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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나나타르트 Jun 16. 2023

우리가 싸운 이유

한달이 넘게 글을 쓰지 못한 건 잘 쓰고싶은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여행을 다녀온 후라 쓸만한 이야깃거리는 많았지만 정돈되지 않은 말들로 풀어내기는 아까웠어요.

그래서 아예 쓰지 않는 쪽을 택했습니다.     


글을 쓰지 않는 동안 한가했던 것은 아닙니다.

저는 그동안 사랑하는 남편과 싸우며 가장 바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와는 최악의 계절을 보내는 중입니다.     


늘 자랑거리였던 우리의 사랑이 삐걱대기 시작한 이유는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어요.     

당신이 이해하기 쉽게 예를 하나 들어드릴게요.     


저보다 늦게 퇴근하는 남편을 위해 저는 매일 밤 남편의 이부자리를 정돈 해줍니다.

그리고나서 먼저 잠에 들어요.

그런데 남편은 매일 정돈된 이부자리를 보면서도 다음 날이면 으레 확인을 합니다.

그날 밤 제가 이부자리 정돈을 해주었는지를요.     


이런식의 묘한 간섭을 어느 순간 알아차리고부터는 그것만 보이기 시작했던게 문제였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싸움을 멈출 수가 없었어요.

이것만 뜯어고치면 더 나아질거라 생각해서 정말 열심히 싸웠습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마음을 다치고, 되도록 말수를 줄여나갈 뿐이었어요. 

그건 나아짐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남편을 이해하기 위해 싸웠지만, 이해 안되는 시간들과 더 많이 싸워야 했어요.

그러다 제 몸과 마음이 지쳐 떨어져 나갈 때 즈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를 온전히 이해하길 원했던 것이 제 욕심이었다는 것을요.     


하물며 저는 저조차도 이해를 못할 때가 많다는 걸 동시에 깨달았습니다.     

집착은 관계를 망친다는 걸 이미 경험하고도 또다시 발동하는 그를 향한 집착에 저는 섬짓함 마저 느꼈어요.     

저는 어쩌면 저를 이해하지 못해서 남편을 이해하고싶은척 그렇게 열심히 싸웠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제 이해하기를 멈추었습니다.

남편이 잘했다는 것은 아니에요.

그저 악의가 없었을 남편의 표현방식을 받아들이기로 인정했습니다.

그러자 싸움이 멈추었습니다.          


얼마 전 광주로 여행을 다녀오는 길에 폭우가 내렸어요.     

폭우를 만날 때마다 언젠가 꼭 한번 폭우 속으로 뛰어들어 흠뻑 젖어보고 싶다는 상상을 합니다.

우산을 쓰면 발 뒤꿈치를 들고 걷게 되지만, 비를 맞으면 비록 온몸이 젖어도 오히려 자유로울 수 있거든요. 그럼 장난도 치고 웃을 수 있으니까요.  



아마도 남편과 저는 지금 폭우 속을 걷는 모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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