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의 문제
카카오모빌리티가 13일 기자회견을 열어 다양한 로드맵을 발표했습니다. 다만 많은 분들이 아는 것처럼 이슈는 거의 하나로 좁혀져요. 카카오택시 웃돈. 이 부분부터 허심탄회하게 썰을 풀어 보겠습니다.
우선, 굳이 웃돈 정책을 추진하기 위함은 아니겠지만 카카오모빌리티의 공개된 전략 근거는 매우 치밀하고 탄탄해 보입니다.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에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지난해 12월20일 오전 8시부터 1시간 동안 카카오T 택시 호출을 보면 약 23만건에 달한 반면, 당시 배차가 가능한 택시(운행중 택시 제외)는 약 2만6000대 수준이라는 발표가 나오더군요. 네, "아오 카카오택시 진짜 안잡히네"라는 불만의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겁니다.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무엇인고?
사실 카카오모빌리티의 발표는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을 인지하면서 시작됩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택시기사의 숫자를 늘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여기서 두 개의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바로 웃돈과 카풀의 도입.
카풀의 도입은 최근 인수한 카풀앱 럭시를 통해 풀어간다는 전략입니다. 수요와 공급이 불균형된 상태에서, 수요가 갑자기 늘어나는 경우 카풀로 배차 서비스 일부를 돌리는 전략으로 보입니다. 이건 법적인 문제와 택시기사들의 반발을 걷어내면 상당히 좋아 보입니다. 성공한다면 4차 산업혁명 위원회도 하지 못한 일을 하는 셈입니다.
관건은 웃돈입니다. 택시 호출기능 중 유료 기반의 ‘우선호출’ 과 ‘즉시배차’가 그 주인공입니다. 금액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우선 호출과 즉시 배차는 유료 기반의 호출 서비스로 사실상 카카오모빌리티의 본격적인 수익화 모델입니다. 일반호출과 우선호출, 즉시배차로 꾸려지는 겁니다. 쉽게 말해 웃돈을 주면 카카오택시를 빠르게 잡을 수 있도록 한다는 겁니다. 이를 위해 카카오모빌리티는 기사를 위한 포인트 제도를 운영해 활성화 시킨다고 밝혔습니다.
쉽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으로 택시 잡기가 어려워요. 여기서 카카오는 인공지능 기술 등으로 택시를 빠르게 잡을 수 있는 서비스를 런칭했습니다. 그런데 이건 유료에요. 인공지능 기술 없이 단순히 기계식 호출로 무료 지원되는 일반호출이 있고 따로 웃돈을 줘야하는 유료호출이 생긴겁니다. 택시기사들은 뭐...당연히 웃돈을 나눠받을 수 있는 유료호출을 선호하겠죠.
자, 중요한 것은 다음입니다. 기사들은 무료보다 유로를 선호합니다. 그렇다면 승객들은 어떻게 될까요? 가뜩이나 잡히지 않는 무료호출이 더욱 잡히지 않으며 억지로 유료호출로 넘어갈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결제방식이나 콜비 상한선 등의 법적인 문제는 차치해도(카카오모빌리티는 문제가 없다고 했습니다) 이건 소비자들이 새로운 서비스를 누리는 대신 그냥 돈을 더 올리겠다는 뜻과 일맥상통합니다.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게임을 보면 처음 저렙일때 현질할 필요가 없어요. 그런데 유저들이 몰리고 레벨이 올라가면 어쩔 수 없이 현질을 유도하는 시스템이 많습니다. 그렇게 대한민국 판타지는 현질의 천국이 되었지요. 딱 맞는 비유는 아니지만 카카오모빌리티도 비슷한 전략입니다. 콜비없이 이용자들을 모았고, 이용자들이 다음 기술적 진화를 요구하기 시작하자 돈을 더 내면 더 좋은 서비스를 하겠다고 하는 중이니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전 이걸 너무 심한 색안경을 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그냥 플랫폼 전략입니다. 생활밀착형 서비스이기 때문에 파급력이 크지만 냉정히 말해 한 기업의 사업적 행보에요. 이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떠나면 됩니다. 욕할 필요도 없어요 불법도 아니라는데. 어차피 카카오모빌리티는 수익사업을 해야만 했습니다. 유료호출 가능성 예전부터 제기되던 부분이었고요. 서비스로 승부하면 되는 겁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우버와 디디추싱같은 서비스가 국내에 없다는 점입니다. 택시와 연합한 카카오택시가 자신들의 로드맵에 따라 플랫폼 전략을 변화시킨다면, 그래서 고객의 심판을 받는다면 반대급부에서 대안책도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게 없습니다. 아쉬운 부분입니다. 어쩌면 우버택시 서비스가 불발로 끝난 직후 카카오가 택시회사와 만나 카카오택시 런칭할 때 그려진 그림이 아닐까 합니다. 철저하게 기존 기득권인 택시회사와 연합해 모빌리티 전략을 꾸리자는 큰 그림. 카카오모빌리티의 유료호출 서비스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전혀 문제없는 플랫폼 전략이지만 고객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해 다른 대안도 있었다면 참 좋았겠다. 이겁니다.
진짜 아쉬운 점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을 매개로 수익모델까지 끌어낸 카카오모빌리티의 전략에 찬사를 보냅니다. 럭시를 인수해 카풀을 대안으로 활용하는 꼼꼼한 사용자 경험 추구도 참 좋습니다. 일본 재팬택시와의 협업을 통한 글로벌 전략과 카카오 T for Business 중심의 B2B 전략의 가치도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연장선에서 돈을 벌겠다는데 왜 돌을 던집니까. 그건 카카오모빌리티의 선택입니다. 단. 대안이 필요하다는 점은 카카오모빌리티가 아니라 정치인들에게 꼭 말해주고 싶네요. 너무 택시편만 드는 것 아닙니까?
자, 다 좋아요. 다 좋은데 전 딱 하나만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카카오모빌리티의 본원적인 한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올해 초 미국 출장에서 우버를 많이 사용했습니다. 호텔에 우버 정류장이 따로 마련되어 있고, 이를 이용하면서 막연하게 '우버가 많은 변화를 끌어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귀국하고 돌아와 곰곰히 생각을 해보니 무엇이 우버의 변화일까...라는 생각정리가 되지 않더군요. 무엇이? 무엇이었지?
결론은 하나였습니다. 온디맨드 차량공유의 철저한 생활밀착형. 택시가 아무리 많아도 일반 자가용보다 많지 않아요. 그 거대한 규모의 경제가 도시를, 나라를 바꾸는 거였습니다. 예를 들자면 이렇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지구에서 마법이 가능해졌다고 생각합시다. 그런데 정부에서 허락한 일부 마법기구에서만 마법을 구현하는 것과, 모든 사람이 알아서 마법을 구현할 수 있다면 누가 엄청난 파급력을 불러올까요? 관리 감독의 문제 등이 있지만 모두 차치하고 사회적 파급력만 보자고요. 당연히 후자가 큽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파급력은 규모의 경제가 거대할수록 제곱의 제곱. 기하급수적인 변화를 끌어냅니다. 단순히 마법을 부리는 것에서 벗어나, 그로 인한 복잡다변한 생태계가 도시와 나라, 지구를 원천적으로 바꾼다는 뜻입니다.
카카오모빌리티에 제일 아쉬운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웃돈이니 콜비니 플랫폼 이용료니. 특히 플랫폼 이용료라는 표현이 참 재밌지만 일단 넘어간다고 해도...그냥 플랫폼 사업, 거마꾼의 위치만 잡으려고 합니다. 정주환 대표는 지난해 11월 투자한 인공지능 기반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기업 '마스오토'와의 협업을 통해 자율주행 생태계에 참여할 계획도 세웠고 오토노미스 모빌리티랩을 설립해 자율주행기술까지 넘어가겠다고 밝혔지만, 이건 제 눈에는 플랫폼 사업에 집중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한 면피로만 보였습니다.
우버와 에어비앤비는 공유경제를 표방했지만, 사실 온디맨드라는 점을 들킨 후 최근에는 철저하게 플랫폼 사업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묘한 것이, 우버는 직접 자율주행 실험을 하고 에어비앤비는 호텔을 세워요. 소비의 공유경제를 온디맨드 플랫폼으로 커밍아웃한 후 아예 수직계열화 구조로 돌아섰다는 거죠. 여기서 시작과 결과를 나누면 곤란합니다. 가짜 공유경제를 표방했지만 어쨋든 우버와 에어비앤비는 가짜라도 공유경제 가치를 품고 온디맨드로 풀어내는 겁니다. 그런데 카카오모빌리티는 반대입니다. 시작부터 거마꾼에 집중하며 자율주행이니, 인공지능을 말합니다. 인공지능과 같은 기술이 목적이 아닌 수단이라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이렇게 되면 정체성 자체가 단순 플랫폼 영역을 넘기 어려워집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고기맛을 알거든요. 처음부터 플랫폼 사업하던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영역으로, 그것도 추상적인 로드맵만 공개하면 어떻게 보일까요?
카카오모빌리티는 위대한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부디 규제와 싸우고 스타트업 업계와 윈윈하며 이왕 시작된 정체성은 어찌할 수 없더라도 단순 플랫폼 이상에 집중했으면 좋겠습니다. 아. 콜비, 플랫폼 이용료요? 그건 카카오모빌리티의 카카오택시를 이용할 고객들이 알아서 판단해 줄겁니다. 정치인들만 움직여주면 되요. 우버택시 도입합시다.