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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아 Apr 24. 2018

첫 책, <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가 나왔습니다

책 쓰는 일은 다른 세상 얘기인 줄 알았습니다.


작년 3월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잠시 사무실을 비웠다 돌아오니 웬 출판사에서 저를 찾는 전화가 왔었다고 했습니다. 개인 sns에 올렸던 '소비에 실패할 여유'라는 글이 예상치 못하게 좋은 반응을 얻었던 직후라, 짧은 기고글을 써 줄 수 있냐는 요청을 이곳저곳에서 몇 번 받았던 때였습니다. 그런 종류의 문의이려나 생각하며 남겨진 번호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제가 유정아인데요, 전화 주셨다고 해서요."


"네 안녕하세요. 저희는 출판사 북폴리오라고 하는데요, <소비에 실패할 여유>라는 글 보고 연락드렸습니다."


짧은 인사와 소개 뒤에 나온 말은 제가 전혀 생각도 못 했던 것이었습니다.


"작가님 에세이집을 내 보고 싶은데요, 가능하신가요?"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습니다. 길에서 책을 읽으면서 걷다 야단맞은 일이 여러 번 있었고, 책이 산더미같이 쌓인 방에서 하루종일 책만 읽으면 좋겠다고 엄마에게 말했던 적도 있었죠. 하지만 제가 책을 쓰게 될 것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작가님'이라는 호칭이 귀에 설은 것만큼이나 그 제안이 다른 세상 얘기 같았습니다. 얼떨떨한 기분으로 조금 생각해본 후 연락드리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자리로 돌아와 옆자리 동료에게 통화 내용을 전했습니다. 말 끝에 에이 가능할까, 같은 말을 덧붙였던 것 같습니다. 그 앞에는 '나까짓 게' 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었고요.


아마 제 이야기를 들은 그가 조금이라도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더라면 저는 바로 다시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 제안을 거절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의 반응은 제 예상을 다시 빗나갔습니다.


"되게 좋은 기회 같은데. 해봐요!"


너무도 명쾌하게 '써 보라'고 권하는 그의 말 한 마디는 어떤 설득보다 든든했습니다. 동시에 근거 모를 자신감이 스물스물 올라왔습니다. 그래, 망하고 구르던 때의 얘기더라도 내 시선에서 쓴 글로 책을 내 보자고 하는데 안 될 건 뭐냐, 싶었죠.


다음 날, 저는 편집자에게 전화를 걸어 원고를 써 보겠다고 말했습니다.


1년이면 충분하겠지, 했던 원고 작업은 생각처럼 말랑말랑하지 않았습니다. 내 이야기니 쉽겠지 생각했는데, 도리어 내 이야기이다 보니 적어내기 더 어려웠습니다. 공책에 쓰고 노트북에 타이핑하고 별 짓을 다 하며 수십 번을 쓰고 지우고 다시 써도 다음 날 보면 유치한 말장난처럼 보였죠.


피곤에 지쳐 밤 늦게야 퇴근하는 평일에는 그나마도 쓰는 게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길가의 나무에 단풍이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덜컥 겁이 나더라고요. 완성을 못 하면 어떡하지.


혼자 계획했다가 엎는 거라면 그냥 조금 속상하고 말았겠지만 다른 사람과 약속한 걸, 그것도 처음으로 제 글에서 어떤 가능성을 보고 제게 책을 내자고 말해줬던 사람과 약속한 것을 어기는 건 싫은 걸 넘어서 무서웠습니다. 그러니 제게 더 무슨 선택이 있었을까요. 펜이든 키보드든 더 붙잡고 늘어지는 수밖에.


스트레스 받는 저를 그나마 지탱시켜 준 건 주변 사람들의 아낌없는 격려였습니다. 막판에는 괜히 짜증도 많이 내고 세상 근심은 다 진 것처럼 우울해하기도 했지만, 그걸 다 받아주고 응원해준 그들이 없었다면 완성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올 1월 초, 마감을 앞두고 압박감이 극에 달해 있을 때 4월에 엄마와 함께 갈 교토행 티켓을 끊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급해질 때마다 예약해둔 숙소 사진을 보며 혼자 주문을 걸었죠.


나는 다 잘 끝낼 거다, 다 끝내고 4월이면 교토에서 마음 편히 온천을 즐기고 있을 거다...


예언인지 세뇌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모든 일은 그 말대로 됐습니다. 원고도 무사히 보냈고, 몇 주 전 엄마와 저는 속 편하게 봄의 교토를 즐기고 돌아왔습니다. 그러고 나니 책이 선물처럼 완성되었네요.


내 서른 한 살의 앨범이자, 선물이자, 기적 같은.


삶의 가장 힘들었던 순간들을 온전히 제 관점에서 풀어낸 이야기이기에, 이 못난 생각들에 얼마나 많은 분이 공감해주실지 알 수 없어 조금 설레는 한편 두렵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책으로 망신당하는 꿈을 꾸었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얼마 전 저와 둘이 술 한 잔 나누던 애인이 그러더군요. 지금, 서른 한 살의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책으로 남겨둘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이냐고요.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었습니다. 읽는 사람에 따라 평가야 엇갈릴 것이고 간혹 혹평을 받을 수도 있겠으나 어쨌든 그 모습조차 지금의 저니까요. 그리고 그 모든 기록을 앨범처럼 책 한 권으로 남겨둘 수 있다는 건 정말 흔치 않고 귀중한 기회임에 틀림없으니까요.


이렇게 제 이야기도 책으로 만들 수 있다고 등 두드려 준 분들에 있기에, 조금 초라하고 별 것 아닌 이야기들이지만 용기 내서 묶어 내밀어 봅니다.


책 제목처럼, 좀 시시한 사람이면 또 어떻겠어요.




p.s : 그리고, 지금 스스로가 보잘것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에게 이 책의 존재가 약간이라도 위로 같은 걸 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조금 건방진 생각도 해 봅니다.


이 책 속의 시간을 살고 있던 저는, 그 시간들이 어떤 결과물을 내놓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었거든요.


이 책을 보고 코웃음치며 "겨우 이따위 이야기도 책이 돼? 이 정도 고생은 나도 했어" 라고 비웃으셔도 좋으니, 뒤집어 말하면 내 시간도 어떤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모두가 각자의 책을 쓰며 살아가는 중이라 생각하면서 조금이나마 안도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

교보문고 : http://mobile.kyobobook.co.kr/showcase/book/KOR/9791162335062


예스24: http://m.yes24.com/Goods/Detail/60492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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