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미국의 사례를 보면서
신세계라는 기업은 잘 모릅니다. 영화 신세계는 재밌게 봤어요. 이정재 통수왕.
신세계가 26일 온라인 사업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페이팔 투자로 유명한 비알브이 캐피탈 매니지먼트(BRV Capital Management)와 저에게는 멜론 매각으로 대박친 사모펀드로 기억되는 어피니티 에쿼티 파트너스(Affinity Equity Partners)의 투자유치를 끌어냈다고 합니다.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로 나눠져 있는 온라인 사업부를 통합하고 이커머스 사업을 전담하는 신설회사를 설립한다는 것이 골자입니다.
정용진 부회장이 지난해부터 하도 온라인 사업의 변화를 이야기했기에 뭔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재미있는 판을 깔았네요. 11번가 인수는 완전히 물 건너갔고 소셜 커머스 인수 가능성은 다소 열려있다고 보는 편이 맞는것 같습니다. 물론 1조원 정도의 투자유치라 소셜커머스를 사기에는 돈이 부족하지만, 뭐 스타트업 인수 가능성도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보이지는 않습니다.
사견이지만 신세계는 롯데보다 이커머스에 관심이 약간 더 많아 보입니다. 정 부회장이 언젠가 "동물원과 놀이공원이 우리의 경쟁자다"라고 말했을 때 전통 유통에만 매몰되는 사람은 아니구나 싶었는데 뭔가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은 맞아 보여요. 물론 정 부회장에 대한 호불호는 갈리고요. 개인적으로 정 부회장은 왠지 자기 컨셉이 뚜렷한 키덜트스러운 인물이 아닐까 생각하는데(절대 스타필드의 토이킴덤 꾸며놓은 것 가지고 이런 생각하는거 아임다) 뭔가 기존 방식으로 재단하기는 어려운 인물로 보이기는 합니다. 여담이지만 반전스럽게도 신세계는 다소 보수적인 기업문화를 가지고 있지요. 만약 11번가 인수라던가 그 외 파격적인 카드를 꺼내들었다면 분석할 거리도 많겠지만 여튼 이번 건은 뭔가 담담하면서도 재미있고, 왠지 예측가능하면서도 묘하게 뒷통수가 간지러운 뭐 그런 느낌입니다.
신세계는 중국, 미국의 방식과는 다르다
신세계의 1조원 투자 유치, 온라인 사업부 통합 소식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해외 시장과 비교를 해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물론 시장의 사이즈나 특성, 장단점이 모두 다르지만 이커머스 관점에서 보여지는 전략의 얼개를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 사는게 뭐 똑같죠 뭐.
지난 23일 중국에서 흥미로운 소식이 날아왔습니다. 프랑스의 까르푸가 본사 정기해고를 단행하는 한편 중국 용후이슈퍼(永輝超市)와 텐센트와 협력한다는 뉴스입니다. 까르푸가 중국법인 지분 일부를 텐센트와 용후이슈퍼 등에 매각하는 것이 골자입니다. 까르푸차이나의 대주주는 여전히 까르푸로 남지만 이번 투자가 가지는 상징성은 상당히 큽니다. 까르푸의 글로벌 유통 경영 노하우와 텐센트의 이커머스 인프라, 용후이슈퍼의 신선식품 노하우가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이와 별도로 까르푸는 텐센트의 위챗과 연동하는 한편 온라인과 오프라인 판매 데이터의 활용도를 끌어올려 인공지능 생태계를 조성하는 전략적 제휴도 맺었습니다.
지난해 12월 텐센트는 용후이슈퍼 지분 5%를 매각했던 바 있습니다. 세계 최대 오프라인 유통업체인 월마트가 텐센트 계열리 되어버린 중국 2위 이커머스 업체 징둥의 지분을 매입하며 한 발 걸쳐놓은 가운데 텐센트 중심의 '짱짱한' 온오프라인 유통 사용자 경험이 구축되는 분위기입니다. 참고로 징둥은 2015년 용후이슈퍼 지분 10%를 확보한 상태입니다.
대항마는 알리바바입니다. 지난해 11월 알리바바는 가오신(高鑫)의 지분 36%를 28억8000만달러에 인수하며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가오신은 다룬파를 운영하는 유통업체며, 알리바바는 가오신과의 협력으로 2015년 상호지분투자로 몸을 섞은 쑤닝윈상(蘇寧雲商)과 함께 오프라인 공략에 속도를 낼 수 있게 됐습니다. 허마셴성(盒馬鲜生)의 존재감까지 더하면 완벽한 온오프라인 유통 플랫폼입니다.
자, 여기서 신세계와 중국 텐센트, 알리바바의 행보를 보면서 가장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너무 많지만....눈에 들어오는 대목은 주체입니다. 즉 새로운 사업을 이끌고 끌고가는 주체의 힘, 즉 방향성인데요. 사견입니다만 저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업의 본질과 핵심을 알려면 주체의 힘과 방향성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주도하느냐? 힘의 방향은 어디인가?
중국은 온라인 기반입니다. 텐센트와 알리바바가 핵심이라는 뜻입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느냐. 냉정하게 말하면 중국 정부의 폐쇄적 정책에 따라 거대한 내수시장에서 안전하게 자라온 이커머스 업체들이 O2O 시장 전반에서 몸집을 키우는 한편, 어느정도 외부와 경쟁할 수 있는 킬러본능을 가지게 되자 서서히 2단계로 넘어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의 창업 생태계와 정부의 지원, 천재적인 창업집단과 확실한 아이템, 거대한 내수시장이 맞아 떨어지며 이커머스 기업이 주도하는 유통환경이 가능해졌다는 뜻입니다.
즉 온라인와 오프라인을 아우르는 거대한 신유통 사용자 환경을 텐센트와 알리바바 등 온라인 기반 이커머스 기업들이 좌우한다는 뜻입니다. 이들은 온라인에서 시작된 사용자 경험을 오프라인으로 뿌리는 힘의 방향을 보여줍니다.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마존이 그렇죠. 이커머스에서 시작해 서서히..가 아니라 이제는 막 대놓고 오프라인에 진출하며 온라인 사용자 경험을 오프라인으로 뿌립니다. (아마존이 신선식품 홀푸드를 인수한 것과 동일하게 텐센트, 알리바바가 신선신품 업체들과 연계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자면 '신선식품이 오프라인 거점의 핵심 플랫폼'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반면 신세계는 어떤가요. 신세계는 오프라인에 기반을 둔 유통회사입니다. 중국과 미국과는 달라요.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넘어가면서 사용자 경험을 온라인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보입니다. 180도 다르죠. 이 방식으로 신세계는 2023년 온라인 매출 10조원 시대를 열겠다고 밝혔습니다.
어떤 방식이 더 유리할까요? 어떤 방식이 미래 시장의 패권을 쥘 수 있는 지름길일까요? 신세계처럼 오프라인 중심의 온라인 진격전? 중국이나 미국처럼 온라인 중심의 오프라인 진격전?
굳이 비교하자면 신세계 방식은 제트닷컴을 인수한 미국 월마트의 방식과 닮았습니다. 그런데...사견입니다만 전 이 방식에 회의적입니다. 오프라인의 강력한 거점 플랫폼 전략을 바탕으로 데이터를 확보해 철저한 생태계 전략을 구사하면 놀라운 성과를 거둘 수 있겠지만, 또 오프라인의 중요성이야 두말하면 잔소리겠지만 뚜렷한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월마트나, 신세계나 모두 혜성처럼 부상하고 있는 이커머스를 견제한다는 프레임에 갇혀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는 위협할 수 있을겁니다.
그러나 이커머스 업체들은 단순히 유통, 온라인 유통, 물류 전략에 매몰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유통이라는 업의 특성을 이커머스 ICT 플랫폼으로 끌어오는 순간 종합 IT 솔루션 업체로 비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존과 알리바바가 모두 막강한 클라우드 인프라를 가진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우리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싸우는 첫 관문은 클라우드 경쟁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세계와 월마트가 이커머스 타도를 외치며 이커머스 기업을 인수하고 겨냥하는 사이, 기존 이커머스 기업들은 종합 IT라는 다른 차원의 시장을 보고있는 느낌입니다.
조금 더 디테일한 지점
중국이 외산 유통업계의 무덤이라는 시각이 있습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 같습니다. 코스트코처럼 뭔가 다른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는 곳은 꾸준히 중국에서 매장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외산 유통업계가 어려운 것은 사실 맞아요. 코스트코 외에는 뭐 없거든요. 까르푸의 텐센트 연합은 꾸준히 하락하고 있는 까르푸의 중국 오프라인 시장 점유율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반면 이커머스 시장은 확대일로입니다. 오프라인 입장에서는 뭔가 활로가 필요하죠.
우리를 볼까요. 오프라인 유통 어렵습니다. 이커머스는요? 어? 괜찮습니다. 2016년 기준 국내 이커머스 연거래액은 64조9134억원으로 매년 20%의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중국과 우리의 사정이 비슷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은 텐센트와 알리바바 등을 중심으로 이커머스 거인들이 무섭게 성장하고 있지만 우리는 딱히 이런 기업이 보이지 않아요. 소셜커머스가 반짝 반등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적자의 수렁인데다...지마켓·옥션·11번가 등 오픈마켓들은 거래 규모가 꽤 있지만 중개수수료만 매출로 잡히는 등 의외로 캐파가 낮습니다. 최근 네이버가 오픈마켓 시장에 사실상 진출하고 있는데 아직은 '넘본다' 수준입니다. 시장의 크기나 특성 등을 고려해야 하지만 텐센트나 알리바바 등의 정체성이나 방향성, 스펙트럼을 가진 곳은 없습니다.
갑자기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국내 전체 온오프라인 유통환경 사용자 경험을 신세계처럼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넘어가는 것 외에는 딱히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겁니다. 신세계의 11번가 인수 카드가 참 매력적이겠지만 글쎄요. 이건 정무적, 재무적 고려도 필요해 보입니다. 현실적으로 갑자기 양쪽의 결합이 요원한 상태에서 신세계가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을 것이다...라고 감히 추측해봅니다. 그리고 또 하나. 바로 이런 한계때문에 어렵지 않을까...라고 생각도 해 봅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우리도 아마존같은 기업이 땋 나와야 하는데, 아마존 수준의 미디어 커머스 플랫폼을 비슷하게 따라가는 기업은 제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CJ오쇼핑의 CJ E&M 인수요? 홈쇼핑과 콘텐츠가 만나면 미디어 커머스가 된다는 생각은 단편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디어 커머스의 핵심은 미디어도, 커머스도 아닌 이를 연결하는 다양한 생태계 인프라라고 생각합니다. 아마존처럼 시작부터 끝의 라스트 마일까지 모두 책임질 수 있다는 각오가 서야 미디어 커머스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마존고의 성공이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지만 이미 중국은 하고있는..물론 실험 수준이지만 하고 있는 겁니다. 이들은 미디어와 커머스, 그 외 모든 부대조건을 철저하게 온라인 중심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신세계의 실험은 오프라인의 한계를 인지하고 오프라인의 강점을 더욱 살려 이커머스만을 겨냥한 프레임이 아닌, 더 큰 그림을 그려야 성공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실 어피니티 투자 좀 불안해요..이 사람들 기업 인수한 후 잘 굴려서 비싸게 팔아먹는 형님들인데(워낙 전설같은 신화들이 많아서) 말입니다.
이것도 사견입니다만 신세계는 이왕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향했다면, 중국과 미국처럼 온오프라인 유통 플랫폼의 비어있는 대목을 꼼꼼하게 채우고(이마트고 갑시다) 오프라인 거점 데이터를 빠르게 흡수해 활용해야 합니다. 목표는 반드시 이커머스 이상. 시각은 글로벌이 어렵다면 꿈같은 이야기지만 최소한 동아시아 유통 허브 전략까지. 아마존 서점처럼 온라인 사용자 경험을 오프라인에 철저히 투영시키면서 오프라인의 강점을 절대 잃지 않는다면, 뭐 별로 좋아하는 표현은 아니지만 한국판 신유통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냉소만 머금지 말고 뭐든 해보자고요. 아, 트렌드(?)인데 신선식품 스타트업 인수 인수도 한번 고려를....마켓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