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지 Sep 19. 2023

결혼이란 대체 뭘까

'고리오 영감', 오노레 드 발자크

'결혼'이라는 단어를 검색창에 입력해 본다. 이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확인하고 싶은 이유였건만, 가장 먼저 뜨는 건 파워링크 속 사이트 이름들이다. 상류층 결혼정보회사, 상류층 중매전문가, 전문직 성혼매칭 등 아주 직관적인 단어들이 한바탕 지나가고 나니 이번엔 통계청 조사가 나온다. 웃긴 건 '혼인건수'라는 단어는 작게 쓰여 한눈에 안 들어온 반면,  그 아래 나오는 관련 지표 속 '이혼건수', '평균이혼연령'이라는 단어가 더 크고 굵게 쓰여 단번에 눈에 들어와 나를 당황케 했다는 거다. 그 아래는 요즘 핫한 '결혼식 축의금'에 대한 기사가 나오고... 그렇게 한참을 내려가서야 결혼의 사전적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결혼(結婚)

남녀가 정식으로 부부 관계를 맺음


'나무위키'에서의 설명을 빌리자면, 결혼은 의례이자 계약이기에 사회적 구속력이 생기는 측면에서 연인이나 동거와 뚜렷하게 구분된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결혼을 통해 사회의 최소 단위인 '가정'이 생기기 때문에, 결혼은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이벤트 중 하나이기도 하다는 친절한 설명도 덧붙인다.

그런데 이러한 결혼의 사전적 정의에는 가장 중요한 무언가가 빠진 기분이 든다. 이게 다가 아닌데?


나는 그 중요한 무언가가 될 첫 번째로 '사랑'을 둔다.  세상이 으레 이야기하는 결혼의 조건 '사랑'. 숭고하고 아름다운 그 단어가 정작 사전의 정의 속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해서' 결혼하지 않는가. '사랑 없는 결혼'을 좋은 결혼이라 보는 이는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사전적 정의에 '사랑'이 빠져있다는 것은  결혼의 유래 자체가 '사랑'보다는 사회적 약속으로 인한 '부부의 탄생'에 더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가져온다. 그렇다면, '부부의 탄생'이라는 사회적 약속이 '사랑'을 제치고 당당히 결혼의 중심을 차지한 데에는 숨겨진 '찐'이 있구나 하고 나는 혼자 머리를 굴린다. 과연 그 숨겨진 '찐'은 무얼까?


나는 감히 그 '찐'을 결혼을 검색했을 때 내 눈에 가장 먼저 보인 그 단어, '상류층'이라 결론지어본다. 결혼이라는 사회적 계약을 통해 누군가와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이룸으로 얻게 되는 신분 상승. 그 상승이 물질적인 것이든 지위적인 것이 든 간에 그 상승을 꿈꾼 적 없다 자신 있게 말할 이가 몇이나 될까. 어찌 보면 '사랑'이라는 단어보다도 '상류층'이라는 단어가 결혼의 역사와는 더 오래 한 사이일는지도 모른다. 여성의 재산이나 지위가 인정되지 않던 시절은 더더욱 말할 것도 없을 테고 말이다.


딸들은 출가할 나이가 되자 각자 취향대로 남편을 선택할 수 있었다. 딸들은 각자 아버지 재산의 반을 지참금으로 가져가게 되어 있었다. 미모 덕분에 레스토 백작의 구혼을 받은 아나스타지는 귀족적인 성향을 지녀, 아버지의 집을 떠나 상류 사회로 성큼 도약할 수 있었다. 델핀은 돈을 좋아했다. 그녀는, 독일 출신으로 신성 로마 제국의 남작이 된 은행가 뉘싱겐 씨와 결혼했다.


고리오 영감의 딸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먹고 자란 덕과 아버지의 부로 각각 다른 모양의 신분 상승을 얻어낸다. 자신들이 생각한 결혼의 '찐'을 이뤄낸 그녀들은 분명 결혼이 성사될 때, 그리고 결혼 초반에는 행복했을 것이다. 그런 그녀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테고 말이다. 그러나 그녀들은 결국 부부라는 관계를 사전적 정의 속 '사회적 계약'으로만 남겨두고 '사랑'은 다른 곳에서 찾기 바쁘다. 남편들 역시 다르지 않다. 부부가 각자 자신의 '사랑'을 결혼 밖에서 찾고 있으며, 결혼과 가정 안에는 '대외적으로 옆에 둘 만한 여자'와 '상류층으로의 신분 상승을 유지시켜 줄 남자'의 아슬한 연대 관계만 남아있을 뿐이다. 결국 두 딸들의 결혼에 닥치는 위기 역시 부부간의 갈등이나 배신이 아닌 '돈', 곧 '신분 유지의 위기'로 인해 야기된다. 남편들이 그녀에게 요구하는 것도 예외 없이 결혼에 있어 회복해야 할 신뢰나 사랑이 아닌 '돈'과 그녀들 지분의 '몫'이다.


아나스타지, 난 모든 걸 침묵 속에 묻어 버렸어. 우리는 계속 같이 살 거요. 우린 자식들도 있으니까. 난 트라유 씨를 죽이지 않을 거요. 죽이려다 실패할 수도 있을 테니. 다른 방법으로 그를 없애려면 인간 사회의 정의와 정면충돌하게 될 테고. 당신 품 속에 안긴 채로 그놈을 죽인다면 그건 자식들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이 될 거요. 하지만 당신이 낳은 아이들, 그 애들의 아버지, 나, 이 중 누구도 파멸하는 꼴을 보지 않도록 내가 당신에게 두 가지 조건을 제시하겠소. 대답하시오. 당신이 낳은 자식 중에 내 아이가 있소?  


나는 왜 백작의 이 서늘한 대사를 보면서 <더 글로리 2> 예고 속 하도영과 전재준, 박연진이 생각나는지! 나만 그런 건 아닐 거라 믿고 싶다. 허허.


200년이 지난 지금, 여성은 재산과 지위를 가질 수 있고, 계급이나 신분 차이가 사라진 평등의 시대가 왔으며, 결혼은 그 어느 때보다 결혼 당사자들만의 사랑과 신뢰가  중요시되고 있다. 그럼에도 주변에서 들려오는 결혼에 대한 이야기들은 어찌하여 이 고릿적 책 속의 내용과 결이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까. 신분 상승은 자신의 종족을 번식시키고픈 동물적 본능의 진화단계인 것일까.

사랑은 더 어렵다. 결혼이라는 것을 다짐하게 만드는 그 숭고한 두 단어는 결혼식장의 개수만큼이나 모양과 농도, 깊이가 다르다. 고리오의 딸들과 같은 이들에게는 사랑이 신분 상승의 욕구와 같은 감정이거나 본능에 가까운 성욕일 수도 있고, 고리오 영감과 같은 이에게는 희생, 무조건적인 헌신 등의 모습일 수도 있다. 이 중에 어떤 사랑이 옳고 어떤 사랑이 그르다 말하는 것만큼 오만하고 어려운 것이 있을까.

 너무나 사랑했던 남자 친구를 정리하고 능력 있는 남자를 찾아 결혼한 뒤, '나는 결혼도 잘했고 애도 둘이나 예쁘게 낳았고 집안도 좋으니 다들 무척 행복할 거라 생각할 텐데, 나는 그만큼 행복하지 않아서 우울하다'며 가출을 감행하여 내게 전화하던 그 언니는 과연 그 우울의 원인을 지금쯤은 찾았을까 궁금해지는 밤이다.


결혼이란 대체 뭘까.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딸"이라 부르기까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