인을 깊이 추모하며 그의 언어가 앞으로도 삶과 예술, 그리고 섬과 바다의 의미를 일깨워주길 바란다.



아,

올라오길 잘했다

눈을 속여서는 안 되지만

눈을 굶겨서도 안 된다

식후경食後景이란

눈을 굶기고 입만 먹으라는 말이 아니다


시가 배부르려면

눈이 잘 먹어야 한다

요즘 나는 밥보다 시를 먹는 기분이다


이렇게 쓰며 호룡곡산 정상에 올라

눈에게 식사 대접한다

- 이생진 「식후경-호룡곡산」


keyword
작가의 이전글판사봉과 피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