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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진홍 Feb 08. 2018

MCN 업계, 시스템의 함정에 빠지나?

레거시 플랫폼과의 합종연횡 그림자

6살 아이가 캐리소프트의 팬이라 저도 옆에서 종종 같이 봅니다. 작은 스마트폰 화면으로 계속 보여주기는 부담스러워서 크롬캐스트로 TV에 보여주는 편인데요. 제일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엘리가 간다'입니다. 엘리가 아이들이 놀러가기 좋은 곳을 찾아가 직접 체험하는 콘텐츠입니다. 제 아이는 전편을 무한반복해서 보고 있습니다. 

옆에서 보는 저는 처음에는 심드렁하게 봤습니다. 항상 꼬마캐리와 꼬마캐빈 등 인형탈을 쓴 사람과 돌아다니는데 '왜 꼬마인데 머리통은 엘리보다 더 크냐'라고 중얼거렸습니다. 더빙은 후시녹음인가? 가끔 익사이팅한 체험도 하던데 탈을 쓴 꼬마들은 혹시 20대 건장한 남자가 아닐까? 그런데 계속 보다보니 이거, 재밌습니다. '이런 곳이 있었어?'라는 정보는 덤이에요.



어느날 엘리가 눈밭에서 구르고 썰매를 타며 키즈카페를 종횡무진 뛰어다니는 것을 멍하니 보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콘텐츠에 정말 신경을 많이쓰네" 맞습니다. 특수효과와 자막, 구성, 기획 등등 엘리가 간다는 완전체 방송형 콘텐츠였어요. 어딘가 무한도전의 느낌도 납니다. 최근에는 NG모음도 따로 콘텐츠를 만들더군요.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다른 생각이 납니다. 그러고보니 이건 그냥 방송국,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지상파 방송국 프로그램과 동일했습니다. 엘리는 연예인이고 촬영친구[엘리가 간다 촬영 스텝]는 무한도전의 김태호 PD 같은 느낌이에요. 어? 이게 맞을까?


비판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비단 엘리가 간다를 차치해도 대부분의 1인 크리에이터 기반 뉴미디어 플랫폼을 표방하는 MCN 업계가 조금씩 레거시 미디어 플랫폼을 빠르게 닮아간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1인 크리에이터의 능력에 집중해 새로운 미디어 환경을 조성한다던 이들이 돈이 붙고 인력이 붙고 규모의 경제가 가능하자 유튜브에서 지상파 방송사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왜 그럴까 곰곰히 생각을 해 봤습니다. 일단 MCN 업계 자체가 돈을 벌어야 하니 소위 '때깔이 좋은' 콘텐츠를 자연스럽게 추구하며 생긴 현상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러나 1인 크리에이터라는 속성을 내밀하게 살피면, 혹 그들이 말하던 톡톡튀는 기획력과 새로운 미디어 패턴의 소비라는 것 자체가 '허상이 아니었을까'라는 의심도 듭니다.


최근 CJ E&M의 다이아 티비가 나영석 PD를 초청해 창작자 대상 신년회를 열어 나 PD의 노하우를 1인 크리에이터들에게 전했다고 하죠. 우리나라 방송사의 역사를 쓴 나 PD에게 제작 노하우를 전수받는 것은 매우 중요한 기회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는 레거시 미디어 플랫폼에서 거둔 성공을 바탕으로 새로운 뉴미디어 플랫폼에 도전하는 사람이 아닌가요. 1인 크리에이터에게 노하우를 전수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소통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생각해보면 MCN 업계의 미디어 커머스, 콘텐츠 제작도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 동영상 열풍이 불고 UCC 인기가 치솟던 당시보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전문적인 업체들이 등장했다는 것. 물론 유통이나 기획, 기타 브랜딩 등 다양한 영역에서 많은 발전이 있었다는 것은 압니다. 그러나 전 본질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MCN이라면, 그래도 지금까지 나오던 미디어 플랫폼 이상의 가치들은 최소한의 단서라도 보여주어야 하는 것 아닐까?


현재 MCN 업계를 이끌어가고 노력하고 있는 많은 분들의 노력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솔직히 말해 기대가 크기 때문에 원하는 것이 더 많아지고 있다.는 표현이 맞겠네요. 레거시 미디어 플랫폼과 협력해 콜라보를 하고 미디어 커머스를 진행하며 톡톡튀는 현 세대의 영상문법을 만드는 것은 분명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뒀지만 이것들이 기존 레거시 플랫폼이 하던 것과, 레거시 플랫폼의 하청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분명 짚고 넘어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쁜 여인이 등장해 눈호강하는 것도 좋고, 게임도 좋지만 이젠 좀 더 넓어져야 하기도 하지 않을까. 현실적인 문제가 있겠지만 말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1인 크리에이터 업계의 양극화? 현상. MCN에 소속되지 않았거나 중소 규모에 소속됐다면 뭔가 파격적인 기획들도 많이 이뤄집니다. 문제는 이러한 시도들이 극단적인 방식으로 흘러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는 분위기가 종종 있다는 겁니다. 뭔가 중간 정도의 레벨에 맞춘 신선함은 없을까요?


현재 MCN 업계가 만들어내는 콘텐츠는 기존 바이럴 업체가 기획한 콘텐츠와 다르고 홈쇼핑과 다릅니다. 지상파 예능 방송과도 달라요. 기획부터 달라요. 하지만 그 결과물은, 뭔가 양 극단을 오가며 아직 뚜렷한 비전을 찾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대안은 있는가? 몰라요...하지만 이걸 찾아내는 쪽이 새로운 시대의 미래를 쥐게 될 것이라는 것은 확실히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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