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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지 Sep 22. 2023

돈이란 바로 삶이야

'고리오 영감', 오노레 드 발자크

어제저녁부터 틈틈이 오늘 아이들을 보내고 어느 카페에 가서 공부할지에 대해 짐짓 진지한 검색을 했더랬다. 나의 이 설레는 혼자만의 시간을 충분히 만족시켜 줄 그런 곳 말이다. 아침에 아이들을 보내면서도 이어지던 그 검색은 근처의 한 카페를 선택했다. 선택은 탁월했다. 가오픈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아주 근사하고 조용한 카페였다. 두어 시간의 행복한 자유를 누리고 슬슬 늘어나는 손님들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앞쪽 테이블의 엄마들 대화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걘 신발도 제대로 안 신고 선생님이 나오면 막 도망간대."

"나 진짜 스트레스라니까. 선생님이 우리 애가 착하다고 걔랑 짝을 해놨는데, 걔가 글씨도 아직 제대로 못 쓰는 애니까 우리 애 알림장에 걔 알림장까지 써줘야 해서 시간이 배는 드는 거야."

"그런 애를 교실에 둬야 하는 거야?"

"난 칭찬받으라고 그런 일 하게 하는 거 싫어."

순간 가슴이 쿵 했다. 귀에 우연찮게 들려온 그 목소리에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다. 지난주 일찌감치 열린 개별화회의에서 담임선생님의 목소리가 생각났다.


"아직 제가 이틀밖에 안 봐서 어떻다고 말씀드리긴 너무 이른 것 같고요. 제가 본 바로는 교실에서 조용히 있고.. 뭔가 집중해서 하긴 하는데, 그게 수업을 잘 따라오는 것 같진 않아요. 그리고 아이들이 아직 OO 이에 대해서 잘 모르더라고요? 옆 친구들은 수업을 잘 따라오라는 식으로 '여기엔 글 써야지.'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데 OO이가 대답을 안 하니까 좀 신경질적으로 대응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니까 OO이가 기분이 나빴는지 칠하고 있던 색연필을 앞으로 던졌어요. 그래서 제가 다가가서 이야기를 하긴 했어요.."


작년에 아들에게 유난히 살뜰했던 여자친구들에게 따로 표현은 못했지만 늘 고마웠는데. 그 아이 엄마들도 저렇게 생각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쿵쾅거려 더 이상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마침 일어나려 준비하던 중인 게 얼마나 다행이던지.

때때로 잊고 살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을 이런저런 생각들이 삽시간에 나를 덮쳐오면, 내겐 시냅스를 타고 가장 먼저 도달하는 결론이 있다. 주차장을 향하며 나는 그 결론을 혼자 나직이 내뱉었다.

"돈이 많아야 해. 나 진짜 돈 많이 벌 거야."


이 결론이 얼마나 유치하고 단편적인지 깨닫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지만, 아버지에게서 어렸을 적부터 들은 가난의 설움과 내가 살며 돈으로 인해 느낀 무력감은 내 신경전달물질 속에 가장 깊숙이 박혀있는가 보다.


아들을 데리고 서울 큰 병원 센터를 다니던 시절, 저 엄마는 번지수를 잘못 찾고 왔나 싶게 차려입고 오는 엄마들을 종종 봤었다. 언어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는 선배 언니는 자신이 하던 약국을 그만두는 대신 치료실을 대신 다녀줄 분을 구하곤 여의도에 카페를 차려냈다. 아이 치료실 오는 게 그렇게 기분 좋은 일일까 생각했었고, 원래도 돈 많은 집인데 엄마가 같이 다녀주는 게 낫지 굳이 저렇게 돈을 벌어야 하나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와 생각해 보니 그들은 모두 그들 나름으로 현명했다. 화려한 엄마는 그 방식으로 자신의 재력을 과시함으로 겉으로나마 남들의 짠한 시선 내지 불평등한 시선을 차단시켰을 테고, 그 언니는 그 카페를, 더 나아가 그 부지를 아이에게 물려줄 수 있는 환경을 만듦으로써 아이가 후에 겪을 막연한 어려움 중 하나를 차단시켜 주었다. 속은 썩어 문드러질지라도 겉으로는 누구보다 화려했던 고리오 영 감네 딸들의 모습이라 할 수도 있지만, 이러나저러나 속 썩는 세상 겉으로라도 화려한 것도 하나의 살고자 하는 방법이라 하면 그것도 방법이다. 물론, 그 돈이 끊기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 조건 하에 말이다.


등골 브레이커처럼 아버지의 척수에 빨대를 꽂고 쪽쪽 빨아대고도 끝까지 징징대며 가능만 하다면 아버지 피에도 빨대를 꽂을 딸을 앞에서 불쌍한 고리오 영감은 외친다.


네가 수중에 돈을 지니고 편안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을 확실히 알기만 해도 내 모든 병이 나아지고 슬픔이 진정된단다. 돈이란 바로 삶이야. 돈이면 안 되는 게 없지.


고리오 영감의 저 대사가 오늘 내 혼잣말을 뱉게 한 내 머릿속 생각이었음이 가슴속 바늘이 되어 나를 콕 찌른다. 심지어 나는 마음만 그렇지 고리오 영감처럼 내 생을 마쳐 열심히 돈을 벌지도 않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외려 뻔뻔하게까지 느껴져 다시금 무력감이 내 몸을 타고 흘러내린다. 나에게 우리 아들이 나이 들어서까지 걱정하지 않을 넉넉한 재산이 있다면, 지금 당장 캐나다든 태국이든 떠나서 아이만 바라보며 살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그런 삶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삶에서 돈이 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돈이란 바로 삶이다는 말에는 자꾸 고개를 수그리고 아니라 할 수 없는 나의 서글픈 마음.


아들 5살, 처음 치료 신청을 위해 설문지를 작성했던 날.


아들은 또래 아이들이 가질 수 없는 천진하고 해맑은 웃음을 지녔다. 해사하게 나를 보며 웃는 걸 보면 세상 그 어떤 것도 부럽지 않은 행복을 맛본다. 그래서 더  슬프고 두렵다. 종종 말도 안 되는 억지와 짜증에 내 말이 하나도 이해되지 않음을 격하게 느끼는 날이면 잠든 아이 곁에서 이 아이의 미래가 컴컴한 심해같이 느껴져 나도 그 속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아직 닥치지도 않은 미래를 혼자 쏘다니면서 아들을 비웃거나 해하려는 사람들을 생각만 해도 멈출 수 없는 분노와 눈물로 상상의 대사를 펼치기까지 하는 우스운 나의 모습이란. 과연 내가 고리오 영감에 대해 뭐라 말할 처지가 될까.


그래, 네 아버지 여기 있다! 아, 나는 진짜 아버지야. 이 웃기는 대단한 신사 놈들, 내 딸들을 함부로 다루지 말란 말이야! 제길, 나도 내 핏줄에 뭐가 흐르는지 모르겠군. 호랑이의 피가 흐르는 모양이야. 그 두 녀석을 잡아먹고 싶은 걸 보면 말이지. 오, 내 새끼들아! 대체 이게 너희 인생이란 말이냐? 아니 그건 내 죽음이지. 내가 이승에 없으면 너희는 어떻게 되겠니? 아버지란 자식이 수명 다할 때까지 살아야 하는가 보다. 맙소사, 하느님이 만든 세상은 왜 이리 제대로 안 되어 있는 건지! 사람들 말로는 하느님에게도 아들이 하나 있다는데, 우리가 자식들 때문에 속상하지 않게 해 주셔야지요.


글을 쓰다 보니 갑자기 고리오 영감은 주변 사람들의 안쓰러움만큼 짠한 사람은 아니었지 싶기도 하다. 어쨌든 자신은 돈 외에는 그리 잘난 것 없는 부모였기에 더없이 자식에게 돈으로 나머지 부족함을 채우고자 했을 테고, 자신은 쪼들렸을지언정 어쨌든 인생의 98% 정도는  자신이 가진 유일한 그 무기로 자식들 가는 길의 방해물을 차단시켜 주었으니 말이다.  그 방법이 독이 되어 결국 영감의 사후에는 지금까지의 방해물과 비교도 안 될 파도가 딸들을 덮치겠지만, 보이는 모습이 중요한 사교계 스타들은 또 남편과 딜만 잘 된다면 나름으로 잘 지내거나 혹은 잘 지내는 척하면서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추측해 보기도 한다.   


고리오는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어 양손을 뻗더니 침대 양쪽에 있는 두 대학생의 머리에 손을 대고 둘의 머리카락을 세차게 움켜쥐었다. 그리고 희미하게 <내 천사들!>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 말과 동시에 허공으로 날아간 영혼 때문에 더욱 강조된 두 단어. 두 번의 중얼거림이었다.

-

이 아버지의 마지막 탄식은 틀림없이 기쁨의 탄식이었을 것이다. 이 탄식은 그의 일생을 표현한 것이었는데, 그는 이번에도 잘못 생각한 것이었다.


이 구절에서만큼은 작가의 생각에 이의를 표하고 싶어 진다. 잘못 생각한 것이 아니라고. 방법이 어찌 되었든 간에 그가 보인 아버지의 모습으로 만큼은 그는 딸들을 위해 살아온 자신에 대한 기쁨의 탄식을 내뱉기에 충분한 사람이라고.

그의 움켜쥔 머리카락이 나풀거리던 그때의 딸들과 행복한 시절만 가지고 평안하시길, 고리오 영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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