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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나나타르트 Apr 20. 2023

비가 오면

어제는 아침부터 제법 비가 내렸다.

세월에 닳아진 구두 틈 사이로 스며든 빗물에 양말이 젖을 정도였다.   

  

요며칠 황사가 소리도 없이 불어와 온 세상을 누런 먼지로 가두어 버리더니

어느틈에 내 기분까지 온통 누런 빛으로 바꾸어 놓던 참이었다.     


그래서인지 오랜만에 시원하게 내리는 비가 그저 반가웠다.

젖은 양말 때문에 발을 디딜 때마다 찝찝함이 느껴졌지만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었다.     


비가 그친 퇴근길

버스 정거장 뒤편 우면산과 그 위로 보이는 하늘이 유독 깨끗해져 있었다.     


나는 그 순간을 놓치기 싫어 한참을 바라보았다.     


빗물과 함께 씻겨 내려간 먼지를 털어낸 우면산과 하늘을 보고 있으니 어느새 내 기분도 그 투명함에 물들어가고 있었다.     


비가 내린 뒤

마치 물감을 풀어놓은 듯 더욱 선명해지는 세상을 보는 것은, 꼭 아픔이 지나간 자리를 보는 것과 같았다.     


한동안 사랑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어서 화를 냈던 나는,

그래서 많이 아팠던 나는,

어느순간 그가 단지 나와 달랐을 뿐이었다는 것을 알게되자 오히려 그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누런 먼지처럼 내 마음에 가득했던 슬픔이 사라지고

그를 사랑하는 마음만이 남아 더욱 선명하게 빛이 났다.     


나는 잊지 않기위해 버스정거장에서 바라보았던 우면산과 하늘을 사진처럼 찍어 머릿속에 넣어두며 생각했다.     


또 다시 비가 와서 내 양말을 적시더라도

또 다시 아픔이 찾아와 한동안 내 마음을 쑤시더라도

모든 것이 지나가면 전보다 더욱 선명하고 투명하게 정리될 것이라고     


문득 떠오르는 며칠 뒤 비소식에 오히려 반가움을 느끼며 나는 곧 버스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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