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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아를 '만져보라'는 말

인류는 이제 인공지능을 막 발견하기 시작했다

by 최진홍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인공지능으로는 처음으로 시민권을 받은 로봇 소피아가 30일 한국을 찾아왔습니다. 인공지능 로봇에 법적인 지위를 부여하는 로봇 기본법을 발의했던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과 대화를 나누기 위함입니다. 그 유명한 소피아를 실제로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렸고, 간간히 아이들의 손을 잡고 찾아온 부모들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소피아는 데이비드 핸슨 최고경영자(CEO)가 이끌고 있는 핸슨 로보틱스가 만들었습니다. 배우 오드리 햅번을 모티브로 만들어졌으며 한 때 미국 토크쇼에 등장해 '인류를 지배하겠다'는 발언으로 큰 화제를 모았어요. 소피아는 당시 발언에 대해 "미국식 농담"이라는 재치있는 해명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소피아를 보면서 처음 느낀 감정은 '약간 무섭다'였습니다. 간간히 대화 도중 눈을 깜빡이거나 고개를 끄덕이는 등 소름끼치도록 사람과 비슷한 리액션을 취하는 것을 보면서 '이대로 가면 진짜 사람과 비슷한 인공지능 로봇이 나올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데이비드 핸슨 CEO와 박 의원이 대화하고 있는데 갑자기 끼어들어 자신의 말을 하느라, 실시간 통역을 맡은 통역가가 곤란해하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습니다.


소피아의 등장은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그 중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점은 '로봇의 인격화'가 아닐까 합니다. 30일 행사는 로봇의 인격화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자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많은 학습이 필요하지만, 소피아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사람과 대화를 나눴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존중과 신뢰가 필요하다"는 소피아의 말이 모든 것을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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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묘한 딜레마가 나타납니다. 중요하고 핵심적인 이슈는 아니지만, 소피아를 통해 로봇의 인격화 당위성에 무게를 실어주는 30일 행사장에서 역설적으로 소피아를 철저하게 사물화시키는 장면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만져보라'는 박 의원의 말이었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소피아의 피부를 가장 궁금해한다"면서 "실제 만지면 정말 사람같다"고 말했습니다. 행사가 끝나갈 무렵 한 아이를 무대위로 불러와 직접 소피아의 피부를 '만져보게' 하기도 했습니다.


박 의원의 의도는 소피아의 기술력을 강조하기 위함으로 보입니다. 그 자체로 문제가 될 소지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반적으로 뭔가 신기하고 재미있는 '사물'이 생기면 궁금해서 '만져보게' 됩니다. 여기서 사물의 의사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A라는 주체가 B라는 주체를 만져보는 순간 힘의 집중은 오로지 A에게 있으니까요. 소피아는 박 의원이, 아이가, 행사가 종료되고 기념사진을 찍을 때 무대에 올라와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자신을 만질 때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러한 현상을 비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인공지능 로봇의 인격화를 고민하는 이들의 접근법이 시작부터 철저하게 인공지능을 타자화시키는 장면은 앞으로 있을 '심각한 고민'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걱정입니다. 최소한 인공지능 로봇에 법적인 지위를 부여하려는 생각이 있다면, 소소한 접근방식부터 조심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인공지능 로봇이 기분나쁠까봐 눈치보는 것 아닙니다. 논의의 시작부터 0.1의 오차가 벌어지면 나중에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1789년 남아프리카 코아족의 일원으로 태어난 사르키 바트만은 자신의 약혼식 축제날 밤 백인 정찰대에 납치되어 영국 런던으로 끌려가 평생을 혹사당했습니다. 그녀를 사람이 아닌 '희한한 별종'으로 본 제국주의자들은 사르키 바트만을 성적으로 학대했고, 그 결과 사르키 바트만은 고국으로 돌아갈 기회를 잡았음에도 자신의 삶을 체념하며 런던에서 죽었습니다. 이후 187년간 박물관의 박제가 되었어요.

인공지능 로봇은 인류가 탄생시킨 피조물입니다. 만약 인공지능 로봇을 인류의 수준으로 격상시켜 그 기술적 가능성을 만개하려면 당연히 그 존재가치를 더욱 보장해야 합니다. 인공지능 로봇의 디스토피아를 우려한다면 잔인한 말이지만 상관이 없을겁니다. 그러나 함께 가기로 했다면,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인공지능 접근법부터 달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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