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나를 위한다는 명분이 오늘의 나를 안심시킨다.
드라마에서 봤던 '구조조정'의 장면은 뭔가 분주하고 시끄럽고 비장하게 슬픈 것이었다. 누군가는 윗사람의 옷깃을 잡고 늘어지고, 똑같이 불안한 동료들과 함께 날을 새며 술을 마시고, 그 와중에 뒷통수를 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밤늦게 들어와 잠든 가족들을 보며 눈물짓는 가장도 있었다.
그러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카메라를 비춰주지 않는 현실의 고용불안이란 훨씬 고요하고 음산하며 신속했다. 모두가 소리죽여 소문을 나누는 사이 말 없이, 또는 갑작스레 짧은 인사를 남기고 사라지는 이들이 늘었다. 다들 사연이야 있겠으나 그건 각자의 파티션을 넘지 못했다. 사무실에는 조용히 빈 자리가 늘어가고 사람들은 습관처럼 안부를 묻다가 힘없이 웃었다.
생존과 번아웃과 구조조정과 전략 같은, 대척점에 있을 법한 말들이 수시로 함께 떠다녔다. 머릿속은 분주한데 발꿈치에서는 무력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내가 사업과 이익의 논리 앞에 속수무책인 부품일 뿐이라는 걸 이토록 실감한 적이 없었다. 회사원으로 살면서 스스로를 '부품'으로 여기는 일에 자기연민을 느낄 만큼 순진하지는 않았다. 유기체로 움직이는 조직 내 개인은 당연히 부품처럼 작동해야 했고, 오히려 꽤 괜찮은 부품이 되기 위해 열심히 자신을 갈고닦아 왔다.
내가 충격을 받은 부분은 그 갈고닦음조차 아무 의미가 없어지는 순간이 온다는 것이었다.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다 했음에도 거부할 수 없이 밀려나는 순간이 올 수 있다는 것. 나의 최선이 더이상 조직의 최선이 아니게 되는 때가 반드시 온다는 것. 심지어 그 순간은 그렇게 극적이지도 않을 터였다. 내 영혼은 상처를 입겠지만 회사의 입장에서는 책상이 하나 비는 것이고 친한 동료들로서는 로비에서 아쉽게 인사하고 끝날 일이었다. 세상은 아무렇지 않게 돌아갈 것이었다. 다른 모든 사람의 경우에 그랬듯이.
누구나 늙고 아프고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막상 그 때가 오면 다들 당황하는 것처럼, 언젠가 나의 가장 나은 버전조차 쓸모 없어지는 순간이 온다는 사실은 당연한 것임에도 새삼스레 발을 동동거리게 했다. 내가 충분히 나이들어 더 온화해지고 여유로워져서 나의 환영받지 못함을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 다음이라면 멋지게 은퇴할 수 있겠지. 그러나 그렇게 되기 전에 그 순간이 온다면? 그 때 나는 나를 어떤 말로 달랠 수 있을까. 쉽사리 답이 나올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일단은 ‘고민 중‘인 상태로 남겨두기로 한다.
그럼에도 어쨌든 생존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은 확실했다. 사회인으로서 가능한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전략도 필요하지만, 사회 밖에 선 나를 지킬 인간으로서의 생존 전략도 있어야 했다. 무엇이 옳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사회인으로서의 자아를 단단하게 하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지는 않기로 했다. 일과의 한복판에 회사 일과 아무 관계 없는 것들을 쑤셔넣어 보는 것이다. 언젠가 일이라는 껍질이 내게서 모두 떨어져 나간 뒤에도 완전한 빈 손이 되지는 않도록.
나는 여전히 팀 매출 증진 전략을 짜는 데 열을 올리고 영어 공부를 하며, 트렌드를 놓치지 않으려 이런저런 기사도 열심히 읽는다. 유망한 투자며 부업 같은 것들도 기웃거려 본다. 일단 가능한 순간까지는 쓸 만한 사람으로 남고 싶으니까. 대신 출퇴근 시간에는 읽고싶은 책을 한 권 꺼낸다. 음악을 듣고 글을 끄적인다. 나의 쓸모와 관계없는 일과들을 쓰이고자 하는 노력의 중간에 배치한다.
적고 보니 이조차도 다른 방식으로의 내 쓸모를 입증하고자 하는 몸부림처럼 보인다. 어쩌면 내 머릿속의 생존이라는 개념은, 내가 한 가지만으로 설명되지는 않는 사람이라는 걸 입증하는 게 아닐까. 내가 정말로 두려워하는 건 사회인으로서의 쓸모가 없어진 뒤 나를 잃는 것보다, 어떤 변명거리도 마련하지 못한 채 사회에서 밀려나는 순간을 맞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잡다한 것들로 일상을 분주하게 만드는 일이 실제로 나를 무언가로 만들어주지는 않을지라도 최소한 작은 위안 정도로는 기능할 것이다. 남몰래 품고 있는 비상금이 걸음걸이를 조금 더 가볍게 만들어 주듯이.
모르겠다. 언젠가 쓸모가 다한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기특하게 여길지 안쓰럽게 여길지는. 그러나 내일의 나를 위한다는 명목이 오늘의 나를 조금이나마 안심시키기에 의심은 일단 접고 좀 더 많은 층을 품고 있는 사람이 되고자 이리저리 움직인다. 변명일지 전략일지 알 수 없지만, 지금은 더 좋은 방법을 아직 찾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